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리 민수가 완도신문 5면을 펼쳐놓고 캬―를 연발한다. 진짜 멋지다고 생각하는 건지 비웃는 건지 모르겠다. 이놈이 뭐라고 하든 말든 대꾸도 말자 다짐했는데 오늘은 또 이런 일로 찾아오니 내쫓을 수도 없고……. 고 씨는 마음이 한결 너그러워진다. 민수가 내민 파라솔 의자에 슬그머니 엉덩이를 붙이고 앉는다.
하긴 기자들이 다르긴 다르다. 한두 시간 취재하더니 마치 우리 편의점에 내내 있었던 것처럼 아름답고 훈훈한 기사를 써주었다. 밤낮 글만 쓰는 사람들인디 어련하겄어, 고 씨는 생각한다. 다만 신문 지면 한가운데, 스푼에게 패딩 점퍼를 건네주는 사진 속 자신의 얼굴이 못내 아쉽다. 웃음이 어색하다. 입꼬리를 올리며 크게 웃을 걸 그랬나. 이제와 후회해봤자 소용없지만 그것이 내내 아쉽다. 신문 사진은 뽀샵 처리 같은 거 안 하나, 고 씨는 문득 그것이 궁금하다.
“꼭 이것 때문에 오지는 않았을 테고, 오늘은 또 뭔 시비를 걸라고 온 거여?”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기분이 좀 화사한 김에 고 씨는 묻는다. 앞마당 청소도 마저 해야 하고, 오늘은 섬에 배송 트럭 들어오는 날이다. 트럭 들어온 김에 반품도 해야 하니 유통기한 다가오는 상품은 싸그리 솎아내야겠고, 소주병이랑 맥주병 공병 정리도 해야겠고, 할 일이 많다. 민수랑 투닥거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아―따 성님. 성님은 꼭 내가 싸우러만 오는지 아는갑소. 쪼까 섭섭하구마잉…….” 신흥리 민수가 말꼬리를 길게 늘이는가 싶더니 쭈볏쭈볏, 이어지는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인다. 마른 땅바닥을 신발코로 툭툭 두드리며 몇 초간 시간을 낚는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이리 뜸을 들이는 걸까. 재촉하며 바라보는 고 씨의 시선을 슬쩍 피했다가 민수는 말한다.
“긍께요 성님. 성님은 이제 완도의 유―명 인사가 되았지 않습니까. 덕화도의 덕망 있는 사장님 아니신가요. 지역 사회 발전을 위해서 이렇게 탁, 기부도 해부르시고…….”
‘덕화도 GS25 편의점 고희선 대표, 따뜻한 기부’라고 쓰인 신문 부제목을 가리킨다. 거기서 ‘기부’ 두 글자를 골라 빨간펜으로 강조하듯 손가락 동그라미를 그리며 민수는 말을 잇는다.
“긍께요 성님. 성님은 편의점 사장님 맞지라?”하고 묻는다. 당연한 걸 왜 묻는가. ‘편의점 사장’ 가운데 유독 ‘편의점’을 강조한다. “편의점으로도 충분히 먹고사는 사장님 맞지라?” 하면서 또 ‘편의점’을 강조한다. ‘충분히’는 추-웅-분-히-하면서 최대한 길게 늘이며 말한다.
고 씨는 침을 꿀꺽 삼킨다. 뭐여, 뭔 말이 하고 싶은디, 하는 눈빛으로 신흥리 민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긍께요 성님. 성님 같이 성공한 편의점 사장님이 꼭 낚시용품점까지 같이 하셔야 쓰겄소?”
역시 그 말이 하고 싶었던 거구나. 오살할 놈.
작년 8월 말이었나, 9월 초였나, 태풍 때문에 매출이 0원이 된 기록적인 날에서 며칠 지났을 때이니 틀림없이 그쯤이다. 스푼이 기흥리 고 씨가 운영하는 GS25 편의점에 처음 찾아온 날은 그쯤 되었다.
“언능 집에 들어가” 하면서 등 떠밀 듯 마누라를 집에 보내고 고 씨 혼자 편의점 앞마당 테이블에 앉아 뻑뻑 담배를 피워대고 있을 때였다. 끊은 지 4년 만에 다시 피울 때는 켁켁 입에 맞지 않더니 어느새 하루에 한 갑 정도는 고 씨 스스로 편의점 담배 매출을 올려주고 있던 참이었다.
