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이야기×에세이〉연재 01
저는 편의점을 서른 개쯤 운영합니다.
당신이 오늘 아침 집을 나설 때 골목 입구에서 손짓하던 편의점, 회사 건물 지하에 있는 편의점, 저녁 회식 때 드링크 음료 사러 갔던 편의점, 휴가철 해변에서 얼음 생수 구입한 편의점, 군대 간 동생 면회 갔다 목격한 군부대 편의점, 북한산 등산로 입구에 있는 편의점, 서울에서 속초 가는 46번 국도변에 있는 그림 같은 편의점……. 그게 다 제가 운영하는 편의점입니다. 대략 서른 개쯤 되네요.
서른 개면 서른 개지 서른 개 ‘쯤’은 뭐냐. 제가 운영하는 편의점은 모두 상상 속 편의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만 빼고.)
편의점 주인이 된 뒤로 세상 모든 편의점이 예사로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곳에도 편의점이 있구나 놀란 적도 있고, 똑같은 외양을 갖고 있어도 서로 다른 편의점의 속살을 발견하곤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만난 편의점을 저는 하나둘 마음에 담았고, 매일 아침 상상 속 편의점 문을 열고 상품을 진열하고 손님을 맞곤 합니다. 이 책에 실린 〈편의점 이야기×에세이〉는 그런 상상과 경험이 낳은 사연들입니다.
여기 실린 이야기를 저는 ‘딱 편의점만 한 이야기’라고 부르고 싶군요.
분량으로 볼 때 여기 실린 글들은 ‘초단편’이라 불리는 손바닥 소설보다는 길고, 일반적인 단편소설보다는 조금 짧습니다. 편의점이 그렇지요. 구멍가게보다 크고, 마트보다 작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내 이야기의 크기도 그랬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어디든 있는 곳이 편의점이지요. 내 이야기도 그랬으면 좋겠다. 기막힌 반전이나 스릴은 없어도, 질금 눈물 짜내는 감동 포인트는 없어도, 어디든 있을 법한 이야기, 우리 이웃들의 가까운 사연으로 빼곡하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우리 삶이 과연 그러하니까요.
무엇이든 있는 곳이 편의점이지요. 내 이야기도 그랬으면 좋겠다. 곁에 있어도 쉽게 들을 수 없던 이야기, 너무 가볍지도, 그렇다고 지나치게 심각하지도 않게 사람과 세상을 돌아보는 이야기, 함께 주위를 살피는 소소한 계기가 되는 이야기였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아이스크림이나 군고구마 같은 이야기 말이에요.
이벤트가 끊임없는 곳이 편의점이지요. 1+1, 2+1, 덤 증정, 기간 할인, 통신사 할인, 포인트 적립……. 내 이야기도 그랬으면 좋겠다. 정해진 결말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당신의 상상 속에 이어지는 이야기, 마지막 장을 덮고 문득 부모님이 생각나는 이야기, 휴대폰 주소록에 있는 친구들 이름을 새삼 만지작거리는 이야기였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이야기 하나에 에세이 하나를 덧붙인 것은 당신을 위한 1+1입니다.
편의점은 비슷한 상품끼리 연관 지어 진열합니다. 유제품은 유제품끼리, 쿠키는 쿠키끼리, 탄산은 탄산끼리, 맥주는 맥주끼리, 안주는 안주끼리……. 편의점이라는 보통 사람들의 무대 위에서는 비슷한 사람들의 비슷한 이야기가 매일 펼쳐집니다. 화려하지 않아도 우리끼리 통하는 이야기였으면 좋겠다,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제 친구는 “단편소설은 흐지부지 끝나는 것 같아 싱겁다” 입을 삐죽이곤 합니다. 단편은 스케치하듯 일상의 단면을 보여주는 얘깃거리들이고 공백을 채우는 것은 독자의 몫 아닐까, 조심히 헤아립니다. 편의점의 하루를 채우는 진짜 주인공은 손님이듯 말입니다.
딱 편의점만 한 이야기.
편의점 같은 이야기.
아니, 편의점 이야기.
그래, 우리 이야기.
그 속으로 당신을 안내합니다.
프롤로그도 딱 편의점만 하면 되겠지요?
― 〈편의점 이야기×에세이〉는 매주 화요일, 금요일 브런치를 통해 연재합니다.
― 그림은 대학 새내기인 딸이 그렸습니다. 글과 그림의 저작권을 존중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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