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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k Apr 23. 2017

모로코의 색

탕헤르-쉐프샤우엔-페스-메르주가-마라케시

알록달록한 염료가 담김 통들이 마치 팔레트처럼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모습. 오래전 여행 다큐멘터리에서 이 장면을 보고 모로코 여행을 결심했다. (이번 여정이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둔 것들을 실행하는 것이다 보니 어딜 가든 꼭 '오래'란 수식어가 붙는다) 내게 모로코는 영화 <카사블랑카>로 유명한 카사블랑카도 아니고 이름부터 신비로운 탕헤르도 아니었다. 그저 페스 한 곳이면 충분했다.  



@페스 테너리
@페스 테너리



@가죽제품




하지만 여행을 준비하면서 모로코의 다른 색에 점차 매료됐다. 마을 전체가 온통 파란색이라 동화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쉐프샤우엔은 사진을 찾아볼수록 '가고 싶은 도시'에서 '가야만 하는 도시'가 됐다. 모코모에 다녀온 지인들로부터 들은 붉은 모래사막에서의 밤하늘 이야기를 들곤 사하라가 궁금해졌다. 가야 하는 도시가 하나 둘 늘어났다. 그렇게 스페인 타리파에서 페리를 타고 탕헤르에 도착해 쉐프샤우엔, 페스, 메르주가, 마라케시까지 남쪽으로 내려가는 여행 경로가 완성됐다.



@파란 나라 '쉐프샤우엔'



쉐프샤우엔이나 페스 테너리 말고 다른 도시에서 마주한 색들도 흥미로웠다. 걸을 때면 계속 이곳저곳에 마음을 빼앗겼다. 시장에서 파는 무심하게 쌓아둔 오렌지, 시금치처럼 리어카에 무더기로 쌓아놓고 팔던 향긋한 민트의 초록빛 앞에서 연신 카메라 렌즈 캡만 만지작거렸다. 장을 보러 온 사람들로 들어찬 좁은 거리엔 자리를 잡고 서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공간이 없었을뿐더러, 모로코 사람들이 사진 찍히는 걸 싫어한다는 얘길 많이 들었기에 조심스러웠다.


메디나 안 상점에 걸린 물건들의 유혹도 만만찮았다. 여기선 사람이 안 보일 때 빨리 찍고 빨리 이동하거나 휴대전화를 쓰는 척하면서 무음으로 찍곤 했다. 호객행위가 엄청난 곳이라 카메라를 드는 순간 타깃이 돼 상품 설명을 한참 들어야 하는 상황이 생기곤 했다. 심한 경우엔 사진 찍는 비용을 요구하기도 한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카메라를 들고 시장을 돌아다녔더니 누군가 바로 따라붙어 "바나나 사진 찍고 싶니?"라고 말을 걸었다. 물건을 사고나선 당당하게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묻고 신나게 찍었다.


눈으로 담는 게 최고라고 자위해보지만 역시나 사진을 많이 남기지 못해 아쉽다. 나 역시 다른 사람 카메라에 나도 모르는 새 담기는 걸 원치 않기 때문에 사람들을 찍고 싶지 않았고, 상인들에게 물건을 사지 않고 만지작대다 찰칵찰칵 사진만 찍어대는 관광객이 곱게 보일 리 없기에 상점을 찍기가 망설여졌다. 어쩌면 너무나 소극적인 여행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모로코에 다녀와 남긴 블로그 글들을 보면 나와 같은 곳에서 같은 것들을 보며 더 멋진 사진을 남기고, 더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다는 얘기들이 많으니 말이다.



@지나칠 수 없는 알록달록


물론 모로코엔 다른 매력도 넘쳐난다. 그래서 때로는 날 헷갈리게 했다. 사하라 투어 에 들떠 삭막한 모로코만 상상하다 탕헤르 숙소에서 햇살이 부서져 반짝이는 파란 바다를 내려다보았을 때 나도 모르게 깜짝 놀랐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온 사실을 까맣고 잊고 그 바다를 보며 감탄했다.


이슬람 국가에 대해 쌓아 올린 이미지도 부서졌다. 시시때때로 울리는 아잔을 듣거나 시간에 맞춰 모스크로 향하는 사람들 행렬을 볼 때면 '내가 이슬람 국가에 왔구나'를 실감했지만 여성들의 삶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랐다. 모로코가 강경한 편이 아니란 건 알고 있었지만 공공장소에서 남녀가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고 걷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리고 버스를 운전하는 여성 기사를 마주했을 때 나도 모르게 흠칫 놀랐다. 여성들의 옷차림도 자유로웠다. 물론 히잡은 쓰고 있었다.


사막에 갔을 때도 허를 찔렸다. 낙타를 끌던 가이드 유셰프는 "혹시 알제리 가고 싶니? 간단해. 여기서 한 5km만 가면 국경이야. 원하면 데려다줄게"라고 농을 쳤다. 단둘이 사막을 지나며 심심해진 그가 던진 농담을 나는 한참 곱씹었다. 모로코에 도착한 뒤로 한번도 떠올리지 못했던 아프리카가 '알제리'란 단어에서 훅 느껴졌다. 그렇지 내가 지금 아프리카에 있지.




@붉은 모래, 사하라



@탕헤르. 푸른 하늘과 푸른 바다



@모든 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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