해변으로 난 소나무 오솔길 쪽에서 긴 장화를 신고 얼굴이 까무잡잡한 사람이 터벅터벅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저녁놀에 역광으로 얼굴이 비쳐 제대로 확인할 순 없으나 한눈에 보아도 동남아 사람인 걸 알겠다. 위에는 해진 흰색 긴 팔 셔츠를 입었고, 바지는 감람색 츄리닝. 근처 양식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인부들의 전형적인 복장이다. 필리핀? 태국? 베트남? 요즘 동티모르 사람들이 많이 왔다더니 거기 사람인가? 고 씨는 자기가 아는 동남아 국가들의 이름을 쭉 떠올려 보았다.
그 사람이 편의점에 올 것이란 생각은 못 하고 계속 담배를 입에 물고 있는데 고 씨 앞을 쓱 지나쳐 편의점 안으로 들어간다. 부리나케 담배를 집어 던지고 고 씨도 매장으로 뛰어갔다.
편의점에 왔으면 먼저 물건을 고르고 계산을 하는 것이 순서이련만 동남아 손님은 그냥 맨손으로 카운터 앞에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다. 고 씨는 카운터 안에서 물끄러미 동남아를 바라보았다.
동남아가 마침내 입을 연다.
“약 주어요.”
약?
“약. 약. 주, 어, 요 .”
약 주세요, 라는 뜻인가 보다. 편의점에서 웬 약을 찾나? 편의점에서 약을 파는 걸 아는 걸 보니 도시에서 좀 일하다 온 노동자인가 싶었다. 그런데 고 씨네 편의점에는 상비의약품을 팔지 않는다. 24시간 영업하지 않는 편의점에는 약품 판매허가권을 주지 않는다. 예전에 점빵 시절에야 남평댁이 아까징끼랑 반창고, 붕대는 물론이고 감기약, 배탈약, 소화제, 진통제, 알레르기약까지 다 갖다 놓고 동네 약사처럼 처방도 해주고 그랬지만 요즘 세상에 어디 그럴 수 있겠나.
“약은 없어.” 고 씨는 좌우로 손을 흔들었다.
그랬더니 동남아가 고개를 돌려 카운터 맞은 편을 가리키며 말한다. “약, 약!”
저게 약이 아니고 뭡니까? 하는 표정이다.
저기에 무슨 약이 있다는 거지? 하면서 동남아의 손가락 끝을 시선으로 따라가 보니 음료 냉장고를 가리키고 있다. 냉장고에 약이 있다고? 답답하다는 듯, 동남아는 이번에는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 끝을 둥그렇게 말아 들이키는 시늉을 한다. “약! 약! 쭈우욱!”
동남아가 ‘약’이라고 말한 건 소주였다.
“어이 약이나 한 잔 하세.”
“약 한 잔 쭈욱 들이키고 하드라고.”
뱃일할 때, 양식장에서 일할 때, 한국인 고용주들이 술을 약이라고 칭하니 외국인 노동자들도 그것을 약이라 부른다는 사실을 고 씨는 그날 처음 알았다.
신흥리에 CU 편의점이 생겨난 것은 석 달 전 일이다. 섬치고 면적이 작지는 않고, 섬 가운데 봉화산을 중심으로 북쪽에 기흥리, 남쪽에 신흥리, 두 개의 행정구역이 있다지만, 인구는 3천이 되지 않고, 김, 미역, 전복, 다시마 농사짓는 일 말고는 변변한 상업 시설조차 없는 덕화도에 편의점이 두 개나 들어선 것이다.
아무리 기흥리와 신흥리는 원수지간이라지만 그것도 다 옛말 아닌가.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신흥리에 편의점이 공사 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고 씨는 설마 했다. 한달음에 달려가 보니 정말로 보라색 CU 간판이 걸려 있고, 이제 막 내부 공사를 시작하고 있었다.
“주인이 누구다요?”
이장에게 물으니 신흥리 민수란다. 덕화낚시용품점 털보 민수. 초중고등학교를 모두 같은 학교 다녔던 3년 후배 땅딸보 곽민수. 정말 그 자식이 CU 사장이라고?
