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살 때 부엌은 지극히 기능적인 공간이었다. 간단하게 먹을 한 끼를 준비하거나 대강 끼니를 때우기 위해 잠시 조리하는 공간. 조리와 식사 시간을 합쳐 오랜 시간 동안 머무는 공간이 아니니 크게 신경 쓰지도 않았고, 무언가 불편해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냈다. 결혼과 함께 늘어난 거주인구의 변화는 단지 많은 살림이 늘어난 다는 것 외에 '어떻게 밥을 먹는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는 계기이기도 했다. 식사하며 둘이 얘기를 나누기도 했고, 둘이 함께 조리하기도 하고, 와인까지 곁들이면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앉아 있는 공간으로 부엌은 진화했다. 집의 공간이 넉넉해서 식사공간과 조리공간이 분리되면 좋지만, 다른 공간을 오롯이 식사공간으로 할애하기엔 다른 용도들이 더 중요했다. 한동안 부부는 부엌에 바의자를 놓고 식사와 조리를 함께 했다.
인건비가 비싼 독일은 DIY방식이 보편화되어 있다. 특히, 가구나 정원, 자동차 등 특화되어 있는 분야는 그 시장의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웬만하면 직접 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이유에는 비싼 인건비 외에 배송과 같은 물류시스템이 정교하거나 정확하지 않은 이유도 있다.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것이 노동환경과 직결되어 있는데, 그 결과적인 논리로 이런 DIY시장이 발달된 독일은 부엌이나 웬만한 인테리어 공사, 간단한 자동차 정비등은 직접 한다. 이케아와 그 비슷한 같은 브랜드가 날로 성장하며 영역을 확대하며 일상으로 점점 더 깊이 들어온다. 우리의 베를린 일상 역시 이케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는데, 집의 다른 공간보다 특히 부엌이 그랬다. 집기뿐 아니라, 상판과 하부장, 싱크나 수납공간 등, 가전제품 등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표준화된 이케아의 부엌이었다. 그리고 이 부엌의 설치 역시, 여느 누군가처럼, 우리가 직접 설치한 것이었다.
베를린에 마지막으로 살던 집은 우리 부부가 결혼하며 살게 된 집이었다. 결혼 직전 집을 구할 때,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부엌도 있었고, 누군가가 몇십 년 동안 사용하다 이사 나간 부엌도 있었고, 말끔하고 깨끗하게 정리되었지만 부엌을 통째로 거래하려는 경우도 있었다. 통상 집 계약을 할 때 '원상복귀'를 전제로 하기에 원칙적으로는 빈 부엌을 내가 사는 동안 나름대로 공사하고 꾸미고 열심히 사용하다가 빈 상태로 이사를 나가야 하지만, 사람 사는 것이 다 그렇듯 매번 그렇게 정확하게 모든 것이 처리되지는 않는다. 부엌을 스스로 만든 사람들은 최초에 설치하는 것도 일이지만 이사 나갈 때 가지고 나가는 것도 큰 일이기 때문이다. 가격등의 이류로 거래가 불발되면, 부엌을 열심히 설치한 사람은 철거는 물론 청소도 하고, 직접 벽도 칠하고, 바닥도 손질하며, 부엌이나 욕실등을 철거하여 원래의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여러 집을 돌며 집 구경을 하는 동안, 입주하며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가 큰 주제였다. 어떤 집은 모든 것이 구비되어 있어 그냥 몸과 살림만 들어오면 되는 집이 있으나 비쌌고, 어떤 집은 이전 사시던 분이 수십 년간 사시면서 쌓인 세월의 흔적을 스스로 지워야 하는 집이었으나 싼 집이었다.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 여러 집을 보러 다녔다. 그렇게 결정된 집은, 이전에 사시던 분이 정말 오랜 시간 거주하셨지만, 부동산 측에서 리모델링에 준하는 공사를 해준 집이었다. 다행히 수십 년 만에 거래하는 집이라 가격도 준수했고, 벽이나 전기, 바닥, 페인트 등 기본적인 공사가 끝나있는 집이라 아주 적당했다. 그러나 여전히 부엌과 욕실의 샤워부스나 세면대 등 물을 쓰는 공간은 스스로 해야 할 일이 있는 집이었다. 그 정도 공사는 베를린의 이 집 저 집에 살며 늘 해오던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우리가 하자'라는 주의였지만, 아내는 내내 근심이 많았다.
특히 부엌은 수도꼭지와 하수관만 덩그러니 있는 상태에서 모든 가구를 설치해야 했다. 물론, 거금을 주고 업체를 쓰면 몸은 편할 것이다. 그러나 비용도 문제지만 독일어의 큰 관문을 뚫고 우리가 원하는 부엌을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결국 우리는 이케아에서 직접 부엌을 만들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 첫 번째로 부엌을 어떻게 구성할지 기획을 하고, 두 번째로 해당 구성에 맞는 부품을 수급하고, 마지막으로 직접 시공하는 단계를 거쳤다. 이케아 인터넷 플랫폼으로 부엌을 구성하는 것은 생각보다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주방을 실측해서 입력하고, 창문위치를 넣고, 수전이나 콘센트 등의 위치를 넣으면 알아서 검토까지 해준다. 문제는 순식간에 늘어나는 예산도 문제였지만 과연 이 많은 부엌 물품들을 어떻게 집으로 가지고 올지였다. 당시 베를린 이케아에는 주문 후 배송을 맡기는 서비스가 있었는데 이 역시 높은 인건비로 인해 한 번에 몇백 유로 정도는 쉽게 훌쩍 넘기곤 했다. 구매금액에 따라 늘어나는 거액의 배송서비스를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넘쳐났고 매번 한참씩을 기다려야 했다. 반면 인터넷 주문은 배송기간이 보통 3주에서 4주 정도 걸렸다. 그러니 번거로워도 직접 가서 구입하고 길게 차례를 기다려 배송을 맡기는 편이 나았다.
