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도시로 이사를 가면, 원래 살던 도시가 그립지는 않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한동안 살며, 지내며, 나의 일상의 배경이 되었던 도시는 늘 그렇다. 자주 다니던 장소, 자주 만나던 사람들, 그곳에 얽힌 추억들은 항상 그립다. 그러나 추억을 다시 방문할 기회는 자주 생기지 않는다. 일단 가보지 않은 미지에 세계에 대한 끌림이 보통 더 크고, 추억만을 위한 여행은 왠지 사치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떠난 뒤 아직 한 번도 다시 가보지 않은 마드리드와 다르게 바르셀로나는 두 번이나 방문했다. 처음은 아내와 둘이, 이번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시간은 항상 흐르기에 아주 같은 장소는 존재하지 않지만, 시간보다 더 중요한 변화는 항상 동행하는 사람이다. 누군가와 함께,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같은 장소도 다른 기억과 추억이 되곤 한다. 지난 10월, 바르셀로나 방문이 딱 그랬다.
방문객과 관광객으로 항상 붐비는 바르셀로나는, 그만큼 그 안의 일상도 혼잡한 북적거림과 조용하고 평안함의 거리가 가깝다. 격자로 가지런한 도시의 구조는 그 극적인 변화를 아주 잘 보여준다. 매일매일 내가 살고 출퇴근하던 지점으로부터 한 블록 밑으로는 관광객들의 핫플레이스고 두 블록 위로는 큰 공원이었다. 그리고 도시의 격자 구조의 외피를 넘어 안쪽으로 들어오면 너무나도 평안한 조요함이 항상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발코니에서 고요한 중정을 향해 멍을 때리는 것이 큰 힐링 중 하나였다. 그러나 차도에 면한 도로들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노천카페나 레스토랑에 앉아 먹고, 마시며, 열심히 다른 이들과 교류했다. 차와 오토바이 소음으로 가득 찬 거리 변에 앉아서 옆의 사람과 이야기하노라면 자연스레 소리가 커지고 활기를 띄곤 했는데, 이런 극적인 양면성이 너무 큰 매력이었다.
한국으로의 귀국이 결정된 후, 아내와 나는 아이들과 바르셀로나에 꼭 한 번 들를 생각이었다. 우리 부부 각자 가진 추억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친구들과 지인들은 아직도 바르셀로나에 많기 때문이기도 했다. 더군다나 한국에 가면 왕래하기는 더 힘들어질 거란 생각을 했다. 베를린만큼이나 애착을 가지고 있는 바르셀로나는 언제든 넘치는 볼 것과 먹을 것 외에 친구들과의 즐거운 시간에 대한 상상만으로도 설레는 곳이다. 그래서 더 직접 인사를 건네야 한다는 생각을 한 모양이다. 몸이 기억하는 도시의 흔적과 방향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어서, 어디쯤 가면 뭐가 나올 때가 된 것 같다는 느낌이 새롭고도 익숙하기도 하다. 매번 갈 때마다 동행하는 이가 다르고, 새로운 시간대가 있으니 새로움을 발견하는 흥미는 더해만 간다.
마음과 다르게 베를린발 바르셀로나행 비행기는 항상 비쌌다. 보통 1인당 100-200유로면 왕복이 가능했던 비용은 몇 년 새 300-400유로 정도까지 올랐고, 가족 모두를 티켓팅하면 너무 과했다. 그러나 이번은 '마지막일지 모르니'라며 예외적으로 마음을 먹었다. 포르투갈에서 베를린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지막 경유지로 바르셀로나행을 결심했다. 방문객들이 많지 않은 구간을 쫓으면 그나마 조금 더 저렴해진다. 그러나 바르셀로나는 도시의 유명세만큼 비행기 편뿐 아니라 숙소도 비싸다. 숙소로 고민을 하던 차에 우리의 오랜 지인인 K와 N에게 바르셀로나 방문 소식을 전했고 그때, K와 N이 우리 부부에게 본인들의 집에서 묶을 것을 권유했다. 원래부터 교류가 많았던 이 부부의 집에 하루 정도는 묶으며 그동안 묵힌 수다를 떨어야겠노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우리 온 가족이 일주일 가까이 되는 여정을 모두 신세 질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아내는 무슨 확신에서인지, 그렇게 하자고 했다.