“망할 거다, 안될 거다, 하던 자네 패니잼이 잘 되는 걸 보고 벨이 좀 꼬였는갑제.” 하면서 이장도 혀를 끌끌 찼다.
GS25 지역본부에서도 이것은 곧 ‘비상사태’로 받아들여졌다. 덕화도에 경쟁 브랜드가 생겨날 것이라고는 누구도 상상조차 못 했다. 고 씨 부부가 가맹 상담을 하러 갔을 때 신규 점포 개발담당자가 “덕화도는 죽었다 깨어나도 독점입니다” 하면서 큰소리를 떵떵 쳤더랬다. 고 씨 부부도 물론 그렇게 굳게 믿었다. 지역팀장에게 전화했더니 “와, 이거 뉴스에 나올만한 사건이네요” 하면서 말을 잇지 못 한다.
신흥리 이장에게 곽민수 전화번호 좀 알려달라 했더니 잠시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다 알려줬다. 통화연결음이 서른 번쯤 울렸을 때야 곽민수는 전화를 받았다.
“아이고, 성님. 이렇게 전화로 인사드리요잉. 이게 몇 년 만이요. 그동안 잘 사셨소?”
그리고는 “근디 지가 지금 서울에서 교육받는 중이라서…… 나중에 전화 드릴게라”하면서 툭 끊는다. 고 씨가 한바탕 쏟아부을 겨를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신규 점주 교육받는 건 알겠는데, 누군 그 교육 안 받아봤나, 교육장에서 슬쩍 나와서 전화 받으면 되잖아, 싸가지 없는 자식……. 정말 그때는 홧병으로 쓰러지는 줄 알았다.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신흥리 출신인 고 씨 마누라는 곽민수랑 어릴 적부터 누나 동생 하는 사이다. “내가 그놈을 업다시피 하면서 학교에 델다주고 그랬는디, 아이고” 하면서 세상을 다 잃은 표정이다. 그렇다고 친정 신흥리에 가서 따질 수도 없는 것이 아내의 처지였다.
신흥리 민수는 끝내 전화하지 않았다. CU 덕화보람점은 공사를 시작한 지 보름 만에 오픈했다. ‘CU 덕화점’이라는 이름이 서울에도 있어 ‘완도덕화점’이라고 하려다가, 혹은 ‘덕화신흥점’이라고 하려다가, ‘덕화보람점’으로 결정했다는 사연이 들렸다. 민수 딸내미 이름이 보람이라 그랬다.
딸내미 아끼는 마음이 갸륵하구만. 동네 사람들은 민수를 칭찬했다. 고 씨와 아내는 콧방귀를 뀌었다. 자기네 가게가 덕화제일점이니 그저 맞불을 놓는 차원에서 덕화보람점이라 했을 거라고 부부는 생각했다. 선거철이 지나니 편의점 오픈식에 읍장도 안 오고 국회의원도 화분 하나 안 보내줬다는 소문을 듣고 부부는 고소하게 생각했다.
그래도 잔칫날에는 초 치는 것 아니라는 아내의 만류에 고 씨는 CU 덕화보람점 오픈식 사흘 후 오토바이를 타고 신흥리로 달려갔다.
“화를 내도 제가 내야 할 판인디, 방귀 뀌신 분이 성낸다고 이게 뭐시당가요.” 잔뜩 비꼬는 말투로 민수는 말했다. 민수의 예상치 못한 공격적인 태도에 고 씨는 당황했다.
“나는 편의점을 하면서 손님들 ‘편의’를 위하야 거기에 째―깐하게 낚시용품 들여놓은 거고, 너, 너는 나 죽이려고 대놓고 펴, 편의점을 차린 거 아니여.” 고 씨는 말을 더듬기까지 했다.
“성님. 말씀 다 하셨소? 내가 여기서 10년 넘게 낚시용품점 하믄서 담배랑 음료수도 같이 팔았던 건 알고 계셨지라? 그럼 성님은 나 죽이려고 상어 이빨맹키로 편의점 차리셨소?”
말로는 민수를 당할 재간이 없다.
씩씩거리며 돌아서는 고 씨의 뒤통수에 민수가 말했다.
“내가 편의점을 차리든 말든, 여기는 ‘자유’ 대한민국 아니요. 선택의 자유가 있당게요!”
