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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본사는 투칸 May 12. 2022

아이를 낳는다고 바로 엄마가 되는 건 아니다

엄마가 되는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선 아이를 낳으면 산모가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모성애를 가슴 가득 느끼는 모습을 흔히 다루는데, 현실은 뜻밖에 그렇지 않았다. 적어도 나의 경우는 그랬다.


난산이라 출산 자체가 힘들었던 것도 있었고(지난 글 참조​) 그래서 출산 직후 느낀 감정이란 모성애보다는 ‘와, 드디어 끝났다’ 하는 후련함이었다. 산도에 오래 걸려있었고 탯줄을 세 번이나 감고 나온 것에 비해, 아이는 나오자마자 건강히 울어줬기 때문에 걱정을 덜은 덕분이기도 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효녀가 아닐 수 없다.


아이의 처치가 끝난 후 캥거루 케어를 위해 조산사가 아이를 품에 안겨주고, 처음으로 젖을 물렸을 때도 모성애보다는 ‘와, 신기하다’ 하는 감정이 우선했다. 이 작은 사람이 방금 전까지 내 뱃속에 있었다니. 갓 태어난 아이가 젖을 빠는 힘이 이렇게 강하다니. 정말 순수하게 신기함과 호기심이 샘솟았다.


병실로 돌아간 뒤, 신생아실에서 아기를 다시 마주했을 때는 비로소 ‘와, 귀엽다’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게 모성애라고 한다면 그 정도까지는 아닌, 조금 덜 미치는 수준이었다. 물론 내 새끼이므로 다른 애들보다는 귀엽지만 막 엄청난 보호본능이 샘솟는다던지, 벅찬 마음이 든다던지, 흔히 미디어에서 다뤄지는 그런 감정은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스웨덴 남자가 처음 본 순간부터 보호본능을 느꼈다고 하니, 부성애가 모성애보다 덜하다는 것은 그저 편견임은 확실하다.




사실 지금 와서도 본능적인 모성애를 느끼냐고 한다면, 잘 모르겠다. 냉정한 INTJ엄마는 엄마가 되기까지의 시동이 늦게 걸리는 것인지.


본능적 모성애보다는, 아이 자신의 선택이 아닌 오롯이 나와 스웨덴 남자의 선택으로  험한 세상에 내던져진 이상  아이의 인생을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은 강하게 느끼고 있다. 가령 새벽에 일어나 배고파 보채던 아이가 수유를 시작하면 강아지처럼 허겁지겁 달려들어 젖을 빠는 모습이 안쓰럽고  귀여우면서도, 보고있자면 가슴  구석에서 묵직한 책임감이 샘솟았다. 나와 스웨덴 남자가 부재하면 생명을 유지할  없는 존재가 집에 있다는 것은 여태껏 경험한  없는 책임의 무게가 어깨에 뻐근하게 내려앉음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약 3개월 간 살 부대끼고 동고동락하며 점점 정이 쌓여가는 것은 느끼고 있다. 신생아 시절 먹고 자고 싸고만 반복하던 아이가, 하루하루 성장하면서 눈을 맞출 수 있게 되고, 웃음 짓고 옹알이를 시작하면서는 비로소 아이가 예쁘고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할 수 있는 게 늘어가는 것이, 이젠 성장이 아닌 노화의 길을 걷고 있는 30대 엄마에게는 그저 신기하고 재미있다.




일본은 5월 8일이 어버이의 날이 아닌 어머니의 날이다. 주말에 아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던 스웨덴 남자가 카네이션과 카드를 들고 돌아왔다. 아 맞다 나도 이제 엄마지. 그리고 내가 엄마가 된 것은 아이가 내게 와줬기 때문이다.


첫 어머니의 날. 아직은 조금 낯설지만 카네이션을 보니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아이와 하루하루 부대끼면서 나도 점점 엄마가 되어간다.


Happy Mother’s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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