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과 사랑에 빠지다
미니멀리즘이 유행하는 이 시대에 맥시멀리스트인 나는 세상을 거꾸로 사는 사람인 것만 같다. 패션아이템부터 전자기기, 책까지 사고 싶은 물건들은 언제나 넘쳐났다. 특히나 책에 대한 욕심은 과한 편인데, 하루가 멀다 하고 구매하는 책들 때문에 우리 집 책장은 이미 과부하 상태였고, 책들은 안방을 침범하기까지 이르렀다. 안방 구석에는 나의 책들이 쌓이고 쌓여 탑을 세웠다. 남편이 “책 1권을 살 때마다 2권을 버리라”는 말에 대한 대답으로 “책장을 새로 구입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느니, 난 부정할 수 없는 맥시멀리스트인 것이다.
하지만 맥시멀리스트인 나에게도 전혀 구매욕구가 올라오지 않는 관심 없는 분야가 있는 법이다. 나에겐 그게 그릇이었다. 여자에게 마지막 사치는 그릇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데, 전혀 공감할 수 없는 문장이었다. 유학생일 때 기숙사 또는 아파트에서 홀로 자취하던 시절에는 아이키아, 타겟 등에서 아무 그릇이나 사서 정말 식사를 하기 위한 용도로만 사용했다. 그릇은 그저 먹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신혼살림을 구매할 때도 엄마에게 ‘그릇은 아무거나!’라고 선포하고 엄마가 한국도자기에서 사준 하얀 그릇으로 지난 결혼생활 5년을 지내왔다.
그러다 2020년 코로나19가 나의 맥시멀리즘 라이프의 좌표를 바꿨다.
그릇을 향한 눈을 뜨게 만든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재택근무를 하고, 외출도 자제하다 보니 2020년 나의 물욕은 인생 최저치를 찍게 됐다. 나갈 곳이 없으니 옷도 신발도 악세서리도 다 무용지물이었다(물론 책은 예외다). 홈웨어를 잠시 사보긴 했으나 감흥이 덜했다. 그렇게 코로나 시대에 나의 물욕은 주인잃은 강아지 마냥 정처없이 길을 잃은 줄로만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어찌 사람이 그렇게 쉽게 변하겠는가. 물욕의 텅빈 자리에 그릇이라는 새로운 아이템이 엉덩이를 구겨넣기 시작했다.
LA카운티는 3월 중순이후 무려 3개월 넘는 시간동안 식당들의 영업을 중단시켰다(지금도 야외에 테이블이 있는 식당에서만 식사가 가능할 뿐 대부분의 식당들은 배달음식을 팔아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외식이 불가하다 보니 3~4일에 한 번 꼴로 장을 봐서 삼시세끼를 집밥으로 먹어야 했다. 브런치도 먹고 싶고, 고기도 먹고 싶고, 무엇보다 사먹는 것처럼 '맛있는' 음식이 먹고 싶어서 매일 매일 유튜브에서 요리 영상을 찾아 보는 게 일상이 됐다.
브런치로 아보카도 토스트를 먹기 위해 아보카도를 사고, 식빵을 샀다. 유튜브를 보고 그런대로 얼추 비슷하게 아보카도 토스트를 만들어 냈으나, 식당에서 사먹던 그 비주얼이 아니었다. 먹기 좋은 음식이 맛도 있다고 그랬던가. 비주얼이 부족한 만큼 맛도 부족하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홈카페 느낌을 낼 수 있게끔 그릇, 그래 그릇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났다.
그때부터 인터넷에 그릇을 주르륵 검색하기 시작했다. 관심이 없을 때는 몰랐는데, 그릇에 대해 검색을 하고, 그에 대한 새로운 정보들을 얻게 되자 인스타그램에 업로드 된 다른 이들의 식탁 위 그릇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호 이 그릇은 어떤 브랜드 거구나! 아 이 친구는 이런 스타일을 좋아하네.' 이전에는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던 그릇들을 내가 구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치 가방, 팔찌들을 알아보듯이 말이다.
