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해 질 무렵 스푼이 스리랑카 인부 예닐곱 명을 데려왔다. 그동안 장사가 안돼 창고 안에 넣어두던 파라솔 두 세트를 다시 꺼내야 했다. 편의점 앞마당에 이렇게 사람이 북적이기는 개업식 이후 처음이다.
소문이 언제 그렇게 퍼졌을까. 다음날, 그다음 날, 한 국가, 다른 민족, 인터내셔널 정기총회가 열린 것처럼 만국의 노동자들이 모여들었다. 네팔, 태국, 베트남, 필리핀, 카자흐스탄, 몽골, 동티모르……. 고 씨네 편의점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회합 장소가 되어 갔다.
섬에서 노는 시간에 외국인 노동자들은 달리 오락거리가 없다. 술집, 노래방 하나 없는 덕화도는 더욱 그렇다. 다들 일만 끝나면 쪼르르, 유일한 해방구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외국인 인부들을 고용하는 마을 주민들 입장에서도 괜히 숙소에서 TV 보며 뒹굴고 있는 것보다 그것이 낫다고 좋아했다.
하루는 고 씨 아내가 마을회관 다락에 있는 장구를 꺼내왔다. 그러자 다들 자기들 나라에도 그런 비슷한 악기가 있다고, 눕히기도 하고 세우기도 하며, 자기들 방식대로 장구를 두드리며 노래 불렀다. 어디선가 탬버린과 하모니카가 등장했고, 또 누구는 리코더를 가져와 기막히게 불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은 악기들이 멋지게 화음을 이뤘다. 이 섬마을에서 그것이 시끄럽다 항의할 사람은 없었다. 동네 어르신들도 재밌다고 주위에서 구경했다. 낚시꾼들도 지나가다 신기한지 고 씨네 편의점에 들렀고, 금세 다시 소문을 타고 신흥리에서 일하는 외국인 인부들까지 고 씨네 편의점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섬 공인 교통수단 오토바이를 앞뒤에 타고 우르르 몰려왔다.
기흥리 할매들이 편의점을 ‘패니잼’이라 부르니 그들도 편의점을 패니잼이라 불렀다. “어디 가?”하고 고용주들이 물으면 외국인 인부들은 “패니잼!” 하면서 고 씨네 편의점 방향을 가리켰다. 결국 신흥리 국어사전에도 ‘패니잼’은 고유명사로 등재됐다.
GS25 덕화제일점은 대박을 터트렸다. 뭍에서 사정 모르는 담당 영업사원이 갑작스레 왜 이렇게 매출이 늘었냐 물어볼 정도였다. 그런 절정의 순간에 신흥리 민수가 CU 편의점을 차린 것인데, 신흥리에 편의점이 생겨난 뒤로도 외국인 인부들은 고 씨네 ‘패니잼’으로만 몰렸다. 경쟁점이 생겨나면 매출이 반토막이 날 거라 걱정했던 고 씨 부부는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주위에 자랑했다.
“세상에 흔하디흔한 것이 편의점이라지만 ‘패니잼’은 우리가 단독 1호여, 단독 1호!”
장사가 잘되면 모든 일에 너그러워진다, 없던 미소도 입가에 생겨나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친절해진다.
고 씨 부부는 밤마다 매출을 확인하며 덩실덩실 해방춤을 추었다.
“긍께라 성님. 성님은 인자 편의점만으로도 충분히 먹고살잖소. 긍께 낚시용품 코너는 쫌 안 하믄 안 되겠소?”
“아, 이 사람아, 내가 낚시용품을 하든 말든, 여기는 ‘자유’ 대한민국이여.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당게.” 고 씨는 민수가 했던 말을 그대로 되돌려줬다.
“글고 말이여, 내가 낚시용품 코너를 빼야 한다믄, 자네도 편의점을 하지 말아야제. 그게 순리에 맞는 일 아니여? 아침부터 찾아와 점잖지 못하게 이건 또 뭐여?”
“아이고. 내가 낚시용품점에 담배랑 음료수 파는 줄 뻔―히 암시롱 여기에 편의점 떠억 차리고, 거기다 낚시용품까지 팔고 계신 점잖은 양반이 누구신디라?” 민수가 반격한다.
