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15일, 국제 비정부 기구(NGO) 옥스팜(Oxfam)은 세계 부자 8명이 전 세계 인구의 하위 50%를 합친 것과 똑같은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고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보고서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유명 투자가 워런 버핏, 멕시코 대부호 카를로스 슬림, 아마존 최고 경영자(CEO)인 제프 베조스,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 패션 브랜드 자라(ZARA)의 창업자 아만시오 오르테가, 오라클 회장 래리 앨리슨, 전 뉴욕 시장 마이클 블룸버그 등 8명의 자산 합계는 4,260억 달러에 이르렀다.
옥스팜의 폴 오브라이언 부사장은 이러한 빈부 격차 때문에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회는 분열되고 정치는 혼란스럽다.”라고 지적했다.
이른바 국민소득 수준이 높은 선진국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가속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내에서도 상위 1%가 부의 42%를 독점하고 있으며 과거 30년간 빈부 격차가 더 커진 국가에 거주하는 사람의 수는 세계 인구의 70%에 이른다. 또 과거 25년 간 상위 1%는 하위 50%의 소득 합계보다 많은 소득을 얻어 왔다.
보고서는 “부유층이 잘 살면 부가 사회 전체에 확대 적용된다.”는 낙수 효과 (트리클다운 이론)의 허구성을 언급하면서 “소득과 자산이 분배되기는커녕, 놀라운 기세로 한곳에 집중되고 있다.”라고 경고했다.
절대적 빈곤이 사라지고 있다.
인류가 역사에 등장한 이래, 굶주림은 인간이 해결해야 할 가장 큰 과제였다. 재산을 축적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고, 일단 먹지 못해 죽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급급해하며 일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준 것은 화학 비료와 정수 기술의 발명이다. 이 두 가지 발명은 식량의 생산량을 비약적으로 증가시켜 줌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을 기아에서 구해낼 수 있게 되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예전에 비하면 굶주림으로 인하여 사망하는 사람들이 많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나라에서도 1970년대 이후로는 절대적 빈곤층은 대부분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전 세계 인구 중 하루 1달러 이하로 생활하는 절대적 빈곤 계층의 비중은 1981년 40%에서 2001년 21%로 감소하였다고 한다. (2015년에 세계은행이 정한 절대적 빈곤선의 기준이 되는 하루 생활비는 1.9달러)
앞으로도 절대적 빈곤층은 지속적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긍정적 변화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무작정 낙관하기는 어렵다.
우선 전 세계의 인구는 2050년경에 정점을 찍게 되어 90억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데, 과연 그때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
Creating a Sustainable Food Future (World Resource Report 2013-2014)에 따르면 2050년에는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식료품을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준다고 해도 1인당 최소 권장 칼로리에 900kcal가 모자라게 될 것이라고 한다.
절대적 빈곤과 상대적 빈곤
우리나라의 경제적 수준은 세계적으로도 상위권에 속하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이른바 선진국에 속하는 나라들이 고민하는 문제는 절대적 빈곤이 아닌 상대적 빈곤에 관한 것이다.
절대적 빈곤의 기준은 일정 기간 동안의 영양섭취량과 같이 수치화할 수 있지만 상대적 빈곤은 상대적 계층에 따라 빈곤을 정의하는 방식이므로 정량적으로 정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다만 일반적으로 중위소득(경제활동인구의 소득 수준을 1등부터 꼴등까지 일렬로 줄을 세웠을 때 한가운데 있는 사람의 소득)의 절반 이하 소득을 상대적 빈곤의 기준으로 보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소득이 높은 나라에서는 생존은 물론 어느 정도의 문화생활이 가능한 계층이라고 해도 상대적으로는 빈곤층에 속할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상대적 빈곤은 좀처럼 해결하기가 어렵다. 한 가지 욕구가 만족되면 다음 욕구를 만족하려 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제는 빈곤의 비교 상대가 특정 국가가 아닌 지구촌 전체의 주민으로 확대되고 있다. 아마도 앞으로 빈곤을 다루는 정책은 보다 더 추상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것들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 도래하게 될 것이다.
