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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하 Oct 06. 2022

나 자신을 들여다보다: 관적침향

전나무 숲 속 긴 여름 휴가

사는 것이 아무래도 불안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잘 하고 있을까? 라는 질문을 떠올리게 될 때 말이지요.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좀처럼 성과가 나지 않을 때, 그러다 보면 내가 정말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옳은 길로 가고 있는 것은 맞는지,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끊이지 않을 때 말이지요.


그런 때, 엉켜 있는 걱정의 실타래를 잘 드는 칼로 썩 하고 잘라내듯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바로 그런 서늘함, 그 이후에 찾아오는 고요함을 주는 향이 바로 다향정(茶香停) 관적침향(觀寂沈香) 입니다.


                                                                           



라벨 색깔과 비슷하게, 서늘한 느낌을 주는 자단목과 침향을 배합한 향입니다. 고요하고 섬세한 느낌이 강해서, 마치 강철로 된 현을 세심하고 가느다랗게 키는 현악기 같네요.


관적(觀寂)이라고 하는 이름은 고요함을 바라본다는 뜻입니다. 호흡을 가다듬어 생각을 멈추는 순간의 고요함에, 문득 세상의 온갖 걱정들을 꿰뚫어 도달하는 깨달음의 순간. 모든 번뇌를 넘어 그 순간에 있는 자신을 들여다보게 하는 침향이라는 이름인데요.


첫인상은 흰 연기가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군불 향입니다. 소나무 장작을 쓴 연기를 닮은 송연향이랄까요. 여기에 이어지는 것은 달콤한 침향을 써늘하게 누르는 시원한 자단 향. 달고, 그런데 서늘하고, 속이 뿌듯하게 더워지는 시원함이라니 무척 한국적인 향입니다. 보통 우리가 '시원하다' 라고 할 때의 그 느낌과 닮은, 깨끗하게 내려가는 시원함이랄까요.


이번에도 다향정 향은 순해서 가까이서 들이마셔도 전혀 매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슴 깊이 나무의 냄새가 배어드는 삼림욕 기분이에요. 서늘하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전나무 숲을 산책하고, 숲 속 오두막에서는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족욕. 몸을 풀어 주는 건강한 프로그램을 세트 메뉴로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바쁜 세상에서 이틀로는 주말이 짧지요. 이런 숲, 이런 적정(寂靜)에 잠겨 세상 시름을 잊는 데는 일주일쯤은 되는 긴 휴가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아침에 눈을 뜨면 짙은 녹음이 머리맡을 덮어 눈이 부시지 않게 부드럽게 깨우고,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는 동안 나무는 나이테를 조금 더 두껍게 만들어 갑니다. 반딧불이 나는 밤과 풀벌레 우는 소리 들리는 심야, 어둡고 고요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시끄럽게 생동감 넘치는 숲.


바쁘고 번뇌 많은 세상에서 눈을 감으면 찾아오는 한 줄기 고요,


정적을 바라본다. 관적침향(觀寂沈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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