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시기 바다 인근에 산다는 것은
매주 금요일이면 바다를 갈 생각에 전날부터 마음이 두근거린다. 집에서부터 바다까지는 대략 40분. 여기서 ‘바다’란 여러 바다를 일컫는다. 말리부 비치, 산타모니카 비치, 베니스 비치, 뉴포트 비치, 롱비치, 레돈도 비치 등. 모든 바닷가는 1시간 이내에 갈 수 있는 곳으로 각 해변 마다 풍기는 느낌은 천차만별이다. 실제 거리보다도 바다를 향하는 내 마음의 거리는 20분에 불과해 바다를 향하는 발걸음은 그 어느때보다도 가볍다.
바다를 이렇게나 자주 방문하게 된 건 살면서 처음 있는 일이다. 20대부터 10년 가까이 LA이란 곳에서 살면서 바닷가는 늘 근처에 있었지만, 1년에 바다를 가는 날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였지 지금처럼 한달에 4번~5번씩 바다를 찾는 일은 없었다.
되돌아 보면 바다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고 바다를 향한 내 마음의 정도는 늘 비슷했지만, 내 삶의 퍽퍽함의 정도가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학생 땐 각 수업 별 에세이와 시험 준비에 허덕였고, 직장인이 된 후에는 일과 육아를 겸하느라 내 삶은 꽃병 안에서 시들어버린 꽃 마냥 생기가 없었다. 타이트 한 일상 속에서 바다에 갈 시간을 짜내긴 쉽지 않았다. 아니, 시간은 있었지만 바다에 할애할 시간이 없었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바다는 다른 우선순위들에 밀려 늘 뒷구석에 있었다. 게다가 가까운 존재의 소중함은 본래 잊고 사는 법이 아니던가.
그러다 이놈의 코로나가 터진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여전히 LA의 식당들은 실내 영업이 불가하고, 야외 테이블에서만 서비스가 가능하다. 모든 업소들의 실내 영업을 정부 차원에서 금지하는 일이 한국과 비교해 몹시 극단적으로 여겨졌는데, 이곳 LA의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 수(LA 카운티는 하루 평균 1,000여명 안팎의 감염자 수가 보고된다)를 고려해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난 반년 째 재택근무 중이었고, 집에서 육아와 일에 들들 볶이며 하루 하루를 간신히 살아내고 있었다. 이번 해부터 일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주 5일로 근무하다 보니 나에겐 금요일의 자유시간이 허락됐다. 이 금요일만큼은 지난 일주일간 고생한 날 위해 써야겠다고 생각했고, 코로나 때문에 늘 갇혀있는 일상이지만 금요일엔 어디라도 나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하여 매주 금요일이면 난 바다를 향하게 됐다. 바다는 뻥 뚫려 있는 열린 공간이어서 코로나 시대에 비교적 안전한 곳이었고, 바닷가에 위치한 식당들은 테이블 사이 거리를 적당하게 유지하면서 야외에서 운영 중이었다.
바다에 도착해 차에서 내려 바닷물과 마주하면 광활한, 파란 우주와 마주한 느낌이 든다. 와아- 탄성은 절로 나온다. 그야말로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든다. 이래서 사람들이 바다를 찾는 거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일정한 리듬으로 찰랑거리는 파도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내 생에 놓여진 많은 의무와 부담과 책임감들이 한결 가볍게 느껴진다. 어쩌면 그것들로부터 영영 벗어나 버린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난 그저 온전한 '나'로서 바다 앞에 서있는 것이다.
바닷가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 특유의 짠내와 푸르름, 그리고 파도 소리. 후각과 시각, 청각 모든 감각을 자극하는 바닷가는 '완벽하게 일상으로부터 벗어났다'는 느낌을 통한 자유를 선사한다. 사람에게 '자유'를 느끼는 일이 얼마만큼 소중한지를 되돌아보게 된다. 현대사회에서 과거의 노예처럼 구속된 삶은 표면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현대인들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하는 의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회사, 가정 등에 종속된 삶 속에서 어떤 역할들의 옷을 벗어버리고 온전한 나 자신이 되기란 얼마나 힘겨운가.
"진짜 좋다."
함께간 친구도, 나도 바다를 보며 그 문장을 몇 번이고 입밖으로 내뱉었다. 바다는 그런 곳이었다. 진짜 진짜 좋은 감정을 순식간에 쏟아내게 해주는 곳. 아무리 자주 바다를 찾는다 해도 바다를 볼 때마다 차오르는 엔돌핀은 늘 일정했다.
매번 갈 때마다 평일이든 주말이든간에 바닷가는 사람들로 붐볐다. 대부분이 마스크를 쓴 채로 해변에 주저 앉아 하염없이 바닷가를 바라보거나, 바닷물에 발을 담그거나,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뛰어다녔다. 코로나 시기에도 바닷가에는 활기로 가득했다. 평소보다 비교적 텅텅 빈 도시의 거리들과는 사뭇 대조적인 풍경이었다. 저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 때문에 껴안아야만 했을 저마다의 답답함을 어떻게든 털어내기 위해 바닷가를 찾았을 것이었다.
바다를 바라보며 LA에 사는 게 좋은 건 아무래도 이 '바다' 때문이라는 생각을 곱씹었다. 일상에서 언제든 원하면 바다에 올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져 있는 사실만으로도 힘이 났다. 바다의 힘을 알게 되어버린 이상 코로나19가 종식된 이후에도 나의 바다사랑은 사그라들지 않을 것 같다. 언제까지 LA에 살게될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누릴 수 있을 때 바다를 실컷 누려야겠다는 다짐. 바다는 내 마음의 자양분이 되어 힘들고 지친 어느 날이면 나를 치유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