K와 N은 바르셀로나에 18년 정도째 살고 있다. 두 부부 모두 성악을 공부하고 이태리 유학시절, 바르셀로나의 간판극장인 리세우극장(Gran Teatre del Liceu)에 합창단원으로 일을 시작하며 바르셀로나에 오게 됐다. 젊은 부부는 어느덧 두 아이의 부모가 됐고, 그 아이들은 이제 중학생을 바라보는 청소년이 되어 가고 있다. 나보다 아내와 특별히 더 각별한 H는 지난해부터 새롭게 지휘를 공부하며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그렇게 K와 N의 가족은 바쁘게 각자의 일상에 살고 있었다. 각자의 바쁜 일상만큼 이야깃거리는 쌓여만 갔고,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인 우리 두 부부는 아이들이 잠들고 난 저녁시간부터 매일같이 수다를 떨었다. 그동안의 밀린 얘기와 고민들, 사건 사고부터 둘만이 간직하던 얘기들까지. 피곤한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다음날이면 바쁜 K와 N의 가족을 두고 낮에는 우리 가족끼리 도시를 다녔다.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의 추억을 나누기도 하고, ‘예전에 내가 자주 오던 곳이라며’ 사진을 남기기도 했다. 온화한 날씨의 산물인 먹거리를 아이들과 나누고, 도시 곳곳의 볼거리를 지나며 사진을 찍었다. 이제는 기억이 가물가물한 스페인어를 되뇌며 열심히 메뉴를 고르기도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바쁘게 도시를 누볐다. 아이들에게 가우디의 건물들이 얼마나 신기하게 느껴질지 생각하면 참 오길 잘했다는 생각도 든다. 유난히 공공시설이 후한 도시 덕에 가족들이 가볼 수 있는 곳은 공원과 같은 실외뿐만 아니라 도서관, 문화센터, 시청 등등 많기도 많다.
저녁 시간이 되면 K와 N의 가족들도 한 두 명씩 다시 모여 금방 8명이 되기를 반복했다. 매일 그랬던 듯이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혼자 거닐던 곳을 넷이서, 여덟 명이서 단체로 누볐다. 혼자만의 바르셀로나와 우리의 바르셀로나는 많이 다르다. 마침 근처에서 열린 동네 축제는 아이들의 천국이었다. 혼자서는 되려 그 번잡함에 멀리 했던 그 장면에 내가 가족의 일원으로 섰다. 그리고 이전에는 바르셀로나에 그렇게 훌륭한 놀이터가 많은 줄 몰랐다. 블록마다, 동네마다, 구역마다, 야외활동이 많은 도시답게 놀이터뿐 아니라 공공시설이 너무 잘 되어있다. 낯시간대에 가니 아이들의 노는 소리뿐 아니라 근처 학교의 소리까지 도시가 더 활기차 보인다. 그리고 유아차를 끌고 다녀보니 엘리베이터와 경사로 등 약자 배려가 너무 잘 되어 있음에 또 한 번 놀랐다.
K와 N은 아직 어린 우리 아이들을 보며 예전 생각을 많이 한 모양이었다. ‘우리 애들 그때였을 때 생각이 많이 난다’ 던 부부는 마지막까지 우리를 너무 따뜻하게 배웅했다. 이제 다음은 한국 우리 집에서 보자고 다짐하며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집에서 복작복작 있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부대끼며 서로의 새로운 모습을 보기도 하고, 익숙한 모습을 다시 꺼내 보기도 하며, 멋진 도시를 언제든 함께 구경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소중한 추억이 한가득 더 생겼다. 아마도 다음번에 만나면 ‘우리 그때 말이야’하며 그 순간들을 기억할 것이다. 아이들은 그만큼 또 성장하고 시간은 흐를 테지만, 도리어 다음이 더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