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반려동물 문화 이야기
산책이라는 말, 여러분에겐 어떻게 느껴지나요?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주 5일은 무조건 밖에 나가 회사를 가던, 친구를 만나던, 어떤 이유에서든 바깥 생활을 무조건적으로 하게 되어있습니다. 물론 재택근무자나 김 씨 표류기 영화 속 히키코모리 같은 유형의 사람들은 조금 다르겠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대부분이 밖을 돌아다니며 생활을 하죠.
그렇다면 내 옆에 조곤히 잠들어있는 우리 집 반려동물은 어떤가요?
제가 뉴욕에 와서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크게 놀란 점 중에 하나를 꼽으라면 저는 단연 뉴욕의 산책 문화를 꼽을 겁니다. 전문가가 아닌 그저 사진작가로서, 제삼자로써 보고 관찰한 저의 기록과 경험에 의하면 뉴욕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산책시키는 빈도는 한국의 평균적인 산책 빈도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것 같아요.
믿기 어려울지 모르겠지만, 제가 알고 있는 뉴욕의 모든 반려인들은 거의 매일, 적어도 삼일에 한번 꼴로 반려동물과 산책을 나갑니다. 만약 여러분의 머릿속에 작은 물음표 하나가 떠올랐다면, 아마도 다음과 같을 것 같아요.
"대체 그 바쁘기로 유명한 뉴요커들이 어떻게 그렇게 반려동물을 자주 산책시킬 수 있는 거죠?"
그 해답은 아주 간단하지만 신기한 '도그 워커'라는 단어에 숨어 있답니다.
도그 워커란 영문 그대로 Dog Walker,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직장을 다니느라 바쁜 뉴요커들에게 도그 워커는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존재인데요, 그들은 매일 다른 집들을 돌아다니며 맡은 개들을 정해진 시간만큼 산책시키는 일을 하고 수당을 받습니다. 저처럼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꿀알바 같은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하루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도그 워커일이 마냥 쉽지만은 않은 일이란 걸 금세 알 수 있어요.
그들은 날씨에 관계없이 매일 약속된 시간에 맞춰 개들을 산책시켜야 하며, 종종 대여섯 마리의 대형견들에게 이끌리다시피 길을 걸어야 하기도 하고, 법이 무서운 나라인 만큼 길가의 변을 치우지 않아 걸리게 되면 $250(한화 약 27만 원) 정도의 벌금을 물어야 하기도 합니다. 어찌나 많은 사람들이 착실히 이 룰을 따르는지 길을 걷다 보면 변을 치우는 도그 워커들과 개 주인들을 참 많이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몇 달 전쯤이었을까요, 이러한 여러 이유들에도 불구하고 뉴욕 생활 3년 차의 비 반려인 유학생인 저는 결국 도그 워커가 되기 위해 결심을 합니다. 그토록 좋아하는 동물과 산책을 하고 돈까지 벌 수 있다니. 그야말로 꿈의 직장 같은 소리로 들렸던 거죠. 뉴욕에는 여러 반려동물 앱이나 도그 워커 사이트가 있는데, 이곳에 본인의 인적사항 등을 적은 뒤 자격을 인정받으면 도그 워커가 될 수 있습니다. "도그 워커가 되기 위한 자격이라니. 산책만 시킬 줄 알면 되는 게 아닌가?" 싶으시다면 제가 들려드리는 이야기를 잘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다음은 제가 도그 워커가 되기로 마음먹은 날 브런치에 남겼던 글을 조금 수정해 들려드리는 이야기입니다.
Jun 29. 2018
얼마 전 뉴욕에서는 이미 보편적인 직업군 중 하나인 도그 워커가 될 수 있는 사이트를 소개받았다.
가입을 하고 일정 돈을 지불하면 반려인들과 연결을 시켜주는 중개 사이트라기에, '돈은 안 받아도 좋으니 제발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 라는 마음으로 재빨리 가입신청을 했다. 그러나 행복해하던 시간도 잠시.. 가입이 거절되었다.
유학생 신분, 게다가 소셜 시큐리티 넘버(주민번호와 비슷하다)가 없는 사람에게는 남의 개를 산책시킬 권리를 주지 않는단다. 그럼 그렇지. 제아무리 서로를 믿는 문화가 바탕에 깔린(내가 살아보니 그렇더라) 이곳일지라도 반려동물을 정확한 법과 시스템으로 보호하는 뉴욕에서,
옛다 너도 가입시켜주고
너도 가입시켜주고
다 가입시켜줘서
테러리스트가 내 개를 산책시켜줘도 무관하다 라는 마인드로 사이트를 운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동안 '동물을 직접 키우지 못할 바엔 봉사라도 하자.' 라며 미국에서 가장 큰 동물 구호 단체인 Peta 나 그 외의 동물보호 단체들도 시도를 안 해본 건 아니다. 다만 내가 이곳저곳 알아보면서 느낀 건, 이곳은 본인에 대한 명확한 인증/증명 없이는 동물을 도울 자격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 본인에겐 안타까운 사실이나,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일이다. 어쨌든 그만큼 확실한 사람들이 동물들을 케어하게 끔 한단 소리니까 말이다.
일면식조차 없는, 프리랜서 아르바이트생(?)이라고 봐도 무관할 남에게 나의 개를 마음 놓고 맡기는 (자세히 생각해 보면 정말 놀라운 문화이다.) 도그 워커 문화는 이런 법과 규칙들에 의해 존재할 수 있다. 다시 한번 뉴욕의 좋은 반려문화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던 슬프지만 배움이 있었던 그런 하루였다.
아쉽게도 이날 저는 도그 워커가 되겠단 꿈은 접어야 했지만, 다시 한번 뉴욕의 반려동물 문화의 좋은 점을 직접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이렇게 여러분께 소개를 할 수 있으니 그걸로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보니 한국에도 도그 워커 문화가 조금씩 싹을 트고 있는 것 같아요. 도그 워커의 성지인 뉴욕에서 바라보건대, 특히나 바쁜 한국의 직장인 분들에게 정말 꼭 필요한 문화라고 생각됩니다. 한국의 커져가는 반려 시장과 반려동물들의 심리적 외로움 혹은 신체적 건강 문제, 그리고 어쩌면 일자리 창출이라는 경제적 요건까지 모두 고려한다면 이처럼 시기적절한 신생직업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꼭 올바르게(중요합니다) 정착되어 올바르게(중요합니다!) 운행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도그 워커 편 마무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