“고건 고거고, 이건 이거 아닌갑서.” 고 씨는 역시 논리에 살짝 밀리는 것을 느낀다. “긍께 내가 낚시용품 빼믄 자네는 편의점을 뺄거여, 말 거여?”
사실 타협점은 그거다. 한 섬에 편의점이 두 개나 있으니 남사스럽긴 하지만 이제 와 민수가 편의점을 뺄 수는 없고, 장사 잘되는 고씨네가 낚시용품을 빼는 것이 옳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기흥리, 신흥리 이장 사이에도 그것이 낫겠다는 이야기가 오갔다고 들었다.
“서울에 오래 살드만 욕심만 많아져 갖고…… 패니잼에 낚싯대, 지렁이는 왜 파는 거여.”
“그러게 말이여, 신흥리 털보가 옛날부터 그거 파는지 알았으믄 희선이는 안 팔았어야제.”
“요새 젊은 사람들은 당최 염치가 없당게. 염치, 도덕이 없단 말이시.”
눈 밝은 할매들은 이렇게 숙덕였다.
문제는 고 씨 아내가 펄쩍 뛴다는 것이다.
“낚시 매출도 솔찬한디 그거 빼불믄 뭐가 남것소. 외국인 인부들도 1년 356일 붙박이로 있는 것도 아니고, 계절 따라 옮겨다님시롱 언제 싸악 빠져나갈지 모르는디, 편의점 안 되믄 낚시로라도 먹어 살아야지라. 당신은 그렇게 귀가 얇아서 탈이랑게요. 마음 좀 독하게 먹으쇼. 시방 남 사정 봐줄 때가 아니란 말이요.”
고향에 돌아오더니 서울말은 금세 날아가고 어느새 고향말이 구수하게 자연스럽다. 역시 고향은 고향인갑서, 생각하면서 고 씨는 연신 담배 연기만 허공에 뿜어낸다. 30년간 고향 떠나 이런 일 저런 일 겪으며 아내 말을 거역해서 잘 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번에도 마누라 말이 맞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도…….
신문에 고 씨가 큼지막하게 실린 건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겨울철 패딩을 선물한 일 때문이다.
동대문에서 오랫동안 수건 장사했던 덕에 옷 장사하는 사람들을 많이 알았다. 평화시장 최 사장에게 오리털 패딩 예순 벌을 주문했다. 치수별로 골고루 보내 달라고 했다. 우리 살림에 몇백만 원이 어디 강아지 이름이냐고 아내가 펄쩍 뛰었지만 “이것이 다 미래를 위한 투자여” 하면서 설득했다. “신흥리 민수한테 손님 다 뺏길 거여?” 하니까 그제야 아내는 “당신이 머리 쓸 줄도 아네” 하면서 헤쭉 웃었다.
물론 장삿속만은 아니다. 섬에서 일하는 외국인 인부들은 대부분 더운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다 보니 추위에 유독 힘들어했다. 집집마다 보일러 세게 틀고 전기장판을 최강으로 틀어 놓아도 문틈 창틈으로 들어오는 외풍에 이를 딱딱거리며 잔다고 수푼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런 혹독한 추위는 태어나 처음 겪어보는 계절이리라. 겨울이 되면 섬에는 일감이 줄었다. 패니잼을 찾는 인부들도 줄었다. 변변한 겨울 점퍼 하나 없어 셔츠 몇 개 겹겹이 껴입고 덜덜 떨며 찾아오는 외국인 손님들이 고 씨는 고맙고 짠했다.
사실 패딩 점퍼는 스푼이랑 스리랑카 친구들 몇 명에게만 챙겨주려 했다. 그런데 소문이 워낙 빠른 섬동네인지라 누군 주고 누군 안 줬다고 불만이 있을 수 있고, 그렇다고 모든 외국인 인부들에게 하나씩 다 줄 수는 없고, 겨울에도 덕화도를 떠나지 않고 붙박이처럼 일하는 패니잼 단골 리스트를 스무 명쯤 골랐다. 각 나라마다 나름대로 대장 역할을 하는 인부가 있어서 그들을 통해 예순 명쯤 최종 명단을 추렸다. 그러는 사이 각 마을 이장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발넓은 신흥리 이장이 완도신문에까지 알렸다. 신문 기자가 카메라를 들고 바다를 건너왔다.
