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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의별 Oct 22. 2024

당신의 결핍과 나의 결핍이 만나.

감사편지 서른아홉 번째.  역지사지 (易地思之)

'도대체 나한테 왜 저러지?'


그때는 그랬습니다.

억울해서 밤잠이 오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지난주,


'준상담자 소진 회복을 위한 마음 챙김'


이란 주제로 보수교육이 [구미청소년상담센터]에서 있었습니다.

정신인문치유강연가로 소개되기를 원하시는 힐링닥터 사공정규교수님이 강의를 해 주셨습니다.

2시간의 짧은 강의를 마치고 점심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교수님과 같은 식탁에 앉게 되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더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지요.


"강의 중 무엇을 깨달았냐"는 질문에 "역지사지(易地思之)"라 망설임 없이 답했습니다.



강의 전 나누어 주신 자료에 '번아웃'이란 주제가 있어 은근 기대를 했지만, 첫 시간의 강의는 마음을 여는 시간이었습니다. 아이스브레이크 같은 느낌!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긴 휴식시간이 끝나고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셨습니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하시고.


기본값을 못하는 어른들에 대한 호통소리에 정신이 번쩍 듭니다.  


"넘어지는 아이를, 넘어지는 어른(우리)이 잡으면 같이 넘어집니다."

"방향이 잘못된 열심은 하지 못함만 못해요."

"바빠서 도끼날을 갈지 못한다 우기고 변명하며 나무를 찍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세요."

"상대방의 상태 때문에 내가 불편할 필요는 없습니다. 기분 나쁜 일반적 반응은 있겠지만 지속적 반응은 모면합시다"


그리고


혼자만 상처받았다고요? 당신도 분명 상처 주었습니다.
입장 바꾸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왜 나한테 상처주느냐 손나팔을 해 가며 외쳐 되었던 나의 심장을 향하여 이분의 외침은 날카롭게 꽂혔습니다.

누군가는 그럴 수도 있었겠어요.

힐링닥터 라면서, 위로받기 위해 왔더니 저렇게 호통을 쳐도 되는 거냐고.


그곳에 계신 분들의 마음은 어떠했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역지사지 (易地思之) 사자성어가 지금까지도 저의 뇌리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사실 '입장 바꾸어 생각해 보라'는 건 셀 수 없이 들었고 생각했을 겁니다.


다시 입장 바꾸어 생각해 봅니다.


그들은 왜 나한테 그랬을까?




오늘은 누구에게 편지를 적어야 할까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일방적인 행동이 도대체 이해되지 않아 심리학에 빠지게 했던 몇몇 분이 생각납니다.

지난날 사랑방원이었던 조현병을 앓고 계신 모 집사님.

극도의 우울증 증세로 다수의 사람들을 혼란케 했던 모 집사님. 이분들의 우울증 증세는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저에겐 트라우마처럼 깊은 상처로 남겨져 있습니다.


모든 게 당신 때문이었어

그분들은 떠났고 한분은 잘 회복되었다고 전해 듣고 있지만, 저에게 남은 그분들로 인한 근거 없는 비난의 화살이 박힌 자리들은 조금만 건드려져도 소스라칠 만큼 고통입니다.

그들 마음의 고통을 이해하고자 했지만 전 잘못된 방향을 향해 달려가는 열심이었고, 전문가가 아니었던 저도 같이 기울어져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급기야 저조차 우울증 환자라 소문이 나더군요.


그래서 억울했습니다.

5년이란 섬김의 대가가 '그래도 그동안 수고했다'는 토닥임이 아니라 무리 지어 비난을 쏟아붓던 그 무리들을 지금도 용서할 수 없는 통증을 이젠 조금 덜어보고자 그들의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기로 합니다.


누군가 그러셨습니다.


"저들은 몰라서 그래요"

진심 어린 사과를 요구하는 저를 향하여 끝까지 변명을 늘어놓던 분을 대신하여 사과를 하셨지요.


그랬을 거예요.

어린이집 원장이란 타이틀이 있고,

지나치리만치 당당한 태도가 있고,

부족해 보이지 않는 경제력이 있어 보이고,

저를 전적으로 지지와 지원하는 가족이 있음을 자랑스러워하는 제 모습에서


저를 향한 이해보다는, 저보다 결핍이 있어 보이는 저들을 향한 연민으로 저를 가해자라 지목했겠지요.

남편에게조차 외면당하고 있는 저들을 섬긴다고 설쳐 되는 제가 얼마나 교만해 보였을까요?

어쩌면 '난 당신들과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우월의식 속에 빠져서 교묘하게 섬기는 척 한건 아니었는지 돌아봅니다.


"우울증은 괜찮으세요?"


몇 년 만에 인사를 건넨 어느 분은 실수였는지, 남들은 다 아는데 저만 모르고 있는 사실을 이야기해 주신건지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그때 그렇게 물어보셔서 놀라서 제가 웬만한 심리검사를 다했어요"


그분은 전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며 손사래를 치며 당황해했지만, 어째던 저는 그 한마디로 상담심리학에 빠졌고, 저 자신을 깊이 제대로 찾아가는 몇 년의 긴 여정이 있었습니다.


도저히 저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었던 그분들이 제 삶에 들어와 주심으로 저는 지금 청소년 상담센터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혹 지금도 저의 숨겨진 가면을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글쓰기를 통해 끊임없이 확인해 갑니다.


인정에 배고팠던 저의 결핍과, 겉으로 보이기에 조금 부족해 보이는 가정과 경제적 그들의 결핍이 만나, 엄청난 소용돌이를 일으킨 상황 속에서. 

허우적 된 시간이었지만,


저는 이 시간들을 감사하겠습니다. 


2024년 10월 22일 김미*



와 물고기는 바람과 물의 저항을 이겨낼 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처럼, 인간은 고통이란 저항 때문에 성장한다.

(동국대학교 의과대학 / 의학전문대학원. 정신건강의학과 사공정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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