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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의별 Feb 21. 2024

아직도 할 일이 많아 청년이야.

감사편지. 여덟 번째.  [신경안정제] 좋아!

일박이일.

청년공동체 리더들과 수련회를 다녀왔습니다.


나에게 가장 취약한 날씨인 구름 꽉 찬 비 오기 전 날씨입니다. 이럴 때 미리 꼭 챙겨야 하는 필수품은 몸살약이죠.


20대 초반부터 30대에 이르는 청년들과의 일박이일 여행을 위해 몸살약까지 챙기며 떠나는 여행인데 마냥 즐겁습니다.

가벼운 가방하나 고 가볍게 나가는 나를 향해 남편이 그럽니다.


"자네 코 골아서 잠자다 청년들이 다 도망갈 거야, 완전 민폐인데."

"걱정 마요. 벌써 몇 번째 동침인데"


그렇죠.

60이 넘은 어른이랑 함께 하룻밤을 보내야 하는 건 그리 편하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수련회 같이 가실 거죠?"

"수련회 같이 가시는 거 맞죠?"


같이  가야 하는 이유를 나열하며 수시로 확인을 해주는 청년들과 동역자들이 있어 난 망설임 없이 그들과의 동침을 선택한 겁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른 다음날이 이어지지만 이들의 취침시간은 아직 멀어 보였습니다.

난 뜨끈한 방바닥에 몸을 놓았습니다.

아마 금방 코를 골며 잠이 들었을 거예요.


쉬지 않는 진동소리에 폰을 들었습니다.

7시가 넘었답니다.

어라 벌써 아무도 없네요. 문밖에서 도란도란 대는 목소리들이 들려왔습니다,

아마 곯아떨어진 어른을 까울까 좁은 거실에서 머리를 말리고 화장들을 하나 봅니다.


'아차. 남편말처럼 다들 도망간 건 아니겠지?'


그러나


"잘 주무셨어요?"

"외풍 있던데 춥지 않으셨어요?"

이들의 합창소리에 기분은 화창한 맑음이 됩니다.


사랑과 김이 철철 넘치는 아침까지 대접받고(본의 아니게 나보다 발 빠른 사모님 덕) 하루 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새로운 임원들과의 엠티다 보니 서로를 알아가기 위한 활동으로 옆사람 칭찬하기.


"간사님은 늘 그 자리에서 꾸준하게 저희를 도와주시고 계셔요.

우리가 처리할 수 없는 일이 생기면 마지막에 꼭 해결사가 되어주세요"


참고로 [간사는 지도하는 자]. 일반적 교사의 역할인데 청년부는 성인들이다 보니 [간사]라는 호칭을 사용힙니다.


옆자리 남자청년의 진심 어린 칭찬에 눈물이 왈칵 솟아오릅니다.

남편이 눈치 없이 청년들을 따라다닌다고 놀려대지만, 저질체력을 끌고 꿋꿋이 이들과 함께 하는 건, 솔직하게 존재의 가치를 표현해 주는 이들의 이 마음 때문입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점심식사를 하러 감자탕집에 들렀습니다.

부장집사님이 챙겨준 앞치마를 사모님이 냉큼 목에 걸어주셨어요.


"두 분 챙기시는 모습 너무 보기 좋아요"

"제가 이래서 청년부를 못 떠나요. 어디서 이렇게 챙김 받겠어요.


그때 사모님이 그러십니다.


"그냥 권사님은 옆에 있어만 주시면 돼요. 권사님은 저희의 <신경안정제>이세요."


난 그날 몸살약을 먹지 않았습니다.



나는 오랜 시간 비타민의 역할을 했었죠. 그것이 나의 주어진 소명처럼 둘러메고 다녔습니다.

그러다 50대 중반 너무나 버거워 이제 당신들을 위해 채워줄 비타민은 소진되었다고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그러고는 깊은 나만의 세계로 가라앉았어요. 아무도 무어라 말하지 않았지만.

오직 하나의 목적으로 강을 거슬러 올라온 연어가 알을 낳고 죽어 버리는 것처럼, 나도 그랬습니다.


매주마다 숨을 쉬러 온 곳이 청년부였답니다.

깔깔대는 이들의 웃음이 좋았고, 무얼 해도 눈치 보이지 않는 이곳이 좋았어요. 큰소리로 찬양을 해도 이들의 열정에 묻혀버리고, 큰 소리로 울어대도 이들은 궁금해하지 않았습니다. 가끔씩 해 주는 야식하나에, 차 한잔에 이들은 무한감사를 보내오기도 합니다.


몸도 지능도 따라주지 않는 놀이에 끼워주는 이들이 그냥 고마울 뿐입니다.

이들과 함께 할 때, 나의 본능이 꿈틀대고 나의 성향이 제 역할을 니다.


[신경안정제]

이제 나의 역할은 이것으로 정했습니다.



얘들아!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어 나도 청년이야.

'큰 꿈은 없습니다' 찬양의 가사처럼 한 꿈을 같이 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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