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항해사 어름 Apr 17. 2023

기억의 씨줄, 그리움의 날줄

그리움에 사무칠 때


‘실낱’ 같은 삶


 삶을 연속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마치 기다란 실과도 같다. 어떤 한 점으로부터 시작해서 끊임없이 길어지는 각자의 실들은, 정해진 방향으로 잘 나아가다가도 왔던 길을 갑자기 되돌아가기도 하고, 때론 한 자리에 머물며 리를 틀기도 한다. 어떤 방향으로든 이 실들은 무한히 어디론가 나아간다. 죽을 때까지 말이다.


 어찌 됐든 우리의 실들은 ‘시간’이라는 정해진 판 위에서만 흘러간다. 마치 체스말이 체스판 위에 있지 않은 이상 게임이 되지 않듯 말이다. 하나의 연속된 ‘시간’이라는 흐름을 공유하며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하나의 체스말이 되어 각자의 삶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만남을 통해서든 매체를 통해서든 우리의 실들은 옆의 것들과 자꾸만 얽힌다.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말이다. 한 번만 교차하고는 매정하게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경우도 있고, 생각지도 않았던 실이 얽히고설켜 복잡한 실타래가 되어버리는 일도 있다.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는 이상 지금의 당신과 나도 지금 이 순간 하나의 교차점을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그 순간을 기억하나요


 뭐 일단 교차했으니 어쩌겠는가. 이 교차점은 당신에게 결국 ‘기억’으로 남았다. 비단 이 순간뿐만 아니라 오늘 당신과 교차했던 수많은 실들이 기억이 되었다. 회사에서 처음 보는 내게 친절히 인사를 건네주었던 청소부 아주머니, 왠지 모르게 호감이 갔던 오늘의 소개팅남부터 회식 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들었던 김 대리님까지. 시간과 실만 있다면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기억’을 만들어내고야 만다. 그래, 다른 말로 하자면 교차하지 않는다면 기억할 일도 없다. 우리는 모두 그 사람, 글, 음악과 영상과 교차했기에 그 순간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 순간이 그리운가요


 그리고 그 기억이 좋은 기억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 대상을 그리워할 일도 없다. 차라리 너무도 끔찍해서 뇌가 스스로 그 악몽을 뇌리에서 지울지언정 말이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그것’은 무척 고맙게도 우리의 실과 교차해 주었다. 그리고 우리의 머릿속에 기억을 남겨주었다. 돌이켜보았을 때 저절로 웃음 짓게 할 그런 행복한 기억들을.



그리우니 청춘이다 : 추억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느 날, 카페에서 글을 쓰다 창밖을 바라보았다. 문득 떠오른 그 사람. 그는 내게 너무도 행복한 추억을 선사해 주었고, 그 추억은 내게 ‘그리움’이 되었다. 그리움에 젖은 나는 그에게 무한히 감사하다. 어디서 온 줄 모르던 그의 실이 나라는 실과 교차해 주었고, 그 교차된 기억을 좋은 기억으로 만들어주었으니 말이다.


 나와 지금 교차하고 있는 당신에게도, 이미 교차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도 나는 ‘그리움’이고 싶다. 그리고 나를 문득문득 떠올리는 그 순간마다 나는 당신에게 ‘행복’이고 싶다. 나의 씨줄이 당신의 날줄이 되어.


작가의 이전글 적당한 것은 나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