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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하 Oct 06. 2022

마음에도 비가 내릴 때에는: 구름의 모습

부드러운 매움, 개운한 슬픔


오늘은 정말이지 마구 울고 싶습니다. 울고 싶은 마음에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요. 그게 좋아하는 사람과 잘 안 돼서 울고 싶은 기분이든, 가족과 싸우고 나서 분하고 슬픈 바람에 울고 싶은 마음이든, 일터에서 너무나 힘든 날을 보내고 돌아와서 갑자기 터지는 울음이든요.


속에서 무언가 치밀어오르는 느낌. 속에 있는 것을 다 털어놓고 싶고, 내 마음이 스스로 감당이 되지 않아 쏟아 놓고 싶은 느낌. 견디고 견딘 비구름이 뚝뚝 물이 되어 떨어지는 것처럼, 눈구름이 펑펑 눈을 쏟아내는 것처럼 그저 울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런 때는 옥초당(玉初堂) 구름의 모습(雲の象) 을 피워 볼까요. 어느 곳의 침향을 사용했고 어떤 재료가 들어갔고 하는 것은 상관없습니다. 그런 건 천천히 알아봐도 되는걸요. 지금은 단지 이 마음을 알아 줄 한 줄기의 향이 필요한 때. 무거운 손으로 각진 선향 끝에 불을 붙입니다. 이윽고 느긋하고 희미하게,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합니다.



제가 구름의 모습(雲の象)을 피운 것은 마침 유월의 세찬 비가 내리는 밤이었습니다. 지붕과 벽을 때리는 빗소리가 다른 모든 것을 가리는 때. 집안에 불은 한 개를 남기고 모두 끄고, 어둑어둑한 그림자에 잠겨 꼭 대화 상대라도 되듯 맞은편에 둔 향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지요.


비가 오는 날, 구름의 모습(雲の象)은 깊숙하고 매캐하고, 구름 속 가득한 물의 입자처럼 부드러우며 그 물들이 서로 당겨 방울을 이루고 떨어져 내릴 때의 장력처럼 짱짱했습니다.


눈을 감고 깊이 들이쉬었습니다. 부드러움이 앞섰다가 매움이 오나 싶다가도 먼저 매캐하고 부드럽고, 팽팽한 것 같다가도 도로 뭉실한 그 모습처럼 부드러이 쓰다듬습니다. 마치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것처럼, 소리는 작아졌다가 또 커지고, 통통 튀었다가 휘몰아치고, 온 몸으로 이 향을 마셔 당기고, 밀고, 긴장을 느꼈다가 몸을 풀었다가…… 그야말로 향과 함께 호흡했지요.

 

그러다 보니 문득, 울음으로 터져나오려던 슬픔이 호흡에 실려 뱉어지고 또 희석되어 마셔지고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구름의 모습(雲の象)과 함께하는 짤막한 시간 동안, 여전히 울고 싶은 마음은 변함없지만 잔뜩 물기를 머금었던 먹구름이 조금은 가벼워진 것처럼, 견딜 수 없을 것만 같던 기분은 어느새 천천히 흩어지고, 그 자리에는 향이 그려내는 변화무쌍한 향기만이 맴돌고 있습니다.


구름의 모습은 본래 정해진 것이 없겠지요. 처음에는 울음을 가득 머금은 먹구름이었다가도, 한바탕 쏟아내고 나면 어쩐 때에는 푸른 하늘에 둥실 떠오른 새하얀 구름, 융단처럼 펼쳐진 새털구름이나 몽실거리는 양떼구름일수도 있을 거예요. 눈을 돌리면 다른 모습에 또 다른 모습. 마음이 그렇게 슬펐다가도 도로 개는 것처럼, 구름의 모습도 언제고 그 날의 다른 모양으로 하늘을 장식하고 있을 터입니다. 그러니 울고 싶은 날이면 먹구름부터 개운한 구름까지, 물기의 모든 모습을 띠고 있는 이 향을 피워 보세요.


공기 중에 물기가 많은 날에 어울리는 향입니다. 눈구름이 내려앉은 날의 고요함, 비가 쏟아붓는 날의 부드러운 매콤함. 다소 습한 공기와 만나면 침향의 특징 중 또 하나인 신맛도 잘 드러납니다. 먹 냄새, 물 냄새. 어딘가 풋풋한 풀 냄새 종이 냄새.


구름은 부드럽고 그 안에 품은 뇌운은 매캐합니다. 구름은 부드럽고 잘게 퍼진 물방울이 비가 되어 떨어질 때 그 이별은 슬프지만, 한바탕 쓸고 간 비가 세상을 깨끗하게 만들듯 울고 나서는 개운함이 있습니다.


부드러움을 주는 매움. 개운함을 주는 슬픔.


구름의 모습입니다.




향 가게 이야기



오사카 옥초당(玉初堂).


1804년에 히로시마에서 잡화 도매상으로 시작한 가게입니다. 2대째부터 백단 등 향료를 다루었고, 1850년경에 청나라에서 건너온 조향사, 동옥초(董玉初)에게 향 제조법과 배합법을 전수받아 본격적인 향 가게로 거듭났습니다. 이렇게 가게의 스승이라 할 수 있는 동옥초를 기리기 위해 상호에도 옥초(玉初)를 포함했다고 하네요.


이후로 옥초당은 근대를 거치며 사업을 확장하고, 패키지나 조성에서도 전통과 지역색을 살려 다양한 현대적 시도를 하면서 200여 년에 걸쳐 발전해 온 가게라고 합니다. 대외 교류가 많았던 오사카의 역사를 체감케 하는, 오사카의 대표적인 향 가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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