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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를린부부 Oct 10. 2022

유치원은 한 번 옮기는 것도 힘들어요

경향신문 토요판 '다른 삶' 2022년 10월 8일 연재


생후 18개월부터 우리 아이가 다닌 유아원(독일말로 크리페, Krippe)은 생후 36개월까지만 보육이 가능하다. 우리 아이 역시 36개월이 되는 학기를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유치원’으로 옮기긴 해야 했다. 갓난쟁이부터 막 걸음마를 띈 어린아이들 중 가장 큰 맏언니에서, 다시 막내 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반복되는 여느 학교 제도와 다르지 않은 과정이다. 아이에겐 처음 있는 ‘헤어짐’이기에, 최대한 자주, 자세히, 지루하지 않게 설명을 해줘야 했다. ‘이제 이 친구들과 선생님들하고는 인사를 할 거야. 대신 다른 새로운 친구들과 선생님들을 만나게 될 거야.‘ 아이는 유난히 따뜻했던 선생님들과의 관계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엄마, 아빠도 떠날 준비를 하자는 이야기를 어떻게 아이에게 전해야 할지 쉽지 않았다.


비슷한 또래 아이들의 보호자들은 각자 어느 유치원으로 가야 할지 활발히 알아본다. 한국에 ‘카톡 단체방’과 유사한, 이곳의 ‘왓츠앱 단체방’에서 부모들끼리 정보를 교환하기도 하고, 고민도 털어놓으며 각자 상황을 공유한다. 각자의 관심에 맞춰 새로운 유치원으로 옮길 준비를 하거나, 원래 다니던 유아원과 연계되어 있는 유치원으로 가기도 한다. 보통 같은 재단이거나 관리 주체가 같은 행정지역일 경우가 그렇다. 우리 부부도 이 시기에 이곳저곳, 메일을 보내고 문의를 했으나, 마땅히 갈 자리가 연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길 건너편,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기존의 유아원과 연계된 유치원으로 가게 됐다.


새롭고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아이나 어른이나 힘들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마주하고, 먼저 말을 걸거나 나에게 말 거는 사람과 이야기도 하고, 새로운 환경에 대해 열심히 탐색도 해야 한다. 본격적으로 학기가 시작되기 전인 무덥던 7월에, 우리 부부와 아이는 유치원 오리엔테이션에 다녀왔다. 우리 아이처럼 새롭게 유치원 생활을 시작할 아이들과, 보호자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서로 인사를 하고 얼굴을 익혔다. (어른들은 마스크를 쓰느라 알아보기가  쉽지는 않았다.) 다행히 안면 있는 아이들도 있었고, 심지어 잘 아는 친구도 있었다. 다행히 유치원 건물은 담 너머로 오며 가며 종종 구경했던 터라 아이도 많이 어색해하지 않았다. 도리어 갓난쟁이들 수준에 맞춰져 있던 장난감이 업그레이드된 것에 아이 눈이 동그래졌다. 자신의 성장을 자랑스러워하듯 ’ 자신은 더 이상 베이비가 아니다 ‘라고 매일같이 주장하는 아이에게는 확실히 좋은 면들이 있었다.


처음 며칠은 보호자와 함께 있고, 그 후 서서히 30분으로 시작해, 1시간, 2시간 정도 보호자와 떨어져는 연습을 하며 아이들과, 선생님과 어울릴 준비를 한다. 별 탈없이 그렇게 1달을 열심히 적응하는 사이, 느닷없이 유치원에서 전체 메일이 왔다. 교사 인원 부족과 시설 노후로 인해 24명 정원의 한 반이 통째로 없어져야 한다고. 교사가 항상 부족하다는 얘기는 하루 이틀 얘기가 아니라 스멀스멀 항상 있었다. 또한 우리 아이가 주로 생활하는 유치원 맨 꼭대기 층인 2층(한국식으로 3층)은 큰 규모의 천창으로 인해 여름에 좀 덥긴 더웠다. 유치원은 공식적으로 이 두 가지 이유로 총 17명의 아이들이 다른 유치원으로 옮겨야 한다며, 주변 유치원에 협조공문을 보낸 상태라고 했다. 3군데 선택지를 주며, 어느 유치원에 관심이 있는지, 며칠 뒤까지 의사를 밝혀달라고 했다. 그 직후, 예상 가능한 일이 일어났다. 보호자들의 단체 채팅방이 난리가 났다.


아내 말로는 이 전체 메일이 도착하기 전, 며칠 전부터 이상한 징후들이 있었다고 한다. 익숙하지 않은 '선생님'들로 보이는 낯선 어른들이 많이 왔다 갔다 했고, 아이들은 여기저기 뿔뿔이 흩어져 누가 어디 있는지 파악이 되지 않고, 심지어 화장실에서 실수한 흔적을 그대로 달고 다니는 등, 전반적으로 좀 어수선한 분위기가 계속되었다고 한다. 나는 아내에게 처음 이 얘기들을 전해 듣고 '뭐 큰 일 있겠어. 좀 어수선한 모양인가 보다 ‘ 정도로만 생각했다. 다급한 유치원의 전체 메일을 받고, 어지럽게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자니, 어딘가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었다는 아내는 나보다 훨씬 더 심난해했다. 이제 적응 좀 하나 했는데. 그러나 심난한 것도 잠시, 원망할 시간이 없었다. 진짜 유치원을 옮겨야 하는 상황인지, 그렇다면 어느 유치원으로 가야 하는지 알아보고 신속히 판단을 해야 했다.


