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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쁘삐 Dec 26. 2022

2. 겨울을 지나온 식물이 알려준 것

조용히 강한, 나의 올리브

올리브
묵은 잎이 다 떨어지면 새 잎이 자라납니다.

잎을 계속 떨어뜨리던 올리브.

식물의 겨울잠에 대해 알아볼 때 눈에 콕 박힌 문장이 있었다. 식물의 아래쪽에 위치한 묵은 잎(먼저 난 잎)들이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하면 식물이 아프거나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새 잎을 틔워낼 준비를 하는 것이니 차분하게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물론 머리로는 분명 이해되는데, 막상 식물의 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있으면 그런 인내심과 여유가 생길지 자신은 없었다. 그러다 겨울이 왔고 우리 집 첫 번째 주자는 올리브가 되었다. 가늘고 둥근 모양이 특징인 올리브 잎은 겨울을 잘 보내고 2월에 접어들면서 맨 아래쪽부터 하나하나 떨어지기 시작했다. 봄이 오기까지 꼬박 한 달 내내 그랬다. (사진은 떨어진 잎을 몇 번이고 치운 뒤에 찍은 것이기 때문에 올리브가 떨어뜨린 잎은 보기보다 정말 많았다.) 그러다 보니 풍성했던 올리브는 온데간데없고 위쪽만 잎이 듬성듬성 남아있어 볼품없어 보이기까지 했다. 이건 분명 고사 직전 상태라는 자체 판단 하에 나는 결국 못 참고 영양제를 꽂기도 했지만 별 수 없었다. 유일한 희망은 묵은 잎 가고 새잎이 온다는 순리뿐이었다. 봄이 오면 다 죽은 것처럼 보이는 이 올리브에도 거짓말처럼 새 잎이 풍성하게 돋아날까.



넌 계획이 다 있구나!

놀랍도록 건강한 새잎들이 위쪽, 왼쪽, 오른쪽으로 다 돋아나고 있다.


봄이 오기 무섭게 사방으로 돋아나는 새 잎들을 보고 있자니 놀라움을 넘어 경이로운 마음까지 들었다. 영양이 부족하면 부족하다 물이 많으면 많다고 금세 티를 내는 여린 식물들과 달리 티가 너무 나지 않아 키우기 어려웠던 올리브였다. 하지만 올리브는 계획이 다 있었다.


조용히 그리고 강하게 겨울을 이겨냈다.


인쁘삐(IN-FP).

1995년에 태어나 24살부터 시작한 공무원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직업적성검사를 새로 했더니 개그맨이 나와서 결국 못 그만두고 다니는 사람.

사람들을 즐겁게 하려는 욕심이 항상 드릉드릉 가득하지만, 사람 많은 곳은 싫어하는 전형적인 INFP.
먹는 식물은 죄다 죽이고 못 먹는 식물은 세상 잘 키워내는 능력치 애매한 식집사.
직장생활 꽤나 힘들어하고 일도 잘 안 맞는데 나름 또 정년퇴직은 하고 싶어서,
숨을 얕게 쉬며 회사를 다니는 20대 직장인.

어느 날 문득, 도대체 나는 왜 이런 사람인지 고민만 할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동안 마주했던 순간들을 털어놓으며 나를 이해해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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