아시아형 빈곤 탈출 모델의 종말
제조업의 시대에 빈곤을 탈출하는 공식은 매우 간단하였다.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해 내면 언젠가는 빈곤을 탈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예로 들자면, 1960~1980년 무렵에 선진국에서 하기 싫어하고 또 노동인력을 구하기 힘들었던 합판, 가발과 같은 노동집약적 산업 활성화를 통하여 수출을 활성화하고, 또 중동 건설현장에 진출하여 더위와 싸우며 외화를 벌어들임으로써 지금의 경제발전을 실현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이외에도 중국, 베트남과 같은 여러 아시아 국가들도 이러한 방식을 통하여 빈곤 탈출을 꾀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방식을 흔히 아시아형 성장모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유형의 빈곤탈출 정책은 점점 더 작용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왜냐하면 로봇과 3D 프린터와 같이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는 기술보급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인데,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온 재앙 (개발도상국의 입장에서는)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 경제매체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는 2017년 6월 21일 ‘수십 년 간 이어진 아시아의 경제 모델이 이제 깨졌다(This Economic Model Organized Asia for Decades. Now It’s Broken)’는 기사를 내보내며 아시아 경제모델의 붕괴를 예고한 바 있다.
아디다스가 2016년 9월 독일 안스바흐에서 가동을 시작한 스마트 팩토리의 사례를 통하여 보다 구체적인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아디다스는 높은 인건비로 인하여 1993년 이후로 독일 내에서 운동화를 생산하는 공장을 모두 없애고 인건비가 싼 아시아 지역으로 생산기지를 모두 이전하였다.
따라서 아디다스가 안스바흐에 신발공장을 가동하기로 결정한 것은 커다란 관심을 불러 모으기에 충분한 뉴스였다.
안스바흐의 아디다스 신발공장은 연간 50만 켤레의 신발을 생산할 수 있는 규모였고, 이런 규모는 아디다스라는 글로벌 브랜드의 위상을 감안할 때 전혀 놀라운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을 정말로 놀라게 만든 것은 이런 대형 공장에 근무하는 생산 현장 근무자가 10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만일 종전과 같이 수작업으로 신발을 생산한다면 600명이 필요하였겠지만 로봇과 3D 프린터를 적극 도입함으로써 필요한 인력을 최소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공장에서 신발의 생산량을 결정하는 것은 이른바 수요예측에 따르는 것이 아니고 주문을 접수함과 동시에 신발제조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고객이 원하는 신발의 디자인과 칼라, 그리고 사이즈를 결정하고 주문을 하면 이틀 이내에 신발 제조를 끝내고 고객에게 제품을 전달할 수 있다고 한다.
앞으로 이런 특징을 가진 공장들이 급속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데, 이런 공장들이 증가함에 따라 다가올 변화는 다음과 같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공장을 가동하는 데 필요한 사람의 수는 종전에 비해 크게 줄어들 것이다. 따라서 공장을 유치하더라도 일자리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를 하기 힘들게 되었다. 즉, 이제는 기업유치가 곧 대규모 일자리 창출이라는 공식이 깨져버리게 되었다.
공장의 위치가 인건비가 싼 지역이 아니고 커다란 시장이 존재하는 지역으로 이전하게 된다. 따라서 인건비는 저렴하지만 시장이 작은 (소득이 적거나 인구가 적은) 나라들에 더 이상 대규모 공장이 들어서기 힘들게 될 것이다. 이로 인하여 비록 개발도상국이라 해도 중국이나 인도 같은 인구 대국에는 글로벌 기업의 공장들이 계속 들어서게 되겠지만 저렴한 인건비만을 장점으로 내세우는 기타 국가들은 그러한 기회를 차지하기 힘들게 될 것이다. 즉, 이제는 노력과 희생을 무기로 빈곤을 탈출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고 있다.
제조과정의 자동화와 더불어 보관, 물류, 판매와 같은 유통단계도 자동화, 생력화 (省力化)의 길을 걷게 되므로 일자리가 다방면에서 동시에 감소하게 된다. 아직은 일자리가 육체노동분야에서 더 많이 발생하고 있지만 다른 분야에서의 일자리 감소도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기본소득제
2016년 세계경제포럼의 화두가 4차 산업혁명이었다면 2017년은 기본소득이었다. 로봇과 인공지능(AI)의 발달에 따른 4차 산업혁명이 ‘노동의 종말’과 ‘중산층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는 가운데 빈부격차를 해소하고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수 있는 방법으로 기본소득이 대안이 될 수 있는지를 모색해본 자리였다고 할 수 있다.
