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나스타시아 Dec 11. 2023

내 분노에 대신 맞아준 아빠

23.12.08.

약을 먹기로 논의한 후 일주일에 한 번씩 진료상담을 받는다. 약 함량을 맞추기 전까지는 이렇게 매주 오는 게 관례인 것 같았다. 내 상태를 보며 함량을 조절하려면 그럴 수밖에 없을 테고, 아직 내가 불안정한 상태이니 매주 체크해야 하는 필요성도 있을 것 같다. 


오늘은 의사가 가족에 대해 물었다. 아빠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아빠가 언제 돌아가셨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첫 상담 때 이야기했는데. 5년 전이라고, 3년 전에는 반려인과 10년 넘게 함께한 반려고양이를 함께 떠나보냈다고 대답했는데, 그의 표정이 약간 무거워졌다. 나를 불행하게 보는 걸까?


아빠가 꿈에 나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돌아가신 당시에 꿈에서 그는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나타났는데, 내가 어디 갔다 왔냐고 물으니 "너희가 자꾸 나 죽었다고 하니까 어떻게 하나 보려고 숨어 있었다"고 말했다. 그 말에 나는 화가 잔뜩 났던 기억이 난다. 또 한번은 내가 꿈에서 아빠를 때린 일이 있다. 당신이 떠나기 직전, 꿈에 아빠가 나왔다. 당신이 죽을 것 같다고, 이제 나는 어떻게 하냐고 아빠를 붙잡고 마구 울었는데, 그가 내 뺨을 때리며 "뭐 그런 것 같고 우냐"고 나무랐다. 그 순간 알 수 없는 분노가 치솟아서 그를 바닥에 엎어뜨리고 주먹으로 마구 때리다가 깨어났다. 


아빠는 가부장제의 최고봉 같은 사람이었다. 아무리 꿈속이라 해도 내게 호락호락하게 맞고 있을 분이 아니다. 근데 어떻게 그렇게 샌드백처럼 가만히 있었을까. 당시에는 당신이 떠나기 한 달 전이었고, 나는 온갖 감정으로 어찌할 줄 모르던 때였다. 아빠는 아마 그걸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래서 가만히 맞아준 게 아닐까. 


의사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분노에 차 있어 그런 꿈을 꾼 것 같다고 했다. 억울하고 화가 나서. "누구한테 그렇게 화났을까요?" 그의 물음에 나는 "신 아닐까요?"라고 대답했다. 어떻게 이렇게 짧은 순간에 모두를 한꺼번에 데려가냐고, 그렇게 그를 원망했으니까. 신과 성당에서 내쳐진 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끝내 울었다. 시엄마가 밉다는 내게 "사탄이 들어 그렇다"고 말했던 노 신부의 이야기. 의사는 그 말을 하며 우는 나를 물끄러미 보다가 "많이 속상했겠어요"라고 이야기했는데, 어쩐지 그게 약간 수치스럽기도 했다. 


그는 내 이야기를 성실하게 듣는 것 같으나 다 기억하는 건 아니다. 그래서 몇 번 같은 말을 반복하기도 한다. 그게 조금은 실망스럽기도 했다. 뭐, 환자가 한둘이겠어, 싶다가도 '그래도 이 정도는 기억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 거다. 그에게 기대고 싶은가? 그래서 나를 불행하게 보지 않았으면 하는 건가? 


이번에는 약을 늘이지도, 줄이지도 않고 이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