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의 위기 - 한병철

책 사용 설명서 (20)

by 서산시민

[내가 보기에 우리 인간이라는 종(種)은 기본적으로 이야기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도록 진화했다.


나는 법학 교육을 받고 변호사로 일해 온 까닭에 사실과 숫자가 인간을 설득하지 못하는 것을 이제껏 눈앞에서 생생하게 지켜보았다.


그것은 오로지 이야기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앞으로의 전개는 우리 상상력의 펜촉에 달려 있다. 국가는 역사라는 덫에 붙잡혀서는 안 되며, 개개인은 단지 경험의 총합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누군가 내게 이야기를 통하여 전하고 싶은 것을 단 하나만 꼽으라고 하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리는 결국 누구도 아닌 자기만의 이야기를 쓴다. 이로써 우리는 자기 운명의 저자가 된다.]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떼가 서문 中



이 책은 서사 부재 시대를 이야기한다.


우리는 서사를 말할 능력을 잃었으며, 사실 개별적인 서사에 관심이 없다.



요즘에 즐겨 소비하는 것은 서사가 아닌 스토리이다.


스토리텔링을 넘어 스토리 셀링을 하는 현대인들이 가진 스토리는 무엇인가.


사실과 숫자, 그리고 상품으로써의 자신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요즘은 그것을 많이 강조하고 드러내는 것 같다. 물질만능의 사회니까.


그에 반해 과거부터 이어져온 수많은 이야기를 주목하는 자는 많이 없다.


애초에 그럴 시간이 없다. 우리는 포노 사피엔스니까. 우리가 원하는 것은 긴 서사시가 아니니까.



항상 저자가 말하는 것 중, 개인의 파편화, 원자화 등이 있다.


이것은 자기 존재의 위축이 아닐까. 삶이 물질과 도구로 변해버린 것은 아닐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서사를 잃었다.


더 이상 우리는 타인이 어떠한 역사를 갖고 있는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러한 역사를 말하지도 않는다.


그저 같은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소수, 어쩌면 같은 스토리를 알고 있는 소수와의 대화만이 남지는 않았는가.



나 또한 그렇다. 대학 입학부터 상품으로써의 나를 전달했던 내가 무엇을 더 말할 수 있을까.


이 책의 관점에서는 나부터 잘못된 사람이다. 내가 또 무엇을 변명할 수 있을까.



과연 우리는 무엇으로 공감할 수 있을까. 과연 책을 읽는 행위가 필요한가.


그러한 생각들을 해보았다.



질문)


1. 현대인은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아직 가지고 있는가?


2. 우리는 서사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가?


3. 사람다움은 무엇인가?


4. 현대인에게 독서가 쓸모 있는가?



사용법)

매우 좋은 책이고, 믿고 보는 한병철 교수님 책입니다. 바쁜 현대사회에서 사람의 서사, 사람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매우 힘들어졌습니다. 이러한 사회의 모습을 꼭 알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항상 한병철 교수님 책은.. 책값이 책 두께에 비해 비쌉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장 가치 충분히 있구요. 지금 읽은 책이 교수님 책 중 제가 2번째 읽은 책인데요. 아마 한병철 교수님 책 모두 강력 추천할 것 같고, 제 개인적으로도 모든 책 소장할 것 같습니다. 그만큼 현실을 확실하게 지적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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