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연기 그리고 외로움에 대하여 (조우진 배우님 필모톡)
9월19일, 조우진 배우님과의 필모톡을 다녀와 평소 하고 있던 이런저런 생각들을 함께 정리해 봤습니다.
‘한 끗’에 대해 생각을 한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내게 매력을 느끼도록 하는 데에는 나만의 ‘한 끗’에 있다고 생각이 된다.
다시 보고 싶은 배우, 다시금 생각이 나는 배우에게는 어떤 ‘한 끗’이 있길래 그럴까.
나에게도 그 ‘한 끗’이 있을까, 나의 ‘한 끗’이란 무엇일까.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인연을 잇는 일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인연이 맺어지고, 어떤 일이 성사되고 좋은 운의 흐름으로 흘러가는 건 찰나의 순간에 결정이 나는 것처럼 느껴진다. 굉장히 짧은 시간의 점처럼 보일지라도, 이면에는 우리가 알지 못 하고 규명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이 있다. 그건 아주 오랜 기간에 걸친 어떤 움직임, 마음의 내달음, 흔히들 말하는 성실, 노력, 열정과 같은 것들일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한 끗’은 순간에 캐치되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지라도 그만의 역사를 거쳐온 대서사시다. 무언가 하나가 촉발되기 위해선 수많은 비슷한 부류의 움직임이 있어왔을 것이다. 어떤 순간을 만들어내기 위한 거대한 알을 깨부수기 위한 움직임이 떠오른다.
좋아하는 수많은 선배 배우님들 중에서도 조우진 배우님의 필모톡 강연에 운이 좋게 참석할 기회가 생겨 가게 되었다. 내 생각에 조우진 배우님은 그만의 ‘한 끗’을 가진 분이어서 이 기회가 정말 소중하게 다가왔다. 조우진 배우님은 묵묵히 배우의 일을 근본적인 것부터 고민하고, 탐구하면서 소중하게 한 배역, 한 장면을 살려오신 분이라 생각한다. 그의 외로운 길, 그만의 외로운 시간들이 그의 역사와 한 끗을 만든걸까.
배역을 맡고 나면 인물과 대본, 장면 분석부터 혼자서 작업을 하셨던 것 같다. 자기 자신을 “이 상황에 빠뜨리면”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는데, 단순히 인물과 상황에의 공감 수준이 아니라 굉장히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몰입이었다. 감정에 대한 적극적 공감이라기 보다도 이성적으로 이 인물의 성격, 성향, 상황을 분석하고 나아가서는 이 장면과 극의 의도까지도 분석했다.
여기까지는 배우 훈련을 하면서 배워온 내가 겪었던, 그리고 겪고 있는 모든 과정들이었다. 그런데 새롭게 접한 배움은 “정확한 연기”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어떻게 연기가 정확할 수 있을까. 단 한 번도 “정확하다”는 수식어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래도 근접하게는 “적절한” 연기와 표현, 대본과 인물 분석까지는 생각해 봤지만, 사실은 연기가 “정확하다”고 어떤 정답 같은 걸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나와 내가 연기하는 인물 간의 간극을 줄이는 작업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고, 그 해석의 가능성을 완전하게 열어 두었기 때문이다.
조우진 배우님에게 있어서 “정확한 연기”는 혼자만의 작업도 있었지만, 동료들과의 작업까지도 포함한 것이었다. 우선은 혼자서 대본의 모든 의문점과 미결점들을 될 때까지, 처음부터 반복하며 캐릭터와 자기자신의 간극을 줄여나가는 작업부터 한다. 그 작업에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가정하는 것까지 포함된다. 그 다음에는 감독님, 작가님과 작품과 장면의 의도와 견해에 대한 대화를 하여 동료들과의 간극까지도 줄여간다.
아마도 배우님이 말씀하시는 “정확한 연기”는 아주 오랜 기간에 걸친, 간극을 줄이는 모든 작업 끝에 나오는 어떤 완성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로부터 자신감도 나오고, 결코 함부로 흔들 수 없는 어떤 결연함과 단단함, 같은 것이 묻어나왔다. 쉽게 말해 완벽한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장인 정신, 완전 무결함을 지향하며 해 내는 마음이다.
이 모든 배우가 되는 과정, 배우로서 해 내는 일들, 배우의 시간들은 외롭다.
최근에서야 조금은 격하게 느껴지는 ‘외로움’에 대한 고민이 있었는데, 진행자가 조우진 배우님께 후배들을 향한 조언의 말을 요청했을 때, 조우진 배우님은 정확하게 ‘외로움’에 대해 말씀하셨다.
처음 그 질문을 들었을 때 조우진 배우님은 꽤 오랜 시간동안 입을 떼지 않았다. 침묵 속에서 신중하게 한 단어, 한 마디를 고르고 있었다. 그런 세심한 마음의 결이 고스란히 느껴졌고, 그 생각의 흐름들이 얼굴을 통해 선명하게 외로움을 말하고 있었다.
“외로울거에요.” 쉽지 않은 배우의 길을 알고 있기 때문에 쉬이 말하지 못 했다. 이번 산을 넘으면 조금은 평탄하겠지, 하는데, 산을 넘으면 더 큰 산이 온다고, 그러니 평지는 기대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냥 그런 길을 걸어가는 것이라고, 그런 일이라고 하며 말을 맺었다. 그 질문을 던졌던 진행자는 괜히 물어봤다고 했지만, 나는 조우진 배우님의 답변이 아주 밝은 희망의 점으로 보였다. 점이라도 괜찮다, 아주 밝고 선명한 빛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처절한 외로움과 고된 길을 걸어가면서도, 여전히 묵묵하게 해 내고 있는 조우진 배우님이 마치 나와 같이 걸어가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요즘 독백 연기를 준비하고 있던 중이었다.
조우진 배우님이 노력한 그 과정대로 근본적으로 작품 전체를 여러 번 처음부터 반복해서 읽던 중이었다.
단 한 장면의 하나의 대사를 완벽하게 해 내기 위해서, 조우진 배우님의 단어를 빌리자면 정확한 연기를 하기 위해서. 내가 노력하며 걸어가는 이 방법이 조우진 배우님과 동일하다는 것이 나에게 큰 위안으로 다가왔다.
언젠가 이렇게 나만의 방법으로 노력하다보면, 큰 산을 몇 번이고 넘고 넘다보면, ‘한 끗’이 있는 그런 배우가 되겠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