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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하 Oct 06. 2022

나만을 위한 달콤한 이불 속: 자운침향

마음을 달래는 포근한 구름


아, 당 떨어진다.


그런 생각을 해 보신 적이 있으실 거예요. 실제로 포도당이 뇌에 필요하기도 하고, 힘든 하루를 보내고 나면 달콤하게 나를 달래 줄 사랑스런 디저트, 커피, 초콜릿, 사탕, 아무튼 단 것이 간절해집니다. 꼭 실제로 단 먹거리가 아니더라도 '달콤한 휴식' 이라는 말처럼, 달콤하다는 것은 바로 나만을 위해 준비된, 너무나 반갑게 여겨지는 소중한 어느 한 순간을 뜻하겠지요.


향에서도 바로 이렇게 달콤한 향이 있습니다. 그 맛이라고 하자면 초코 맛 시리얼에서 하얀 마시멜로만 골라서 쏙쏙 빼 먹는 맛, 크렘 브륄레의 파삭파삭한 설탕 부분을 톡톡 깨 먹는 맛, 그리고 향이 다 타서 더 없을 때의 아쉬움으로 말하자면 어릴 적 먹었던 뽀빠이 과자에서 별사탕만 골라 먹다 사탕이 이제 더 없다고 아는 순간의 아쉬움입니다. 아, 하나만 더!


달콤한 그 향은 바로 침향(沈香)입니다. 향 중에서도 꽤 고급 재료인 침향은 아주아주 비싼 침향인 경우 달고, 맵고, 시고, 쓰고, 짠 다섯 가지 맛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일반적으로 느껴지는 인상은 진한 초콜릿이랄까요, 묵직하고 달콤한 느낌이 강하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인생에 당이 떨어질 때 피우기 좋은 향이지요.


침향 원목


비싼 침향은 질과 가격이 비례하고, 비싸고 좋을수록 그 진한 맛이 강해져서 인생의 시름을 깊이 달래 줍니다. 이렇게 말하니 꽤 수상하게 들리지만 진짜입니다. 어느 날은 제가 친한 향 가게 사장님이 제게 작은 향 토막들이 담긴 플라스틱 케이스를 건네 주면서 비밀스럽게 말씀하셨어요. '인생이 힘들 때 조금씩 피워.' 그건 제 형편으로는 살 수 없을(거라고 사장님께서 말씀하셨고 저는 아직도 그 향의 정확한 가격을 모릅니다.)만한 등급의 비싼 침향이기 때문에 슬쩍 나눠 주는 것이라고 하시면서요. 그 이후에 진짜로 저는 인생이 정말 정말 정말 힘들 때, 창가에 서서 깊은 한숨을 내쉬며 그 향 통을 꺼내서 손톱만한 작은 토막을 피우며 지는 해와 저무는 남빛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기분이 좀 괜찮아졌는지, 얼마나 나아졌는지는 비밀로 할게요. 여기서 소개드릴 향은 그 엄청나게 비싼 침향이 아니라 우리도 일상에서 편하게 피울 수 있도록 배합되어 나온 침향이니까요.






다향정(茶香停)에서 나온 자운침향(慈雲沈香)가게에서 파는 침향들 가운데 중간쯤 가는 가격으로, 저는 딱 부드럽게 침향의 뉘앙스가 필요할 때 편히 찾고 있는 제품입니다. 백단향과 침향을 배합한 향인데 백단의 가뜬함과 침향의 달콤 우아함이 어우러져 온 몸을 따스하게 덥혀 주는 기분이 들거든요.


자운(慈雲)은 자비로운 구름이라는 뜻으로, 구름이 온 하늘을 덮듯이 부처님의 은혜가 널리 미치는 모양을 뜻한다고 합니다. 다향정의 향들은 기본적으로 불교 쪽 네이밍을 택하고 있는데, 꼭 종교가 일치하지 않아도 이렇게 뜻하는 바를 알아보고, '그러면 어떤 향일까' 를 떠올려 보는 일이 재미있습니다. 자운침향은 그러니까, 넘실넘실 세상을 감싸는 사랑과 자비의 향기인 것이겠네요.


불을 붙이면 탑탑하다고 해야 할까, 따스하고 달콤한 침향의 뉘앙스가, 너무 무겁지 않게 배합된 백단의 시원함을 타고 하늘 위로 높이 날아오릅니다. 향연(香煙)을 감상하는 것을 좋아하는 저에게는 반갑게도 연기가 무럭무럭 피어오르는데, 꼭 군불에서 나는 밤 익는 향, 녹진한 나무가 타면서 수지가 녹아내리는 향처럼 느껴져 아늑한 기분을 만들어 줍니다.



저는 밤에, 혼자서 잠옷을 갈아입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 좋아하는 음악을 튼 뒤에 이 향을 조금 진할 정도로 빠듯하게 태우기를 좋아합니다. 꼭 달콤한 구름 속에 감싸인 느낌이 들어 푹 잘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가만히 손에 들거나 곁에 놓고 호흡하면 푸근하고 안정되는 이 향기가 피어올라, 절로 긴장이 풀리고 몸 속에 깃들어 있던 삶의 깊은 시름을 녹여내 줍니다.


침향은 단독으로 피우기에 묵직하고, 왠지 명상을 해야 할 것 같은 이른바 격조 같은 것이 있다고 한다면, 거기에 백단을 더해 온 세상에 깃털처럼 가볍게 내려앉도록 하는 자운침향(慈雲沈香)의 배합은 사람을 편안하게 달래 주는 포근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만을 위한 달콤한 시간, 세상을 뒤덮고 내 침대맡도 감싸는 자비로운 구름. 마음을 달래는 포근한 자운침향(慈雲沈香)의 향기입니다.





향 가게 이야기



다향정(茶香停).


조계사 앞, 불교 용품점이 쭉 늘어서 있는 거리에서 간판들 사이에 보이는 이름입니다. 다향정은 한국의 향 전문점으로, 각종 향 원료와 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선향, 이외에도 여러 향 관련 물품들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향은 홍차만큼 판매점이 많지도 않고 인터넷에서 알아볼 수 있는 정보도 적어서 입문이 상대적으로 쉽지 않다는 인상인데요, 이 다향정에 방문하면 인상 훤칠하신 사장님께서 젊은이들을 무척 반기시면서 이것저것 샘플들을 피우며 친절하게 향을 소개해 주시곤 합니다.


한국 향당들에서 나오는 향은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대체로 기운이 강해서 탁 트인 야외나 널찍한 절 정도는 되어야 매캐하지 않고 진면모를 느낄 수 있는 경우가 많은데, 다향정의 향은 순한 편이라 가정집 실내에서 피우는 생활 향으로 잘 어울리는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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