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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펫크리에이터 모리 Jan 22. 2019

뉴욕 가정집 방문기 [찰리와 안젤리카]

찰리를 구한 건 내 생에서 가장 잘한 일


“모리, 혹시 우리 집에 며칠 들러서 찰리 좀 봐줄 수 있어?”


때는 작년 여름. 짧은 여름방학 기간 동안 안젤리카가 여행을 다녀온다며 고양이 찰리를 제게 부탁하고 떠났습니다. 뉴욕에서 지내는 동안 제가 반려동물을 가까이하는 삶을 어찌나 그리워했는지는 지난 회차들을 읽고 오신 분들이라면 아마 잘 아실 텐데요. 그래서 갑작스러운 안젤리카의 부탁에 잠시 이것저것 따져봐도 괜찮았을 법했지만, 1초 머뭇거림 없이 바로 오케이를 외쳤습니다.


“그럼! 봐줄 수 있고말고!”


“고마워. 내가 떠나기 전에 우리 집에 한번 놀러 와서 찰리랑 인사 먼저 하는 게 어때?”


안녕, 찰리 라고해_ New York. 2018. Film


그렇게 저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필름 카메라와 작은 영상용 카메라를 들고 안젤리카네 집으로 향했어요. 안젤리카와는 벌써 알고 지낸 지 오래지만, 안젤리카의 고양이는 직접 만나본 적이 없었기에 어찌나 기대를 했었는지 모릅니다. 막상 직접 만나본 찰리는 제가 여태껏 만나온 어느 고양이보다도 살가웠는데요, 만나자마자 마치 익히 만나본 적 있는 친구인 양 제게 스스럼없이 다가왔습니다. 세상 어디에서도 만나볼 수 없었던 개냥이보다 더 살가운 성격의 고양이를 만난 기분은 과히 묘했습니다. 저도 한국 집에서는 고양이를 키우고 있기 때문에 나름 고양이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없다는 쓸데없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거든요. 며칠 후 안젤리카 없는 빈집에서 1:1로만 만나는 것에 혹시나 찰리가 예민해하지는 않을까 고민이었는데, 아주 쓸데없는 걱정이었던 거죠. 직접 만나본 찰리는 그런 제 고민을 아주 별것 아니게 만들어줄 만큼, 그리고 고양이에 대한 저의 편협한 지식 또한 깨어버릴 만큼 굉장히 사교성이 뛰어났습니다.


어쩜 이렇게 작지? 성묘라고 하지 않았어?


 한 손으로 들어도 너무나 가벼운 토끼 같은 몸무게의 찰리는 도저히 성묘 같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도 쿵 하는 소리 없이 묵음 상태로 계속 이곳저곳 뛰어다니는 찰리가 너무 신기해 입을 벌리고 한참을 벙쪄 있었던 기억이 나요.


“응, 성묘이기는 한데, 다 커도 몸집은 크게 안크더라고. 길에서 데려온 터라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태어날 때부터 좀 작게 태어난 것 같아.”


길에서 데려왔다는 이야기에 여느 다른 집사들과 같이 길가에 돌아다니는 새끼 고양이를 구조해서 키우고 있는 모양이구나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길냥이 밥을 챙겨주다 정이 들어 집으로 들이게 된 집사의 이야기를 수도 없이 많이 들어보았으니까요. 그런데 이야기를 더 들어보니 제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찰리와 안젤리카가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는 아래 안젤리카의 입을 빌려 자세히 들려 드릴게요.



너, 참 사진 찍을 맛 난다_ New York. 2018. Film


한 3년 전쯤인가, 길을 걷고 있었는데 한 노숙자가 고양이를 안고 있더라고. 