급하게 3군데 유치원을 들여다봤다. 그중 한 군데는 우리 아이의 연령대와 맞지 않아 우리의 선택지가 아니었고, 다른 두 군데 유치원은 집에서 정확하게 동쪽으로 2.5km, 서쪽으로 2.5km에 위치했다. 이쪽으로 가느냐 저쪽으로 가느냐의 문제라기보다, 이제는 걸어 다닐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 암담했다. 한 번에 연결되는 대중교통은 없고, 걸어가기엔 멀고, 차로 가면 가깝지만 출근시간의 복잡함을 계산해야 했다. 이 중 어느 것도 우리가 상상해보지 못한 상황이었다. 우리 부부끼리 '지나가는 말로' 후에 혹시나 유치원을 한 번 옮겨야 하는 상황이 되면 어떻게 하나 지나가며 이야기한 적은 있지만, 그게 다였다. 이렇게 얼떨결에 현실로 마주할 줄이야.


우리 집에선 아내의 스트레스가 컸다. 지난 한 달 동안 해온 적응시간이 온데간데 사라지는 것은 물론, 다른 환경에서 다시 반복할 생각에 암담했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아이가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할지는 모르는 일이다. 가끔씩 운전은 했지만, 출퇴근 혼잡한 시간에 많은 차들 사이로 아이를 등원시키는 것도 염려였다. 새로 옮기게 될 유치원 근처에 학교들이 많은 터라, 오후 3-4시에 퇴근 시간을 방불케 하는 교통체증이 있는 곳이었다. 이래저래 일상의 많은 부분이 바뀌게 될 테니, 긴장이 되는 것은 당연했다. 그녀는 결국 원래 예정되어 있는 어학코스마저 취소를 해야 했다. '아이가 유치원에 잘 있어줘야'라는 일상의 조건이 어긋나니 그 주변이 후드득 어긋났다.


그렇게 어수선한 1주일이 지나고, 드디어 새로운 유치원으로 가게 됐다. 다행히 우리 아이가 다니던 유치원에서 4명의 아이가 같은 반으로 '전학'을 오게 됐다. 다행히 그중 오며 가며 얼굴을 익히 아는 아이와 보호자들도 있었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이와 보호자도 있다. 그렇게 조그마한 교실에 모여 선생님들과 아이들, 보호자들이 서로 인사를 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이어갔다.


그 와중에 좀 뭉클한 생각이 든다. 지난 몇 년 동안 코로나 사태로 인해 항상 '한 명의 보호자'만 참석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규제들이 모두 완화가 되어 우리 부부 모두 함께 들어갈 수 있었다. 같은 상황에서 같은 선택을 한 다른 가족들을 봐서 그런지, 이미 상황을 인지하고 더 적극적으로 임해주는 선생님들 때문이지,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그리고 아주 다행히, 아이도 잘 있는다.


아이는 다시 엄마와 조금씩 떨어지는 연습 중이다. 그리고 드디어 어제, 엄마와 떨어지는 연습을 마친 아이는 이제 친구들과 같이 밥도 먹고, 간식도 먹고, 산책도 하며, 놀이터에서 놀고, 이리저리 어울려 논다. 새로운 환경에 어느 정도 적응한 듯한 아이를 오늘 나는 재택근무를 하는 김에 유치원에 데려다줬다. 나와 손을 잡고 유치원에 들어가자마자 자신이 앞장서서, 나에게 유치원에 대해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는 아이를 보며 뿌듯한 생각까지 든다. 코로나 제재가 조금씩 사라지며, 이제는 교실 앞까지 가서 인사를 할 수 있는 것도 좋다. 물론, 헤어지기 직전 떨어지기 싫어하는 것은 여전하지만.


아이는 또다시 선생님들과, 아이들과 어울려 엄마, 아빠와 떨어져 자신만의 시간을 보낼 것이다. 아이가 홀로 하루의 7-8시간을 보내는 공간이 항상 안전하고, 안정적이고, 마음이 따뜻한 공간이 되길 바라는 건 어느 보호자나 마찬가지다. 물론 아침마다 좀 더 복잡해진 일상에 적응은 해야겠지만, 그래도 아이가 밝게 웃으며 있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지 어쩌겠나 싶다. 다음 주에 벌써 반 친구들과 극장에 가게 됐다며 들떠 있는 아이를 보며, 안도의 숨을 내쉰다. 다른 아이들의 이름을 즐겨 외우는 아이에게 오늘도 열심히 물어본다. ‘오늘은 뭐하고 놀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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