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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의별 Oct 15. 2024

당신은 무슨 꽃이에요?

감사편지 서른여덟 번째. 무슨 꽃이든 아름답습니다..

보라색 꽃을 좋아합니다.

봄이면 봄대로, 여름이면 여름대로, 가을이면 가을대로, 우리 집 마당은 보라색 천지입니다.


그러나


올해 시월의 우리 집 마당은, 지독한 무더위 탓인지 마당 가득해야 할 보라색 아스타 국화도, 이런저런 국화꽃들도, 듬성듬성 이곳이 본인의 자리임을 겨우 알려주는 듯 피어있습니다.

한쪽 벽을 다 채우던 청보라색 나팔꽃조차 맥을 못 추는군요.


잿빛이 스며든 가을비 내리는 날이어서 그런지 서글픔이 밀려발길을 돌리려는 순간, 바이올렛 앙증맞은 꽃무더기가 눈에 들어옵니다.


바다국화. 해국입니다.





저는 이기철 시인님의 시를 통해 바다국화를 처음 만났습니다.

꼭 내 이야기 같았던 '바다국화'

 

우연히 만난 시처럼, 우연히 지인에게 한 포터 얻어 은 바다국화는 시월이 되면 우리 집 마당 한편을 온통 바이올렛 빛깔로 채워버립니다.

쨍한 가을꽃들의 보라색 기세밀렸던 바다국화가 지금은 제대로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넌 언제나 덤볐지만 난 다 견디었다.'


그러는 듯합니다.


바다국화의 꽃말은 기다림, 침묵이네요.

기다렸던 시월이 되어 침묵을 깨나 봅니다.




*솔 원장님!


원장님은 이제 *솔이란 이름과 전혀 상관이 없지만 저의 폰에는 여전히 [*솔 원장님]이라 저장이 되어있습니다.

제가 바닥 깊숙한 곳으로 끝없이 내려가고 있을 때 원장님이 같이 내려와 주셨지요. 가장 빛날 때 함께했던 그들이 멀어져 갈 때, 저를 향해 거침없이 걸어와 주셨어요.

우린 바닷가에서 바람을 견디어 내는 바다국화와 소나무처럼 서로를 품었었지요. 아니 원장님께서 저의 바람막이가 되어 주신 게 더 맞는 거 같아요.

돌아보면 바다국화가 스스로 몸을 낮춘 것처럼 저도 스스로 선택한 고립이었는데 그땐 왜 그리 억울했는지...


그래서 이 악물고 견디어 냈나 봐요.

바다국화와 소나무처럼 이제 다 견디어 냈다고 말할 수 있는 오늘이 주어짐에 너무 감사한 하루입니다.


*솔원장님.

지난 토요일, 원장님은 악기를 들고 저는 예쁜 드레스를 입은 합창단으로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바로 서로를 알아보았어요.

제가 올 줄 알았다고 하셨죠? 저도 원장님께서 올 줄 알았어요.


원장님.

한참 전에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제 생일에 원장님이 찾아오셨었죠. 피크닉 바구니엔 와인 한 병과 방금 싼 도시락이 담겨 있었지요. 얼마나 따끈했든지 데코 해놓은 초가 녹아내리고 있었어요.

야외 테이블에 차려진 근사한 생일상 앞에, 금방이라도 와인향이 풍겨져 나올듯한 잔을 들고 있는 저와 남편의 옷차림은 그야말로 파자마 수준이었어요.

그날의 추억이 일기처럼 기록되어 있군요.


원장님.

진짜 친구는 같이 울어준다고 하죠. 때론 진심으로 축하와 기쁨을 나눈다고도 하죠.

저는 '자주 만나지 않아도 늘 그 자리에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 같아요.


원장님은 무슨 꽃을 닮았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잘 떠 오르질 않아요. 그냥 멋들어진 오래된 소나무가 자꾸 생각나요.

원장님이 무슨 꽃이든 모든 꽃이 아름답듯이 원장님은 아름다운 분입니다.


늘 고맙고 감사한 원장님.

이젠 몇 개의 공통점 이외는 서로 다른 삶을 살아내지만 언제든 기억을 소환해 내는 자리에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이제 원장님이 저를 찾을 때 기꺼이 달려가겠습니다.


 2024년 10월 15일 바다의 별 드림



마당에 핀 바다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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