기본소득제가 화두가 된 것은 기술 발달의 영향이 크다. 인공지능(AI)의 발달은 부를 창출하는 동시에 그동안 인간의 노동을 필요로 했던 일들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이는 기업에는 새로운 이윤 창출 기회이고 성장률을 높이는 수단이 될 수 있지만, 노동자들에게는 매우 위협적인 사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빈곤층의 생존을 보장하고 또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정책은 여러 차례 시도된 바 있다. 엄청난 천연자원을 무기로 전 국민에게 모든 세금 면제와 더불어 풍족한 삶을 보장하였던 나우루 공화국 (인광석)이나 중동의 석유 부국들도 있었고, 아메리칸 인디언들을 위해 별도의 복지정책을 실시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가 있었지만 이것들은 아주 예외적인 사례이고 또 장기간 동안 지속되기도 어려운 것들이었으므로 논외로 하고, 최근의 기본소득제와 관련된 사례를 중심으로 분석해 보기로 하자.
스위스는 2016년 6월에 세계 최초로 기본소득제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하였지만 약 76.9%의 국민들이 반대를 하여 부결되었다. 만일 국민투표에서 기본소득제 시행이 통과되었다면 스위스 전 국민들은 기존의 모든 복지를 포기하는 대신 매달 2500 스위스프랑(약 300만 원)을 지급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반대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첫째는 많은 스위스 국민들이 기본소득제를 비현실적이라 생각했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기존에 복지혜택을 받고 있는 서민층은 매월 300만 원의 기본소득을 받는 것보다 현 복지를 받는 게 더 이득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기본소득(Revenu de Base Inconditionne) 찬성 투표를 호소하는 포스터>
그리고 2017년 1월, 핀란드는 국가 단위로는 처음으로 기본소득 시범 도입에 들어갔다. 실업자 가운데 2000명을 무작위로 선정해 2년간 매달 560유로(약 70만 원)를 주는 것이다. 이는 핀란드 1인 평균 소득의 16%에 해당하는 돈이다. 핀란드 정부는 2년간 기본소득을 시범 실시한 뒤 국가 정책으로 점차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러한 실험을 통하여 핀란드 정부는 실업자들의 노동시장 참여를 활성화하고 복잡한 복지전달 체계를 단순화해 관료주의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국내에서도 서울시와 성남시가 청년 배당, 청년수당 형식으로 비슷한 실험을 시도한 바 있다. 서울시는 서울에 1년 이상 거주한 만 19~29세 청년 중 3000명 정도를 대상으로 월 50만 원씩 최대 6개월간 청년수당을 지급하는 정책을 2016년에 도입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선심성 정책이라며 서울시의 청년수당 시범사업을 시행 한 달 만에 직권으로 취소했다. 서울시는 법원에 직권취소 소송을 제기했으며, 보건복지부와의 협의를 통해 이 정책을 다시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성남시도 성남에 3년 이상 거주한 만 24세가 되는 청년을 대상으로 분기별 25만 원씩 연 100만 원의 청년 배당을 시행하고 있다.
이밖에도 다양한 시도들이 여러 나라에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기본소득제의 성과와 효과를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되려면 아무래도 좀 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 같다.
확실한 불안과 불확실한 미래
로봇과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예측은 거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미래사회에서 현실화될 불안으로 인정받고 있다.
미국 백악관의 ‘인공지능, 자동화 그리고 경제’ 보고서에서도 이러한 미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파한 바가 있다.
“자동화로 인해 위협받는 직업들은 저임금, 저숙련, 저학력 노동자들에게 집중되어 있다고 여러 연구들은 밝히고 있다. 이는 자동화로 인해 이들 직업군에 대한 수요가 감소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임금이 하락하고 불평등의 수준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보다 장기적으로 보면, 다른 큰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슈퍼스타급 기술의 변화로 인해 고숙련 노동자들이 혜택을 보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특정 영역이 전유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인공지능이 가져올 수 있는 엄청난 경제적 이익이 소수의 승자들에게 집중될 수도 있다. 대다수 노동자와 소비자가 성공의 과실을 나눠 받지 못하고, 경쟁은 감소하고 부의 불평등은 증가할 가능성도 있다.”
기술의 발달이 부의 분배를 극도로 왜곡시킬 것이 확실해 보이는 지금, 부의 분배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을 최소화하고 잠재적 불만을 달래줄 수 있는 방안을 찾지 못한다면, 인류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