그릇이 사고 싶은 이유는 간단했다. 삼시세끼를 집에서 차려 먹어야만 하는 이 상황에서, 심지어 언제까지 집밥을 먹어야 할지 예상도 불가한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이왕 먹는 거 예쁜 그릇에 음식을 차려먹고 싶었다. 그래서 집밥을 먹을 때도 행복감을 느끼고 싶었다. 보기 좋은 그릇에 밥을 차려 먹는 일은 나와 내 식구들을 아끼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대개 손님들을 집에 초대할 때 아껴둔 그릇들을 꺼내지 않던가. 진정으로 그 그릇을 사용해야 할 곳은 가족들을 위한 식탁에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 누구보다도 귀하게 대접해야 할 사람은 다름 아닌 내 식구들이니까.
나와 내 가족들을 아낀다는 나만의 신념(이라고 쓰고 합리화라고 읽는다)으로 우리 집 식탁에 올리고 싶은 그릇들을 찾아 헤맸다. 나의 취향은 바로크(16세기 말부터 18세기 중엽에 걸쳐 유럽에서 유행한 예술 양식)풍, 공주풍의 엔틱함에 머물렀다. 과거에는 알지도 못했던 'VBC까사'라는 브랜드 그릇에 꽂혀 인스타그램 태그 검색창에 '#VBC까사'를 무한 검색해봤다. 다른 이들의 사용후기 사진을 통해 음식이 담겨 있는 모습을 보니 더욱더 끌렸다. 안되겠다. 구매해야겠다!
이탈리아 도자기 브랜드로 알려진 이 그릇은 사용 후기에 따르면 그다지 실용적이진 않다. 음식이 레이스 문양 사이로 끼어서 설거지도 편하지 않고. 그럼에도 여심을 사로잡기 충분한 비주얼!
미국보다 한국에서 구매했을 때 가격이 더 저렴한 아이러니. 배송 대행업체를 통해 한국에서 주문한 그릇을 3일 만에 받아봤다. 배송받은 그릇을 식탕 위에 펼쳐보니 뿌듯함이 솟구쳤다. 보기만 해도 아름다운 아이들 같으니! 그릇 덕분에 해보고 싶은 요리가 많아졌다. 그릇 때문에 난생 처음 집에서 감자떡, 백순대 볶음, 샌드위치 등도 만들어 보고, 덕분에 나의 주부력이 조금 상승했다.
남편은 이 음식 저 음식을 만들어 그릇에 담아보고, 사진을 찍는 내 모습에 고개를 절레 절레 내둘렀다. 이제 하다 못해 그릇까지 좋아하느냐! 이 의미가 담긴 제스처였다. 하지만 내가 그릇을 좋아하게 된 이후에 내가 식탁 위에 올린 음식들은 과거와 비교해 다양하고 화려해졌기 때문에 남편도 퍽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다.
그릇 하나 바꿨을 뿐인데 음식을 만드는 내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이래서 주부들이 그릇을 좋아하는 거였나? 내가 코로나19 시기 이전에 회사에 매일 출근하고 취재를 다닐 때만 해도 입고다닐 옷, 장신구들을 중요하게 여긴만큼 살림을 하는 주부들 또한 그릇을 신경썼겠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다. 각자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관심을 가지는 분야는 다를 수 밖에 없으니까.
문득 코로나 시기 동안 가족들을 위해 음식을 차리며 그릇까지 관심을 가지게 된 내 자신을 되돌아보며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야 진정으로 주부의 세계에 들어온 느낌이랄까. 대개 나만을 위해 살아왔던 내가 아내, 엄마로서의 역할도 온전하게 장착한 것만 같은 뿌듯함과 비슷한 감정이었다.
이제 새로운 그릇에는 그만 눈독 들이고, 그릇을 사게 된 동기부터나 신경을 쓰기로 한다.
가족들을 위한 멋진 음식들을 차려 예쁜 그릇에 대접해야지.
그게 나와 가족들을 아끼는 나만의 방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