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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바로 부모의 것

정보라 단편소설 '머리' 중에서.

by 투명서재

자녀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바로 부모의 것

정보라 단편소설 '머리' 중에서.



※ 글 읽기 전에 무서운 그림 주의하세요! 맨 아래 그림은 놀라실 수 있어요!!



정보라 작가는 채널예스 인터뷰에서 “약한 독자는 기르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그녀의 소설은 결코 만만하게 읽히지 않습니다.


특히 『머리』라는 작품은 독자의 정신력뿐만 아니라 비위까지 강해야 읽을 수 있는 소설입니다.


왜일까요?


우리가 화장실에서 되도록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들—변기 안의 분뇨, 악취, 눈을 돌리고 싶은 흔적들—과 마주해야 하듯, 이 소설 역시 우리 안의 ‘배설된 감정’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듭니다.


정보라 작가는 같은 인터뷰에서 “『머리』를 읽고 변비 생기셨다면 죄송합니다.”라는 유쾌한 농담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머리』는 부모가 자녀를 통해 자신의 가장 직면하고 싶지 않은 모습을 마주할 때의 공포를 상징적으로 그려냅니다.


우리가 몸에서 내보내는 것들—머리카락, 손발톱—처럼, 우리 내면에서 쏟아지는 감정, 트라우마, 부정적인 자기 인식도 내쳐지고 버려집니다.


소설 속 주양육자가 자기 내면의 불편함, 불쾌감을 마치 없는 것처럼 버립니다. 양육자가 소화하지 못한 감정, 혼란스러움, 처리되지 않은 경험은 눈에 보이진 않지만, 자녀의 몸에 남아있습니다.


7세 이전의 아이는 주 양육자의 말과 행동을 그대로 흡수합니다. 좋고 나쁨을 가릴 시간도 없이, 무의식 속에 자동으로 각인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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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는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처럼, 우리는 아이를 통해 자신의 좋은 모습뿐 아니라, 외면하고 싶은 모습까지 마주하게 됩니다. 아이들은 우리가 무심코 해버린 표현을 자신의 몸에 새깁니다.



아이는 부모의 불편한 부분을 흡수할뿐 아니라 처리 방식까지도 모방해 배웁니다. 마치 조금이라도 불편한 건 없애고 버리듯이. 그러면 다시 아이에게서 비춰진 불편한 부분을 다시 양육자가 보고 불쾌하게 되는 순환을 합니다. 처음으로 돌아가 양육자는 자녀에게 비춰진 자신의 모습을 보고 회피합니다.



이 소설에서 자녀는 하나지만, 양육자의 인식 속에서 자녀는 둘로 나뉩니다.

하나는 ‘인정할 수 있는 자녀’, 또 하나는 ‘내 자녀가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은 자녀’입니다.


그녀는 이 ‘부정된 자녀의 모습’을 반복해서 떠나보내려 합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불안은 커지고, 공포는 깊어집니다.

자녀가 성인이 되자, 부모와 자녀의 권력 관계는 역전됩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투사’입니다.

자신이 감당하지 못한 내면의 어둠(그림자)이 자녀를 통해 점점 커져, 결국 자녀가 괴물 같은 존재로 성장한다는 점입니다. 그 상징을 정보라 작가는 냉정하고도 섬세하게 묘사합니다.

주위 사람들은 자녀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신경 쓰지 마.”

“별일 아니잖아.”

“그냥 내버려 둬요.”



처음부터 주인공이 자신의 자녀에게 무심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넘기고, 괜찮다고 말하니, 양육자인 그녀 역시 자신의 감정과 현실을 애써 무시하는 방식에 익숙해졌습니다. 마치 드라마 속에서 학교폭력 가해자 부모가 자녀의 폭력성을 애써 외면하는 것처럼.


자기 내면에 어두운 그림자를 보지 않으려 했고, 없는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우리 몸의 분비물처럼 조금이라도 직면하면 불쾌한 것들이 마치 없는 것처럼 행동하듯, 마음 안의 불편함도 금방 없애버립니다. 아주 무심하게.



※ 아래 그림에 놀라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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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가 만들어준 이미지인데 많이 놀랐죠? ㅠㅠ 저도 생성된 이미지 보고 깜놀했답니다. 소설 '머리'를 잘 표현해서 넣었어요.




모든 일하는 엄마가 그런 건 아닙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하나 들어볼게요.

한 워킹맘이 아이가 어릴 때 함께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느낄 때가 있어요.

그 감정을 직면하고 인정하면 일상이 더 힘들어질까봐, 자꾸 외면하게 되죠.



그런데 그런 상태에서 아이가 “이거 사줘”라고 하면, 어떻게 반응할까요?

만약 내가 엄마로서의 죄책감을 충분히 들여다보고 잘 다루고 있는 상태라면,


"왜 그게 필요할까?"

"그걸 갖고 싶어 하는 너의 마음은 어떤 걸까?"


이렇게 아이와 편안하고 건강한 대화가 가능해요.


하지만 그 죄책감을 무조건 지워버리려 하거나, 아이의 심리적 허기를 물건으로 보상하려고만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그럴수록 아이는 점점 더 더 자주, 더 비싼 것을 요구하게 될 수 있어요.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아이 스스로도 알지 못한 채 엄마의 죄책감을 흡수해버리게 된다는 점입니다.


"엄마에게 관심을 받으려면 뭘 사달라고 해야 하는구나."


"나는 그냥 있는 모습으로는 충분히 사랑받을 수 없는 존재인가보다."



이런 감정의 왜곡된 공식이 아이 안에 자리 잡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아이는 자연스럽게 감정을 다루는 방식을 하나의 패턴으로 고정해버려요.


관계에서 사랑받기 위한 조건이 생기고, ‘선물 = 관심’이라는 감정의 등식이 자리잡게 됩니다. 이후 아이가 친구에게 미안할 때조차 “뭘 사주면 되겠지”라고 생각하게 되고, 그 방식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여길 수도 있어요.


감정에는 다양한 표현과 해소 방법이 있을 수 있지만, 단 하나의 방식만 반복되면, 우리는 점점 극단적인 보상 수단만 쫓게 됩니다. 결국 헛헛함을 채우기 위한 물건 구입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감정 패턴이 자리잡게 되죠.


그 무심함은 자신의 아이에게까지 전이됩니다.

눈앞에 보이는 것조차 ‘없는 것처럼’ 행동하니, 보이지 않는 감정이나 고통은 얼마나 더 무시당했을까요?


『머리』는 육아와 가족, 자기 인식, 내면의 부정 같은 무거운 주제를 불편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파고듭니다. 그 불편함이야말로 이 소설의 강렬한 힘이자, 정보라 작가의 문학 세계를 단단히 붙드는 핵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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