동남아는 ‘약’을 들고 파라솔 의자에 털썩 앉았다. 뚜껑을 또르륵 돌려 따더니 벌컥벌컥 깡소주를 들이마신다. 곧이어 상체를 푹 숙이고 어깨가 흐느끼는 것이 창 너머로 보였다.
그냥 내버려 둘까 하다가 조그만 체구의 외국인이 홀로 울고 있는 모습이 애처로워 보여 고 씨도 조용히 테이블 맞은편에 앉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바람에 파라솔이 날아갈 것 같더니, 오늘은 뭉게구름마저 봉화산 꼭대기에 꽁꽁 묶인 듯 걸려 있다. 태풍을 견뎌낸 매미들의 자지러지는 합창 소리가 사방에 가득했다. 동남아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고 씨는 기다렸다.
하필 또 햇볕이 쨍쨍한 쪽에서 이렇게 앉아 있나. 가게에 들어가 새우깡 한 봉지를 들고나와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고 씨는 파라솔 위치를 조정해주었다. 동남아 쪽으로 방석만 한 그늘이 만들어졌다.
“자. 이거라도 먹어.”
새우깡 하나를 동남아 쪽으로 건넨다. 동남아가 고개를 들고 놀란 표정으로 고 씨를 바라본다. 소처럼 큼직한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으니 눈동자는 더욱 까맣게 빛난다.
“어디서 일해? 누구 집서?”
어디서 일하냐는 질문을 동남아는 어디서 왔냐는 말로 듣고는 ‘스리랑카’라고 했다. 누구 집에서 일하냐는 질문도 잘 못 알아듣고 ‘스푼’이라 했다. “마이 네임 이스 스푼.” 스푼, 참 특이한 이름일세, 고 씨는 생각했다. 잠깐 손짓 발짓 하며 대화를 이어나간 끝에 현덕 성님네 전복 양식장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힘 못 쓴다고 욕을 좀 먹었나 보다. 하긴 그 양반이 꽤 다혈질이지.
“힘들지? 그 양반이 원래 그래.”
한국에 일하러 온 외국인 노동자들도 1지망, 2지망, 선호하는 일터가 있다. 1지망은 대도시 식당이나 공장에서 일하는 것이고, 2지망은 지방의 식당이나 공장이다. 3지망이 육지 농촌이라면, 덕화도 같은 섬마을은 4지망이나 5지망쯤 된다. 언어가 통하지 않고 체력도 약해 보여 여기서도 저기서도 받아주지 않으니 파도에 조개껍질 쓸리듯 밀려 들어오는 4지망, 5지망 인생. 가장 건장한 사람들이 일해야 할 어선과 양식장 한복판에서 가장 약골인 사람들이 용을 쓰는, 평평한 세상의 기막힌 역설. 여기서도 밀려나면 더 이상 갈 곳이 없으니 다들 악착같이 버텨보려 하지만 바닷일이 어디 수월한가. 나흘을 버티지 못하고 손사레 치며 물러나는 인부들이 허다하다.
“바닷일이 원래 그런 거여. 차차 괜찮아질 거여.”
고 씨는 스푼의 조그만 등을 토닥여줬다.
“현덕이 성님은 내가 잘 아니까 전화해줄게.” 엄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을 쭉 펴서 얼굴에 갖다 대고 전화하는 흉내를 냈다.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하지 못한 듯, 스푼은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쏘주 한 잔 쭈욱 하고, 기분 풀어.”
이번에는 고 씨가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을 둥글게 말아 쭈욱 들이키는 시늉을 했다. 그 동작에 스푼이 희미하게 웃었다.
“크아, 조오타.” 스푼은 이 말도 할 줄 알았다.
스푼은 영어를 꽤 잘했다. 고 씨보다 훨씬 잘했다. 계산기에 숫자 찍어 보여주며 “쓰리따우전드 파이브헌드래드”하던 고 씨의 ‘동대문 영어’에 비할 바 아니었다. 스푼은 스리랑카에서 중학교 교사였단다. 담당했던 과목은 ‘싸이언스’, 그리고 ‘매스매틱스’.
어차피 손님도 없겠다, 이놈의 편의점을 계속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터에, 고 씨도 소주 한 병 들고 나와 스푼과 ‘약’을 복용했다. 그날 그들은 새우깡을 가운데 놓고 ‘각 일 병’씩 들이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