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육이인 듯 아닌 듯, 연필선인장
연필선인장
식물 집사가 된 지 어느덧 반년 정도 되던 어느 날, 나는 우리 집의 식물군 구성을 더 다채롭게 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초보 식물 집사로서 그간 내가 키운 것은 파프리카, 바질, 민트, 허브 딜 등등 거의 잡아먹을 용도의..ㅎㅎ 식용식물에 한정되어있었기에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기도 했다. 옷 쇼핑도 온라인으로 대충 하는 나이지만 왠지 식물 쇼핑은 직접 눈으로 보고 고르고 싶어 근처 도매상을 방문했다. 그리고 가게 한 구석에서 매끈하고 귀여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연필 선인장을 발견해서 집으로 데려 왔다.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식물만 키우던 내가 절대 먹으면 안 되는 식물을 들인 날. (연필 선인장의 수액은 독성이 있어 특히 아이나 반려동물에게 닿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먹는 효용 없이 성장하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내게 가치가 있는 식물이 생겼다는 것은 곧 식물 집사 제2막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참고로 도매상에서 식물을 사면 대부분 포트분(사진에서 보이는 갈색 고무 화분)에 들어있는데 집으로 들인 후에는 식물의 특성을 고려하여 늦지 않게 새 화분으로 옮겨주는 것(분갈이)이 좋다. 덧붙여 분갈이 전 기초조사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내가 특히 고려하는 사항은 습기에 취약한 정도이다. 습기에 취약한 식물은 마사토를 많이 섞고 슬릿분을 사용하는 편이고 습기에 강한 경우는 상토에 일반 화분을 사용하는 편이다. 연필 선인장의 경우 기초조사를 하다 보니 성질이 다육이와 유사(염기성)해서 토분 대신 시멘트 화분에 심어주었다. 이과 전공생도 아닌데 PH공부까지 하는 요즘이다.
연필 선인장을 구매하게 된 계기 중에 하나는 이게 선인장은 선인장인데 가시 대신에 싹이 난다는 점 때문이었다. 식물 집사가 된 후로 길을 가다 보이는 예쁜 선인장 꽃에 마음이 동하긴 했지만 날카로운 것에 살짝만 닿아도 손이 잘 베이는 탓에 선인장은 엄두도 못 냈었다. 그런데 가시가 나지 않는 선인장을 만나게 된 것이다. 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학계에서는 모양만 선인장이지 '다육이'라는데 선인장 어감이 더 귀여우니까 모른 척하기로 하자.)
연필 선인장이 우리 집에 온 지 꼬박 5개월이 지났고 그중 3개월은 겨울이었다. 그럼에도 연필 선인장은 아주 조금씩 부지런히 자라나 온 자구가 만세를 부르는(?) 모습으로 성장했다. (만일 어느 누군가가 나의 집에서 겨울을 버텨낸 식물 중에 베스트를 묻는다면 단연코 연필 선인장을 꼽을 것이다.) 겨우내 성장은 서막에 불과했다. 연필 선인장은 따뜻한 봄이 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모든 자구의 끝이 다시 연둣빛을 띄며 눈에 띄게 성장했다. 물론 잘 자라나는 것은 정말 기뻤지만 각 자구가 너무 발달해서 무게중심이 잘 맞지 않는 문제도 함께 발생했다. 결국 나는 자구를 조금씩 분리해서 키우기로 결심하고 우선 소독한 칼로 자구 하나만을 잘라냈다.
잘라낸 자구는 절단 즉시 물에 담가 수액을 제거하고 키친타월 위에서 넉넉히 일주일 정도 건조해야 한다. (주의: 수액을 직접적으로 만지지 않아야 한다.) 그 뒤에야 흙삽목을 진행할 수 있다. 자구를 잘 말리고 삽목을 해야 식물이 무르는 것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에 꼭 필요한 절차이다.
연필선인장 자구는 작은 컵에 심은 뒤, 사무실로 가져가서 키우고 있다. 식물을 사무실에 가져다 두고 문득문득 바라보면 적당한 쉼을 선사해줘서 좋다. (출근하기 싫은 날에도 식물들이 밤사이 잘 있었나 싶어, 아주 작은 사명감으로 출근가능.) 우측 사진은 선인장이 불의의 사고를 당한 것은 아니고, 줄기가 너무 얇게 자랄 거 같아서 과감히 한쪽을 제거해 준 모습이다.
사무실용 식물등을 설치해주고 나서는 더 쑥쑥 잘 자라는 요즘이다. (귀여워 귀여워 귀여워!)
성공적인 자구분리였다. 모체 선인장도 절단면이 잘 아물었고, 잘 자라고 있어 행복한 요즘. 한 달에 한 번 물을 줄 때마다 햇볕을 보는 방향을 의도적으로 바꿔주면 우측 사진처럼 물결무늬를 자연스레 의도할 수 있다. (더 귀엽다!) 부족한 식물집사인데도, 잘 자라줘서 고마워.
세상 사람들! 연필선인장 키워보세요!
인쁘삐(IN-FP).
1995년에 태어나 24살부터 시작한 공무원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직업적성검사를 새로 했더니 개그맨이 나와서 결국 못 그만두고 다니는 사람.
사람들을 즐겁게 하려는 욕심이 항상 드릉드릉 가득하지만, 사람 많은 곳은 싫어하는 전형적인 INFP.
먹는 식물은 죄다 죽이고 못 먹는 식물은 세상 잘 키워내는 능력치 애매한 식집사.
직장생활 꽤나 힘들어하고 일도 잘 안 맞는데 나름 또 정년퇴직은 하고 싶어서,
숨을 얕게 쉬며 회사를 다니는 20대 직장인.
어느 날 문득, 도대체 나는 왜 이런 사람인지 고민만 할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동안 마주했던 순간들을 털어놓으며 나를 이해해보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