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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하 Oct 06. 2022

조금 쓸쓸하고, 조금 우아하고: 취풍

비어 있는 공간을 맴도는 푸른 바람

에서 초저녁으로 접어드는 시점, 이제 집안이 썩 어둑어둑해져 곧 불을 켜야 할 것 같아지는 오후 6시. 조금 열어 놓은 창 밖에서는 동네 소리와 어디서 나는 새 소리, 벌레 우는 소리가 들리고, 어깨에 와닿는 바깥바람은 조금 차갑습니다.


이런 때 공기에 향을 얹는다면 무엇이 좋을까요. 땅거미와 오후의 사이, 이 서늘하고 미묘한 공간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이미 흘러가고 있는 교향곡에 잘 조율된 선율을 하나 더 얹듯 피우는 향.


바로 취풍(翠風)입니다.


요즘처럼 공기가 슬그머니 서늘하다고 느낄 때, 이 계절이 아니어도 시원한 밤에. 그늘이 살짝 있는 공간에서 가뜬하고 은은한 향기로 손님을 맞이할 때. 야마다마츠 향목점(山田松香木店)취풍(翠風)은 무척 좋은 선택지가 되어 주는데요.



쪽빛 바람이라는 뜻인 취풍(翠風)침향을 기조로 하여 배합한 선향입니다. 이름과도 같이 서늘하고 시원한, 바람의 느낌이지만, 침향이 들어가 있어 어딘가 청량하게 달고 포근한 느낌도 어렴풋이 풍겨 옵니다. 물 먹어 그늘진 나무처럼 차분하게 가라앉은 향, 그런데 은근한 부드러움은 그야말로 주위를 감미롭게 감싸 자칫 쓸쓸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향기로운 것으로 바꾸어 줍니다.


짙지도 옅지도 않고, 한 쪽으로 향조가 강하게 튀어나가지도 않고 자신의 모습을 가진 채 그저 바람을 따라 흐릅니다. 그러나 세상에 멈추어 있는 허공은 없지요. 취풍(翠風)은 그 나긋나긋한 향이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이 향에 불을 붙여다 접시 위에 가만히 놓아 두면 취풍(翠風)은 어느새 자그마한 공기의 흐름도 향연으로 채워, 모르는 사이 존재했던 작은 바람, 작은 움직임도 깨닫게 하고, 마음에 가느다란 감각의 아름다움을 일깨웁니다. 자신의 색깔만이 아니라 거실 안에 있던 찻주전자, 탁상, 의자와 화분, 꽃병의 꽃잎들을 감싸고 맴돕니다. 거실 속에 불러들여 온 한 줄기 푸른 바람입니다.



이런 바람이 집 안에 불 때면, 자칫 기분이 가라앉을 수도 있는 차가운 저녁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만한 감정이라고 여겨져 편안해지고, 벽에 일렁이는 그림자는 소설 속에서 그리는 듯한 우아한 쓸쓸함으로 변하는 것 같습니다. 다른 말로는 감성적, 센티멘털이라고도 하던가요. 취풍(翠風)이 주는 우아한 쓸쓸함 속에서라면, 이 저녁. 나를 위한 클래식 음악 한 곡도 좋겠어요. 제 추천은 차이코프스키의 감성적인 왈츠(Valse Sentimentale) F단조, Op 51, No.6입니다.


푸른 바람이 부는 푸르스름한 저녁 속. 가느다랗고 섬세하게 허공을 맴돌고 있는 취풍(翠風)의 향기와, 헛헛하게 비어 있는 집안을 채우는 섬세한 바이올린 선율, 너무 크지 않은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듣고 있자면 내 마음에도 조금의 빈 공간이 있어도 괜찮겠구나, 싶어져, 이 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겠다는 기분이 됩니다.


 



향 가게 이야기



야마다마츠 향목점(山田松香木店)은 1700년대, 교토의 고쇼(御所; 당시 황궁) 옆에서 약재상으로 창업했고, 곧 향 원료들을 다루면서 점차 향 전문점으로 바뀌어 간 가게입니다. 원료부터 취급했으니 다른 가게들에 비해 품질과 가격 면에서 경쟁력이 있었고, 지금까지도 그 섬세하고 날카로운 감각을 잃지 않은 채 교토의 대표적인 향 가게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향 재료를 반죽해 가늘고 기다랗게 만든 선향(線香)은 예전에도 두루 쓰였고 현대에도 손쉽게 불만 붙이면 감상할 수 있는 향이어서 기본 상품으로 인기가 많습니다. 야마다마츠 향목점에서는 선향만 해도 수십여 종류 다양한 제품을 다루고 있는데요, 그 중 국내에 수입되어서 셀렉트 샵 등에서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시리즈 중 하나로 취풍(翠風)을 소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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