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여정이 행복하니?
고요 :
교환 일기가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몇 일전에 우리가 예전에 주고받았던 편지들 찾는다고 편지함을 뒤져봤잖아, 거기에 네가 써준 편지 분량이 어마어마한거 아니? 학교 다니는 내내 너랑 쪽지며 편지며 낙서를 주고받았으니까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되게 감동적이더라.
손으로 쓴다는 행위는 시간이 들어가는 일이잖아. 특정한 대상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생각을 나누는 것도 나이가 들수록 점점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로 느껴지고. 한 보따리 쌓인 편지들에 그만한 정성이 들어있다고 생각하니까 지난날의 어린 조이에게 새삼 고맙더라고. 네가 고맙지 않은 적은 없지만!
아무튼 고등학생 때 매일같이 주고받던 글이 우리 교환 일기의 시초라면, 난 거진 10여년 만에 교환 일기를 써 보는 거야. 편지랑은 다른 느낌이야. 네가 먼저 쓴 일기에 댓글을 다는 기분으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어. 그리고 네 처음 질문을 곰곰히 생각하고 있어.
우리의 여정이 두려웠던 순간은 언제일까?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가장 두려웠던 순간을 뽑으라면 나는 우리가 맨 처음 같이 일을 시작하기로 결정한 그 날이 가장 두려웠던 것 같아. 너도 알다시피 나는 느리잖아. 말도 행동도 결정도 느린 편인데, 결정하기까지가 가장 어렵고 그 이후는 행동하기만 하면 되어서 오히려 덜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
물론 잡생각이나 걱정은 그림자처럼 쭉 함께 가더라. 누구나 잠들기 직전에 스믈스믈 베겟머리로 찾아오는 생각들 있잖아. 이것 또한 두려움의 한 종류일 수 있지만, 우리는 이걸 안고 가는 방법을 실천중인 것 같아. 우리 회의할때 네가 자주 하는 말 있잖아. "그럼 이게 문제고, 이걸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참 지혜로운 방법이라고 생각하거든. 걱정만 해서는 해결될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걱정이 앞서거나 조급할 때, 모니터를 슬그머니 켜게 돼. 딱 20분만 서칭하고 자야지, 딱 20분만 해야지. 이렇게 하다보면 보통 한 시간은 훌쩍 지나있고 그 시간에 내 불안이 함께 녹더라. 이런 건 우리 고등학생 때랑 똑같은 것 같아. 가장 불안한 순간은 '수능을 망치면 어떻게 하지?'하고 걱정할 때고, 막상 문제집을 풀 때면 성취감이 두려움을 이기잖아. 돌이켜보면 수능은 1년에 한 번 뿐이라는 가혹한 시험인데, 지금의 우리는 한껏 실패하고, 실수하고, 도전할 수 있는 게 참 감사한 일 같아.
다시 주제로 돌아와서, 함께 일하는 게 두려웠다는 건 너를 믿지 못하거나, 함께하고 싶지 않아서라던가, 그런건 아닌거 알지? 사람은 모르는 거나 이해못하는 것들을 두려워하잖아. 10여년간 이미 '친구'라는 관계를 공고히 쌓아놓은 우리가 '일'이라는 미지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게 나는 두려웠어. 우리가 가꿔놓은 '친구'라는 관계가 나한테 너무 소중하고, 너무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어서 그 관계에 조금이라도 마이너스가 될 옵션을 고르고 싶지 않았거든.
다들 그런 말을 하잖아. 친구끼리는 사업하는거 아니다, 의 상한다. 내가 아는 누구도 같이 일하다가 갈라졌다. 특히나 그 때의 나는 사회에 한창 데이면서 '일은 일이고 회사는 회사고'식의 마인드를 가져서 더 걱정스러웠을지도 몰라. 삶과 일을 칼처럼 분리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 그 때 네가 했던 얘기 기억나? 너는 회사에서 오히려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났고, 평생 친구라고 생각할만큼 좋은 관계를 쌓고 있다고 했어. 그렇게 말하는 너를 보면서 새롭게 눈이 뜨인 것 같아. 같이 일을 하면서 친구일수도 있구나. 오히려 즐거울 수 있구나. 진짜 동료는 일을 서로 넘기고 책임 소재를 물어보는 게 아니라, 의지가 되는 존재구나. 그런 걸 네가 알려준거야.
