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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하 Oct 06. 2022

'향멍' 은 어떠세요?

내 삶에 피어오르는 한 줄기 향기

'멍 때리기' 가 그렇게 몸과 마음에 좋다고 합니다. 별 생각 하지 않고 멍하니 있는 시간은 뇌에 휴식을 부여하고, 긴장한 몸도 이완시키고, 일에 지친 심신에 환기도 된다고 하지요. 가만히 타고 있는 모닥불을 쳐다보는 '불멍', 흐르는 물을 쳐다보는 '물멍', 그리고 산에 올라 보이는 풍경을 그저 바라보는 '산멍' 이라는 신조어도 유통되는 모양이더라고요.


물론 도시에 사는 현대인은 아무 곳에서나 불을 피울 수 없으니, 유튜브에 '불멍' 이라고 검색어를 넣으면 컴퓨터 화면을 가득 채우는 고화질 모닥불 영상이 한가득 등장합니다. 24시간을 꽉 짜여진 스케줄로 살아가며, 무엇이든 생산적, 효율적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우리들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을 수 있는 시간' 이라는 것은 생각보다도 소중한 것인가 봅니다.



그런데 막상 그러면 나도 멍하니 있어 보자, 하고 생각해도 이것 참 쉽지 않습니다. 집안에서 고화질 모닥불 영상을 보고 있는 게 진짜 힐링에 도움이 될까요? 막상 공원에 나가서 앉아 있어도 바쁜 일정이 머릿속에 와글와글 떠돕니다. 한강 잔디에 가만히 앉아, 가장 오래 멍하니 있는 사람이 우승한다는 '멍 때리기 대회' 라는 것마저 개최되는 것을 보면 혼자 멍하니 있는 것마저도 도대체가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큰 마음 먹고 물이나 산을 보러 가려면 소중한 주말쯤은 희생해야 하고요.


그냥 하루하루 살면서 간편하게 한 번씩 멍을 때리고, 마음도 가다듬는 방법은 없을까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멋있고, 간단하고, 시간도 얼마 들지 않는, 세상이 힘들 때 피우는 그것은 바로…… 향입니다. 집에 향을 하나 피워 놓고 무럭무럭 피어나는 연기를 멍하니 쳐다보는 것입니다. 이게 정말 끝내주는 방법이거든요. 빠르고 쉽다! 간단하다! 불만 붙이면 된다! 그런데 인센스라니, 왠지 트렌디해! 향기에도 조예가 깊은 멋있는 사람 같아!


그런데 정말로 향 한 줄만으로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향멍은 불멍보다 하기 쉽고(집에서 불을 붙여도 되니까요.) 물멍이나 산멍처럼 멀리 갈 필요 없고(집에서 하면 됩니다.) 멋진 것 같은데, 과연 그 정도로 효과가 좋을지…….





자, 반신반의하면서 한번 따라와 봅시다.


손에 마법의 라이터, 혹은 마법의 성냥을 하나 드세요. 치익, 하고 불을 켜서 향 끝에 붙이면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연기가 먼저 눈앞에 보입니다.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코 끝에는 일상에서 맡아 보지 않았던 새로운 향기가 찾아오고, 눈을 감으면 향기에서 피어오르는 머나먼 세계가 펼쳐집니다.


초저녁으로 접어드는 가을날의 오후, 문득 서늘하고 문득 쓸쓸한 거실을 우아하게 바꾸어 주는 향기, 화사한 주말 낮, 흐르는 재즈 선율과 함께 카페에서 은은히 풍겨 올 것 같은 향기, 포근하고 달콤한 구름 같은 이불에 감싸여 나만을 위한 휴식을 취하는 기분이 들게 하는 향기.



향 한 줄이 타는 시간은 짧게는 10분에서 길게는 30분. 향기는 맛과 함께, 대뇌의 의식적 처리를 거치지 않고 곧장 기억과 감정과 연결되는 감각 중 하나라더라고요. 짤막한 시간 동안 향기 하나가 펼쳐내는 세계를 느끼는 일은 절로 집중할 구석을 만들어 어지러운 현실에서 잠시 숨을 돌리게 만들고, 그렇게 편안해진 마음으로 무럭무럭 피어나는 향 연기가 익숙한 내 방 안에 퍼져 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래, '향멍' 은 참 효과가 좋구나, 하고, 가만히 생각하게 된답니다.






이 책에서는 일상의 즐거운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향들부터,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게 하는 명상 같은 향, 세상에 없는 심상을 그려내는 문학을 모티프로 하는 향, 그리고 가 보지 않은 풍경조차도 생생하게 그려내는, 여행지를 모티프로 하는 향, 네 가지 주제로 나누어 직접 피워 볼 수 있는 향들을 소개합니다.


향을 다루는 향도(香道)에서는 향을 '맡는다' 라고 하지 않고, '듣는다' 라고 한다더라고요. 일부러 들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소리가 있다면 들리기 마련인 소리처럼, 향도 일부러 맡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그저 가만히 있으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는 뜻으로 쓰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부담없이 시작해 보세요.


조용히, 멍하니, 가만히. 불을 붙여 놓고 있으면 소리가 들리듯 그저 들려오는 향기, 나를 고요하고 편안한 멍함으로, 그런데 거기서부터 새로운 세계로 데려다 줄 향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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