매장에서 직접 구입한 물건들이 당일 배송이 되면 주말에 조금 조립을 하거나 설치를 할 수 있지만, 그것도 늦어져 평일로 넘어가면 내가 퇴근해서 집으로 올 때까지 집을 난장판으로 둬야 했다. 포장을 뜯지 않은 상태의 이케아 박스들은 보통 무게가 수십 킬로에 달했다. 당시 갓 임신한 아내가 무리해서 할 수 있는 상태도 아니었기에 설치 기간은 좀 더 넉넉하게 생각해야 했다. 그리고 규격 된 치수의 제품만 파는 이케아 제품들이 모든 집에 맞는 건 아니기에 모든 제품은 어느 정도의 사용자화가 필요했다. 어느 정도는 자르고 조이고 변형해서 우리의 주방에 맞추는 것이 필요했다. 특히, 오븐이나 인덕션 등의 전기제품들의 위치는 전기 콘센트 위치를 고려해야 했고, 식기세척기나 싱크, 세탁기등은 전기 콘센트와 수전의 위치를 같이 고려해야 했다. 그것도 정 맞지 않으면 하수관을 늘이거나 우회하는 식의 설비공사 과정도 필요했다.
부엌 공사는 당연히 한 번에 되지 않았다. 하부장을 조립하다 보면 무언가 빠진 부품이 있었고, 그 무언가를 수급하기 위해 평일 저녁 퇴근길에 이케아를 들르거나 철물점에 들러야 했다. 오래된 집은 벽에 전기선이 아무렇게나 돌아다니기 때문에 아무 곳이나 앵커를 박을 수도 없었다. 스캐너로 이곳저곳을 계측해 전기선이 지나는 위치를 피해 하부장을 조립해 고정하고, 상판이 들어갈 자리를 잡고, 전기 콘센트가 필요한 곳에 넉넉한 길이로 멀티탭을 놓고, 수도의 위치에 맞춰 타공도 하고, 서랍장도 열심히 조립한다. 가장 무게가 많이 나갔던 부분이 상판이었는데, 톱밥으로 만든 상판은 그 무게만 몇십 킬로에 달할 정도로 묵직하다. 배송하는 사람도 고생이지만 그걸 자리에 맞추는 것도 곤욕이다. 특히 인덕션과 싱크를 위해 사이즈에 맞춰 타공 하는 일도 쉽지 않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공정을 거칠 때마다 느리지만 부엌에 대한 감이 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렇게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사용자 화한 부엌은 식구가 늘어나며 변화하는 요구와 늘어나는 살림에 대응하기가 어려웠다. 2인의 생활을 위해 안성맞춤인 이 부엌이 감당할 수 있는 크기에 한계에 다다른 것이었다.
최초 이케아 부엌을 만든 후, 우리는 세 번 정도 대대적인 추가 작업을 했다. 늘어나는 살림을 수납하기 위해 키높이 장도 만들고, 건조기를 위해 바 테이블도 축소하고, 불편한 여닫이 문 대신 서랍을 넣고 하는 과정으로 '눈에 띄지 않는' 기능에 수천 유로를 추가적으로 지출해야 했다. 그렇게 베를린의 부엌은 물론 그 6-7년 동안 우리 가족의 건강을 책임져 주었다. 그 기간 동안의 추억만큼이나 그 부엌이 많이 그리울 것이다. 그리고 지난 1월, 한국에 귀국한 이후로 이사 갈 집이 정해진 후, 우리는 다시 부엌으로 고민했다. 천차만별인 견적서 중, 당연히 이케아로 다시 부엌을 만드는 것도 고민했다. 그러나 환율 때문인지 베를린에 있었을 때와 아주 다르게 체감되는 그 가격이나, 더 저렴한 옵션의 업체들이 많아서 결국 이번에는 이케아 부엌을 선택하지 않았다. 배송의 옵션이나 선택의 폭 등이 이런저런 이유로 유럽과 다르기도 하고, 무엇보다 '직접 조립하는' 문화에 대한 차이가 한국 이케아의 다른 모습이 배경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한국의 이케아는 전체적인 규모나 느낌이 달랐다. 특히, 사람의 바글바글하던 부엌 상담 코너의 풍경은 베를린의 것과 많이 다르게 차분했다.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이케아를 애용한다. 직접 조립하고 가지고 오는 과정이 그리 귀찮거나 불필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합리적인 가격의 옵션이라면 여전히 우리는 이케아 제품을 선호한다. 그 김에 이케아에 들러 구경도 하고, 고민도 하고, 핫도그도 하나 먹으며 열심히 골라 집에서 스스로 조립하는 과정은 그대로가 이케아 인듯하다. 은근히 귀찮은 그 매력을 잃지 못해, 앞으로도 우리는 이케아의 애용자일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