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만 오는 건 아닐지라도
서정적인 일들에 가까이 가기만 해도 눈물이 나는 날들이 있다.
일기 쓰기, 따뜻한 차 마시기, 간단한 인사 나누기, 전화하기, 산책하기 등등.
그래서 글도 쓰지 못했다.
아주 아주 괜찮지 못한 밤들이었다.
절에 가서 쓴 글들을 오랜만에 읽어보면서 내 글이 다 비슷하게 끝난다는 걸 알았다.
힘들었지만, 괜찮아졌고, 괜찮을 것이다.
퍽퍽한 어른의 삶을 살면서도 어린이를 위한 동화처럼 쓰지 않으면 정말로 나쁜 결말만 남아있을까봐 겁이 났던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일은 실제로 지나고나니 모든 것이 괜찮아져 있다.
그 때 내 이야기의 주인공인줄 알았던 사람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엑스트라인줄 알았던 나만이 여기 그대로 남아있다.
어떤 일들은 해결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서 해결이 되기도 한다.
열심히 했지만 갈 수 없었던 대학이나, 이루지 못한 사랑 같은 것들.
정답을 꼭 O, X로만 나누지 않으면
'평생 마음에 품고 살아가기', '잊어버리기', '가끔 추억 속에서 꺼내보기' 같은 것들도 답이 될 수 있는 거라고 우겨본다.
그러니까 내가 가진 모든 문제들은 이미 다 해결이 된거라고. 더 이상 고민하거나 아플 필요 없다고.
나쁜 일들을 겪고나면 좋은 점도 있다.
나와 같은 경험을 하는 이들에게 진심으로 공감해줄 수 있다는 것.
때로는 왜 내가 남한테 겨우 공감따위 해주려고 이렇게 아파야 하나, 생각했었는데 지나고나니 다 자산이다.
왜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모든 것을 신의 뜻이라 말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간다.
인간이 겪는 이유없는 아픔들이 어떤 교훈을 위한 신의 뜻마저 아니라고 한다면, 인간은 갈 곳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진짜 큰 아픔을 겪는 이들에게 나의 고통은 길가다 살짝 넘어진 것만큼도 별 것 아닌 일인데도, 막상 내 일이 되면 이성을 잃고 폭풍 속에 몸을 던지고야 만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몇 번이나 더 망가졌다가 일어났다가 울었다가 나중에야 웃었다가. 이 지긋지긋한 일들을 반복하게 될까.
지겹다. 지루하다. 지긋지긋하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의 삶은 궁금하지 않다고, 지금 삶이 끝나버려도 전혀 상관이 없다고 여러 번 말했었다.
그런데 요새는 조금 궁금하다.
이 삶이 어디까지 갈 것인지, 그래서 해피엔딩은 정말 있는지.
정말로 공주가 왕자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는 것이 이 이야기의 끝인지.
아니면 더한 행복도 더한 불행도 많이 많이 기다리고 있는 것일지.
아주 오랜만에 절에 가야겠다.
우리 삶에 앞으로도 있을 수많은 불행들을 우리가 잘 견뎌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