미국에서 살고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던 경험

미국에서 거주 중입니다만

by Iris Seok


“환자분. 해외입국자로 뜨는데, 어디서 오셨나요?”




한국에 도착해 격리기간 2주가 끝나갈 무렵, 아뿔싸. 멍하니 걷다가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다리가 접질리고 말았다. 인생을 살며 급하고 허둥대는 성격 탓에 수없이 다리가 접질렸지만 이번은 그 어느 때와도 달랐다. 무척이나 아팠다. 접질리는 순간 ‘뼈가 부러졌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악’ 비명 소리가 절로 흘러나왔다.



정원에서 놀고 있던 아들은 엄마의 비명 소리를 듣고 계단으로 뛰어 내려왔다. “엄마 내 손을 잡아”라며 그 옹말종말한 작은 손을 내게 건네는 게 귀여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지만서도 아픔은 가시지 않았다. 엄마가 너무 아프네, 하며 아들 앞에서 창피함도 잊고 소리내 아픔을 호소했다. 다리를 절뚝거리며 겨우 집 안으로 들어와 얼음으로 냉찜질을 시작했으나 발은 부어 점점 부풀어 올랐다.



말년 병장은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한다더니, 내 꼴이 딱 그랬다. 격리 해제를 불과 이틀여 앞두고 다리가 이 꼴이 되어 버리다니. 절망이 압도했다. 만날 친구들이 수없이 많은데…한국서 가고 싶은 곳이 얼마나 많았는데…다리가 이 모양이 되다니!



결국 난 격리가 해제된 날, 정형외과부터 찾았다.






그날 점심시간이 지난 무렵 찾아간 정형외과에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처음 온 손님 이름명단란에 이름과 생년월일을 적어놓고 자리에 앉았다.



몇 분쯤 지났을까,


“XX님. 조회해 보니 해외입국자로 뜨시는 데 어디에서 오셨나요?”



간호사분이 내 이름을 호명하며, 해외입국자라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공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정확히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큰 소리로 묻고 있었다. 순간 병원 안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꽂힌 것만 같았고 얼굴이 붉어졌다. 해외입국자라는 사실만으로도 주변에 앉은 사람들이 나를 ‘바이러스 전파자’로 여길 것 같아 죄인 마냥 몸이 움츠러 들었는데, 내가 거주하는 곳이 미국이라는 사실을 밝히기가 창피했다.



안내데스크로 재빨리 걸어나가 “미국에서 왔어요”라고 속삭이듯 말했다. 내가 살고있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부끄러웠던 적은 난생 처음이었다.





10여년 전 난 주체적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만 열아홉이 돼서야 유학길에 오르게 됐지만 사실 난 중학생 때부터 늘 미국에서의 삶을 동경해왔다. 막연하게 ‘꼭 미국에 공부하러 갈거야’라는 생각이 십대시절부터 날 사로잡았다. 아마도 홍정욱의 <7막 7장>을 감명 깊게 읽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그 당시 유학할 나라를 미국으로 선택한 일은 내게 너무나 당연했다. 미국은 자타공인 전 세계 1위 국가였고, 모두가 우러러보는 선진국이었다. 게다가 미국의 교육시스템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선망하는 부분이 아니던가!


하버드, 콜럼비아, 예일 등등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대학들이 있는 곳, 미국. 그곳에서 공부를 하며 꿈을 이루는 멋진 여성이 되고싶다는 욕망이 나를 미국으로 이끌었다.



이후 난 미국에서 유학생 신분으로 공부를 하고, 나만의 가정을 꾸려, 아이를 낳고, 영주권까지 받아 일을 하고 있다. 미국은 나의 20대 전체를 품고 있는 나라. 내 인생에서 떼려야 떼어낼 수 없는 나라다.



그런 미국이 부끄럽다니. 스스로도 난감한 감정이었다. 코로나19가 각 나라들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무너트렸는데, 대표적으로 미국은 부정적인 나라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는 요즘이다. 전염병 방역에 이토록 실패했으니, 무엇을 변명할 수 있을까. 의료시스템의 한계도 고스란히 드러났고, 공동의 안전 보다 개인을 중시 여기는 시민의식의 부족함도 들춰졌다.



천년 이상 세계를 지배했던 거대한 로마 제국이 무너지듯 미국도 어쩜 영원한 1위국가일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스쳐가는 요즘이다. 특히 이번에 한국에 방문해 내 나라의 ‘위대한 문명’을 절절히 느꼈다. 일상생활이 어느 정도 가능한 한국이 어찌나 부러웠는지.



미우나 고우나 나의 20대가 담긴, 그리고 나의 30대가 채워질 미국이라는 나라를 응원한다. 코로나19 위기를 훌륭하게 이겨내고 과거의 명예를 되찾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