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캠퍼스가 얼마나 안전하고 좋은지 아시나요
코로나19 환자 수, 사망자 수가 전 세계 1위 국가인 미국에서는 코로나19 시기에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어디로 외출을 할 수 있을까?
코로나 시대가 당도한 이후, 지난 3월부터 5월까지 약 3개월 간 우리집 아이들은 집 안에 갇혀지냈다. 3월 중순께 미국 전역 곳곳에는 집에서만 머물라는 내용이 담긴 '자택대피령'이 발령됐고, 난생처음 겪어본 정부의 강압적인 자택대피령이라는 명령에 겁을 잔뜩 먹은 미 전역 사람들은 정말 집 안에서만 지내는 무한 '격리생활' 시기를 보냈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택대피령이라니, 정말 듣도 못한 그리고 상상도 못해 봤을 명령아닌가.
전시상황에 버금가는 조치였다. 자택대피령이 발령된 이후에 거리에 나가보면 모든 상점이 문을 닫았고,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이건 영화에서나 보던 상황. 내가 근무하는 회사 또한 즉시 재택근무 체제로 바뀌었고, 첫째 아이가 다니던 유치원 또한 운영을 일시 중단했다.
아이와 나는 꼼짝없이 집에 갇혀있게 됐다. 그렇게 약 3개월 간 장을 봐야하는 이른바 정부에서 규정하는 '필수적인 상황'을 제외하곤 집에서만 시간을 보냈다. 나는 이따금씩 취재를 나가거나 장을 보러가니까 주기적으로 외출을 하긴 했지만 아이는 정말로 감옥 아닌 감옥에 갇힌 채 하루 하루를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말했다.
"왜 엄마 아빠만 외출을 하고 나는 외출을 못해? 나도 밖에 나가고 싶어."
3살 아이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다니. 기가막힌 상황이었다.
그래, 너도 얼마나 답답할까. 매일 가던 유치원도 못가 친구들도 만날 수 없는데 바깥 공기 한 번 마시지 못하고 매일을 집에서만 보내다니. 거기다 재택근무를 하는 엄마 옆에서 얼마나 심심할까. 마감 시간이 다가오면 예민해지는 엄마는 뭘 해달라고 해도 잠깐만 기다리라며 짜증을 내고...아이는 때때로 엄마에게는 '잠깐만'이 너무나 많다며 한숨을 쉴 때도 더러 있었다.
갑자기 아이가 짠했다. 주말에라도 아이와 외출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어디를 갈 수 있을까.
남편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하다가 집에서도 가까운 대학교 캠퍼스를 가기로 했다. 다름 아닌 남편이 졸업한 학교였다. 집에서도 10분 거리에 불과한 USC(남가주 대학교)를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다행히도 캠퍼스는 폐쇄돼 있지 않았다. 대면 수업들도 대부분 캔슬돼 있는 상태여서 학교 내에는 학생들도 많지 않을 터였다.
실로 오랜만에 아이에게 외출복을 입혀 학교를 향했다. 아이는 오랜만의 외출에 잔뜩 긴장한 모습이였다.
"나가도 괜찮아? 코로나 걸리면 어떡해?"
몇 달간 외출을 하지 못한 아들은 건강염려증을 얼굴에 붙은 혹처럼 달고 다니는듯 했다. 마치 걱정인형처럼 외출을 앞두고 걱정부터 앞서는 아들의 모습을 보자 이런 시대에 살고 있는 아들이 불쌍하게 여겨졌다. 그래도 엄마와 아빠는 30년 넘게 마스크 없이 마음껏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었는데, 앞으로 너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마스크가 필수일지도 모른다니 미안했다.
오랜만에 학교 캠퍼스를 걸으니 낭만적인 기분이 들었다. 것도 이십대에 남편과 함께 거닐던 연애의 추억이 서려있는 교정이었다. 남편과 나는 캠퍼스 커플은 아니었지만, 이웃 학교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의 캠퍼스에서 곧잘 놀곤 했다. 내가 남편의 학교에서 노는 경우가 더 많긴 했는데, 그건 남편의 학교에 친한 친구가 둘이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편을 만나러 이곳에 와서 친한 친구들까지 만나 밀린 수다를 떨면 일석이조였다. 우리가 졸업한 후 학교 캠퍼스는 더 발전해 있었다. 새로운 건물들이 세워져 이전보다 훨씬 더 쾌적했다.
우리의 추억이 가득한 이곳에 아들과 함께 산책을 하고 있으니 문득 '세월 참 빠르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과거의 우리는 지금의 우리를 상상조차 못했다. 막연히 언젠가 우리 둘이 결혼은 하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그 결혼생활 속에 아이의 모습은 그려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의 우리는 너무나 어렸다. 이십대 초중반에 불과했던 학생이 육아에 대해 무엇을 또 얼마나 상상할 수 있었겠나. 결혼은 그저 사랑의 행복한 결실이었을 뿐 그 이후 따라올 삶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가 없었던 때였다.
"이곳에서 엄마랑 아빠가 같이 커피를 마셨었어."
"이곳은 엄마랑 공부하던 도서관이야."
캠퍼스 곳곳을 걸으며 아이에게 우리들의 추억을 설명했다. 아이는 "그 때는 왜 내가 없었어?"라며 자신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간에 대해 의아해했다. 아이는 이 세상에 나온 이후 엄마, 아빠와 늘 함께했으니 엄마와 아빠의 인생에서도 늘 자신이 함께였으리라고 믿는 듯 했다.
사람들이 거의 없이 텅빈 캠퍼스에서 아이는 뛰어다니고, 빵을 사먹고, 조잘조잘 잘도 떠들었다. 그동안 밀린 뜀박질을 하루 안에 다 해내려는 것처럼 아이는 날다람쥐 마냥 잘도 뛰어다녔다. 그런 아이를 바라보며 코로나 시기에는 학교 캠퍼스를 자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사람들이 꽤 북적이는 공원, 바다 보다도 학교 캠퍼스 가장 안전한 것 같았다.
다음주에는 엄마가 졸업한 학교를 가보자,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