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서울 인구의 폭발적 증가

아름다운 서울에서, 서울에서 살으렵니다 ♬

by 써니사이드업
'서울의 찬가'를 부르는 패티김 (출처: 틱톡 캡처)

1960년대 중반에 당시 서울시장이던 김현옥은 서울의 산업화와 도시 건설을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사람을 불러 모아야 도시가 성장할 수 있다고 믿은 그는 작곡가 길옥윤에게 노래 하나를 부탁했죠. 그렇게 만들어진 곡이 바로 ‘서울의 찬가’였습니다. “아름다운 서울에서, 서울에서 살으렵니다~”로 마무리되는 이 노래는 1966년 패티 김의 목소리로 전국에 퍼졌고, ‘서울에 가면 뭔가 새롭고 멋진 삶이 펼쳐질 것 같다’는 기대를 사람들의 마음속에 심어주었어요. 이 노래 덕인지는 몰라도 실제로 사람들의 서울 이주는 빠르게 늘어났습니다.


서울은 사람으로 넘쳐났다 1977년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 공공누리 제1유형)

1970년대에 접어들자, 서울은 말 그대로 인파로 가득 찬 도시가 되었습니다. 산업화가 본격화되면서 농촌을 떠나 일자리를 찾아온 이들이 몰려들었고, 보건·의료 환경의 개선으로 출산율까지 높아지면서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1960년 244만 명이던 서울 인구는 1970년 543만 명, 1980년에는 무려 830만 명을 넘어섰지요. 불과 20년 사이에 도시 규모가 세 배 이상 커진 셈입니다.


하지만 늘어난 인구를 감당하기에는 도심이 너무 비좁았어요. 종로와 중구를 비롯한 강북 지역은 이미 과밀했고, 좁은 골목과 판잣집은 순식간에 포화 상태가 되었습니다. 언덕배기마다 달동네가 하나 둘 생겨났고, 집값은 치솟았으며, 하루아침에 농촌 출신이 도시 빈민으로 전락하는 일도 흔했죠. 서울은 꿈과 기회의 땅이었지만, 동시에 치열한 생존 경쟁의 무대가 되어 갔습니다.



정동공원 내 판자촌 1969년. 왼편에 문화방송 사옥 공사가 한창이다 (현 경향신문사)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 공공누리 제1유형)


이런 상황에서 눈길이 간 곳이 바로 한강 남쪽, 강남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강남은 논밭과 과수원이 대부분인 허허벌판이었어요. 하지만 새로운 주거지와 도시 확장의 후보지로 급격히 주목받기 시작했죠. 이때의 강남은 훗날 ‘계획된 도시’로 태어나는 출발선 위에 있었던 셈입니다.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1978년 (출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 공공누리 제1유형)

늘어난 인구는 곧 식량 문제로 이어졌습니다. 당시 한국은 쌀조차 자급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죠. 정부는 1965년부터 양곡관리법을 시행해 쌀로 술을 빚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식당에서는 밥그릇을 스테인리스로 바꾸고 크기까지 표준화해 쌀 소비를 줄이고자 했죠. 작은 밥그릇 하나에도 그 시절의 절박함이 담겨 있었던 거예요.


집은 부족했고, 쌀은 귀했으며, 서울은 매일같이 공사 중이었습니다. 곳곳에 아파트와 주택이 세워졌고, 시멘트와 벽돌을 실어 나르는 풍경은 일상이었죠. 심지어 공사장에서는 말이나 소가 수레를 끌고 자재를 옮기기도 했습니다. 고층 아파트 뒤편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말과 소의 모습—그것이 바로 1970년대 서울이 보여주던 풍경이었어요. 도시와 농촌의 시간이 한 화면 안에서 겹쳐 있던, 참 독특한 시기였습니다.


약장수.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근처. 1976년 (출처: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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