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참사 희쟁자를 위한 추모 소설
말뚝들
저자 김홍
출판 한겨레출판사
발매 2025. 8. 30.
한줄평 : 애도받지 못한 죽음에 글로 쓴 위령제
내가 사는 아산신도시는 지금 거대한 공사판이다.
천안아산 KTX 역사가 들어서고, 인구가 늘어나면서 아파트와 오피스텔이 여기저기 들어서고 있다. 마치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분위기라고 할까.
잊힌 죽음들
지난 3월 25일, 아산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외벽 작업을 하던 50대 노동자가 21층 높이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되었다. 강풍에 휘말려 심장마비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 이후 공사 현장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조용했다.
아버지와 함께 또 다른 공사 현장을 지나다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안전망을 저렇게 짧게 하면 안 되는 거야.
최소한 1m는 더 길어야 사람이 떨어져도 다치지 않지."
예전에 시공 경험이 있으셨던 아버지의 말씀이 귓가에 남았지만, 나는 민원 전화라도 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지나쳤다.
2월 25일에는 서울세종고속도로 붕괴 사고가 있었다. 4명이 사망하고 6명이 다친 참사였다. 출근길에 늘 지나던 도로 근처에서 벌어진 사고라, 그 뒤로 공사 현장 아래를 지날 때면 목덜미가 움츠러들곤 했다.
지금, 그들은 어디에 어떻게 있을까?
사고 현장에서 다친 사람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한스럽게 죽은 사람들, 애도를 받지 못한 영혼들은 우리 앞에 온다면 어떤 모습일까?
소설 『말뚝들』 은 그 물음에 답하는 듯하다. 눈물을 흘리는 말뚝 그림이 표지에 그려진 이 책은, 애도를 받지 못한 영혼들을 위해 쓰인 글로 쓴 위령제다.
공선옥 작가는 “소설은 남의 초상집에 가서 함께 울어주는 일”이라고 했다.
'말뚝들'을 읽으면, 세월호 이후 숱한 참사 속에서 충분히 위로받지 못한 죽음을 향해 작가가 대신 눈물 흘려주는 듯하다.
사회적 죽음 앞에서
서울 광화문 광장 한가운데 ‘말뚝들’이 나타난다면 어떤 기분일까?
어느 날 갑자기 눈앞에 세워진 그 말뚝들은, 우리가 외면해 온 죽음을 직면하게 만든다.
아침에 평범하게 집을 나선 사람이 눈 깜짝할 사이 죽음이 되어 돌아온다. 그 모습은 땅에서 불쑥 솟아오르는 말뚝 같다. 어떤 죽음도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의 죽음이라는 걸 소설은 보여준다.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무안 참사, 공장과 공사장에서의 산업재해, 수많은 사회적 죽음들
우리는 시시때때로 목격하면서도 충분히 애도하지 못한 채, 무기력과 피로에 눌려 외면해왔다.
위로와 사과라는 선물
죽을 때 억울하면 눈을 감지 못한다고 한다.
말뚝들은 눈을 뜬 채 우리 앞에 서있다. 말뚝을 쓰다듬고 함께 울어줄 때, 그들은 비로소 원하는 선물을 받는다. 그 선물이란 진정한 사과와 위로일 것이다.
"정말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용서해 주세요.
당신의 죽음은 당신 책임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말뚝들은 단 한 마디를 원한 게 아닐까?
소설 속 인물들이 말하는 “우리 함께 울자.” 이 단순한 문장은 그래서 더욱 마음 깊이 스며든다. 애도에 무슨 기한이 있겠는가?
함께 울 수 있다는 것
오랜만에 남성 작가의 글을 읽었다. 그리고 소설 속 남자 주인공이 말뚝을 보고 눈물 흘릴 수 있다는 사실이 참 다행스러웠다.
마치 금세라도 눈물이 뚝 떨어질 듯한 맑은 눈망울을 가진 김홍 작가에게, 마음 깊이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