근데 자세히 보니 고양이를 제대로 안고 있는 게 아니라 두 발을 잡고 거꾸로 잡은 채 동전통으로 마구 치고 있는 거야. 그러면서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돈을 요구하는데, 심장이 멎는 것 같더라고. 너무나 작은 새끼 고양이였는데, 거꾸로 잡고 있는 것도 모자라 동전통으로 마구 치며 구걸행위를 하고 있다니. 근데 마침 그 노숙자가 앞에 선 나에게 고양이를 잠시 안고 있어 달라고 부탁을 해오는 거야. 고양이를 건네받아 안았는데, 절데 이대로 돌려주면 안 될 거 같았어. 고양이를 돌려달라는 노숙자에게 돌려줄 수 없다고 했더니 자리를 금세 그냥 떠나버리더라고. 말할 것도 없이 고양이를 제대로 키우는 사람이 아니었지 뭐. 새끼 고양이를 안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지나가던 행인이 무슨 일이냐며 다가왔어. 내 품에 안긴 고양이를 보더니 감싸주라며 본인이 매고 있던 스카프를 건네주더라고. 건네받은 스카프로 고양이를 감싼 뒤 나도 얼른 자리를 떠났어. 그렇게 찰리는 우리 집에 오게 되었어. 찰리의 엄마 아빠가 누군지 는 모르겠지만, 병원에서 그러는데 몸이 워낙 약하게 태어났데. 몸집이 워낙 작아서 신장들도 작고. 그래도 지금은 아주 건강히 지내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야!”


찰리의 느긋하고 차분한 성격은 안젤리카를 꼭 빼닮았다_ New York. 2018. Film


아마 그날 안젤리카가 찰리를 노숙자에게 그대로 다시 건네줬다면, 찰리는 아마 얼마 안 있어 죽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공교롭게도 다음 편인 [8화. 뉴욕 노숙자들의 반려동물 사랑]에서 다시 길게 이야기하게 되겠지만, 뉴욕에서는 길에서 반려동물을 기르는 노숙자들을 꽤나 자주 만나볼 수 있는데요. 어떤 이유에서건 노숙자라는 이유만으로 반려동물을 기르는 것에 대해 뭐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 뉴욕 사람들의 생각인 것 같아, 외부인의 입장인 저로서는 딱히 비판을 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안젤리카 같은 사람들이 있어 다행히 개중에 도움을 받아 주어진 삶을 마땅히 살아가는 동물들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아주 조금은 마음이 가라앉게 됩니다.


아마도 이곳은 찰리의 지정석_ New York. 2018. Film


마지막으로, 오늘 글의 끝에 안젤리카가 덧붙여 해준 이야기 "찰리를 구한 건 내 생에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였던 것 같아. 근데 아빠는 다른 고양이를 또 구조해 올까 봐 걱정하시더라.(하하)"는 제게 또 다른 생각거리를 주었는데요. 


안젤리카가 노숙자에게 찰리를 구해냄으로써 안젤리카는 생에 가장 잘한 일(찰리)을 얻을 수 있었고, 그로 인해 노숙자는 한 생명을 죽일뻔한 생에 가장 못한 일(살생)을 피할 수 있었으며, 가장 중요하게는 찰리가 새로운 삶을 선물 받았습니다.


모두의 생을 하나의 큰 연결고리 위에 놓고 본다면, 안젤리카와 노숙자 그리고 찰리의 삶은 어느 한순간 연결되어 소중한 생명을 살려낸 아주 중요한 인연이 되었던 게 아닐까요. 부디 그 노숙자에게도 본인의 삶과 영혼을 구제해 줄 소중한 인연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얼마 전 저도 겨울 방학 동안 잠시 한국 집에 방문하고 왔어요. 제 고양이 나나는 저보다 더 훌륭한 집사이신 제 부모님 품에서 잘 지내고 있는데요. 또 다른 새끼 고양이가 저희 가족과 인연을 맺어 차가운 길바닥에서 따뜻한 집으로 삶의 안식처를 옮겨왔더라고요. 찰리를 구한 안젤리카와, 얼마 전 길냥이를 구조한 저희 부모님, 그리고 이들처럼 "생에 가장 잘한 일"에 생명을 구한 일을 언급할 수 있는 모든 분들께 존경을 표하며 오늘 글 마치겠습니다.


P.S 찰리를 만나 밥도 챙겨주고 같이 놀아주던 날에는 영상을 남겨놓았는데요, 혹시 궁금하신 분들은 https://www.youtube.com/watch?v=0LOLolC4pvs에서 찰리 영상도 함께 감상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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