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뼈 위로 찬바람이 돌아나갔다. 실뱀이 스치고 간 감촉에 소스라치게 만드는 가을바람이었다.파란 물감 뒤집어쓴 하늘은 뒷짐을 진 채 물러나 흰 구름의 독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나온 계절 동안 순수한 초록으로 물들었던 나무들의 유혹이 시작되었다. 여름의 뜨거움을 삼킨 단풍잎은 짝사랑을 감춘 사내의 속처럼 재가 되어 타버렸다. 주위에 온통 낙엽과 노을로 타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노랗고 붉게 물든 나무는 어느 계절보다 치열하게 아름답기로 결심한 듯했다. “모든 잎이 꽃이 되는 가을은 두 번째 봄이다” 알베르 카뮈의 말이 책장 속에서 생경하게 되살아났다.
산만해진 바람이 머릿속을 휘돌아 나가면 정신 나간 사람처럼 멍해졌다. 열기가 빠져나간 몸에는 가을 햇살의 따스함에 꾸벅꾸벅 잠이 차올랐다. 환절기에 바스러질 듯한 면역력은 여기저기서 고장 신호를 보내왔다. 자주 길게 드러누웠다. 그럼에도 부산해진 마음은 발걸음을 밖으로 향했다. ‘금빛 물결 파도치는 억새밭에 가야지’, ‘춤추는 코스모스를 보러 양재천에 가야지’,‘갈대가 바람에 드러누울 때면 매듭에서 똑똑 부러지는 소리를 들어야지..’ 가을은 찰나의 순간이라 때를 놓치면 기다림은 더욱 길어질 뿐이다.
가을은 대하와 전어만 살찌우는 게 아니었다. 까만 밤우는 귀뚜라미의 목청이 높은 하늘 아래에서 증폭되었다. 계절이 흐르던 소란한 낮과 달리 밤에는 정지된 듯 고요함이 더해진다. 가을 햇살이 숙성시킨 감나무는 밤이면 주황복주머니를 뚝뚝 떨군다. 몰래 혼자 우는 사람의 눈물방울 같다. ‘이렇게 또 한 시절이 지나가는구나’ 가을이 오면 나는 이상하리만치 서러워졌다. 화려한 만물들이 소생하던 봄을 향한 질투와는 다른 우울감이었다. 소멸해가는 것들에 대한 상실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거울나라의 앨리스에는 붉은 여왕이 나온다. 앨리스가 숨을 헐떡이며 나무 주위를 달리는 여왕에게 묻는다 “계속 뛰는데, 왜 나무를 벗어나지 못하나요?”, “여기서는 힘껏 달려야 제자리야. 나무를 벗어나려면 지금보다 두 배는 더 빨리 달려야 해.” 거울 나라는 한 사물이 움직이면 다른 사물도 그만큼의 속도로 따라 움직이는 특이한 나라였다. 내가 사는 이 세상도 끊임없이 돌고 있다. 예민한 사람들도 잘 느끼지 못한다. 산, 바다, 건물, 공기까지 지구 위에 있는 모든 물체들이 함께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가 기울어진 채로 자전과 공전을 할 때 계절은 찾아온다.
영혼의 티끌을 모으며 달려왔더니 문득 삶이 제자리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머리 위로 새로운 계절의 바람이 지나갈수록 하루를 더 나이 먹는다. 번갯불에 콩 볶는 속도로 가을은 사라져 가고 있고 양 날개에 허무의 바람이 차오른다. 지금 있는 곳을 벗어나려면 두 배는 더 빨리 달려야 한다는 붉은 여왕의 말에 애써 쓴웃음을 지어본다. 상실의 계절 가을을 앞에 두고서야 지나온 잃어버린 세월을 떠올린다.
누군가는 그랬다. ‘꿈을 잃지 않는 한 영원히 늙지 않는 거야.’ 현실이라는 삶의 무대에서 빛바랜 꿈을 날실에 엮어 바느질을 해본다. 씨만 남은 비쩍 마른 대추알 같은 꿈이라도 그 속에서 호기심은 늘 새어 나왔다. 꿈은 현실 앞에서 초라해지지만 꿈이 없는 자의 텅 빈 눈빛만큼 시리지도 않다. 작은 대추씨 안에는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초승달 몇 낱의 계절이 스며들어있다. 장석주 시인의 <저게 저절로 붉어질리는 없다> 시를 읽고 대추 한 알이 무르익기까지 온 우주가 담겨있다는 걸 깨달았다. 하물며 한 인간이 무르익기까지 한 개도 쓸모없는 시간은 없었다.
이제 곧 마흔, 삶의 절반이 끝나버린 지금 생각해본다. 다시 태어나도 지금과 똑같은 삶을 살 것인가. 지난날의 뜻 모를 실수와 철없는 행동에도 다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그때 그 비를 맞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나를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름다웠던 시간들은 아름다운 대로, 슬프고 궁상맞은 추억들은 초라한 대로 모두 제 의미를 지녔다. 가을 대추는 귀한 식자재라고 한다. 소화기능을 높이고 오장을 보하여 면역력을 강화한다. 맛이 좋고 효능이 좋아 임금님의 수라상에고 자주 올랐다. 가을이 오기까지 대추는 몇 번의 번개와 서리 속에 떨었을지 떠올려 본다. 찬서리 맞은 가을 무처럼 길고 긴 인내의 시간만으로도 귀한 존재가 되는 것들이 있다. 나는 가을 앞에 서서 지난날들과 미뤄둔 화해를 시작해보려 한다. 나의 삶에도 두 번째 봄이 찾아오고 있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