네 위트 계정을 여기에서 얘기해도 되니?(@apieceofwit) 그게 딱 너를 잘 나타낸다고 생각했어. 위트 한 조각은 우리 삶을 훨씬 풍요롭게 만들고, 한없이 달리는 중에 여유를 갖게 도와주잖아. 정말 중요한걸 잊지 않게 도와준다는 점에서 너랑 일치하지 뭐니. 너는 틈틈히 우리가 받아야할 셀프 보상이나, 목표로 하는 여행지같은 걸 얘기해주잖아. 그게 우리가 길을 잃지 않게 만들어줘. 어디서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를지, 우리가 가는 길의 풍경이 얼마나 다채로운지, 정말 중요한 게 뭔지 되짚어 주는 네가 있으니까 난 단단할 수 있어.
조이야,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일은 이미 일어났고, 실시간으로 진행되고 있어. 그게 앤솔로지 클럽이지. 이번에도 너는 함께 일하는 게 두렵기보다는 설레는 영역이라는 걸 알려줬어. 서로 자주 말하잖아. "네가 아니면 난 지금 회사로 돌아갔을거야." 주춤거리는 나에게 계속 새로운 징검다리를 놓아준 네가 있어서 나는 한번도 보지 못한 풍경을 맛보고 있어. 우리가 가는 길이 거칠고, 비도 오고, 번개도 치지만 매일이 재밌어. 네가 빗 속에서도 춤을 추는 법을 알려준거야.
당연히 새로운 고민은 계속 업데이트 되겠지? 몇 일전에도 내가 관계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은 것 처럼. 나는 내가 어른이 되면 이런 고민은 말끔히 사라질 줄 알았어. 전혀 아니더라! 똑같은 고민이 새로운 형태로 기출변형해서 등장하더라고. 심지어 경험이 쌓일수록 문제가 심화되어서 출제되더라. 관계에는 노력이 필요하고, 누군가의 호의는 누군가한테는 둘리가 될 수 있고, 인간관계에는 정답이 없고, 접점은 점점 더 좁아지는데 예전보다 더 조심스러워지고...
그런 잔걱정을 이어가는 나한테 네가 또 말해줬지. 우리는 대화를 멈추지 않을 거라고. 단단한 네 모습을 보면서 나도 생각을 가지치기 하고 가장 단순하게 생각하려고 해. 우리가 처음에 한 말을 떠올려. 우리의 관계가 1순위로 소중하다는 말. 그러면 내 두려움은 다른 단어로 쓸 수 있게 돼. 앤솔로지 클럽에 대한 애틋함이고, 소중함이지. 가장 중요한 건 변하지 않았으니까, 그 외의 것들은 무서워 할 필요가 없는 일이라는 용기가 생겨.
너한테도 물어보고 싶어. 우리의 여정이 행복하니? 삿포로 오타루에서 눈을 펑펑 맞으면서 걷던 날 기억하지? 허리까지 눈이 쌓인 도시에서 강풍에 폭설을 맞으면서 서로 하얗게 쇤 얼굴을 보면서 깔깔거렸잖아. 눈을 그치게 하진 못하지만 같이 걸어가면서 깔깔거릴 수 있는 동료고, 친구이고 싶어. 그러기 위해서 길을 잃은 것 같으면 따끔하게 알려줘. 지금 여행이 필요하다고 가감없이 말해줘. 우리의 기쁨이 가장 중요하니까. 네가 내 손을 잡고 이끌어 준 것처럼 나도 너한테 반짝이는 일상을 선물하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