“패니잼 고 씨가 돈 벌더니 좋은 일에 마음을 쓴다네.”
“희선이 갸가 사람이 참 되았제. 어렸을 때부터 심성이 고왔잖여, 잉?”
“긍께로 신흥리 이쁜이도 딱 반해서 둘이 야밤에 광주로 도망가분거 아니여.” 낄낄낄. 키득키득.
“아따 그 사람, 서울서도 남대문에서 크―은 이불가게도 하고 크―으게 성공해서 돌아왔당게.”
어른들은 한마디씩 거들었다. 그렇게 동대문은 남대문이 되고, 수건가게는 이불가게가 되고, 고 씨와 고 씨 아내는 완도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되었다.
“다른 건 몰라도 내가 심성이 고왔다는 건 틀린 말이 아니제.” 잠자리에 누워 멀뚱히 천정을 바라보던 고 씨가 이렇게 중얼거리자 아내가 등을 돌리며 말했다.
“그라제. 당신이 심성이 곱디 곱제. 다 믿어 불고, 다 빌려주고, 다 털려 불고, 세상에 기부를 차암 많아 하셨제.” 끄응.
평화시장 최 사장한테 패딩 점퍼를 주문할 때, 점퍼 앞 왼쪽 가슴에 글씨를 박아달라고 했다.
나염으로 붉게,
I ♡ WANDO
신흥리 쪽에서 오토바이 몇 대가 무리 지어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고 씨는 반가운 눈빛으로 고개를 쭈욱 내민다. 민수도 돌아본다.
“아따. 저 친구들 무면허로 운전 참 잘하네, 잉.” 민수가 빈정거리며 말한다. 너나 헬맷 좀 쓰고 댕겨라, 하려다가 고 씨는 참는다.
“여어, 애니스, 칸, 루안 왔어. 어? 로싼! 아마야는 어디다 두고 혼자 왔어?” 고 씨가 평소보다 훨씬 쾌활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로싼이라고 불린 남자는 뭔가 뒤집은 시늉으로 고 씨에게 대답한다. 아마야는 다시마 뒤집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라는 말이렷다.
패니잼 앞마당이 오토바이 엔진 소리로 별안간 소란스러워진다. 한 팀을 내려주고 간 오토바이는 또 다른 일행을 태우러 남쪽으로 핸들을 돌린다.
“나도 이제 장사 시작해야겄응게 그만 가드라고.”
“아따 성님. 이야기는 마저 끝나야 하지 않겄소?”
“오늘은 싸우러 온 거 아니라고 하지 않았든가?”
민수는 조용히 꼬리를 내린다. 고 씨는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다시 집어 든다.
도착한 손님들이 과자와 음료 몇 개를 들고 나와 파라솔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앉는다. 민수가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분명 우리 편의점에 와야 할 손님들인데, 하는 허탈감과 배신감의 표정이 역력히 읽힌다.
“응 그래, 적어놓을게. 롸이트, 롸이트.” 고 씨는 손바닥에 무언가 적는 시늉을 하며 파라솔 일행에게 말한. “루안, 네꺼 장부에 적어두면 되지?”
“지에스 본사에서도 이 사실을 알랑가 모르겠네요.” 부정행위라도 적발한 목소리로 민수가 따지듯 말한다.
“아, 이 사람아, 나쁜 일 하는 것도 아니고 좋은 일인디 뭐가 어때서. 이 친구들 작업복에 현금 넣고 댕기다가 잃어버리고 물에 젖고 그러니까 장부에 적어놨다 한꺼번에 받고 그러는 거여.”
영업기밀 하나를 들켜버렸구나 싶어 고 씨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민수는 더 트집 잡을 것이 없나, 더 알아낼 것이 없나 하는 시선으로 편의점 이곳저곳을 삐딱하게 뜯어보다 자리에서 일어선다. 오른손을 바지춤에 슬쩍 닦고는 웬일로 고 씨에게 악수를 청한다.
“아무튼 성님 축하드리고…… 앞으로도 좋은 일 많이 하십시오.” 민수가 오토바이 쪽으로 향하며 말한다. “누님한테도 잘해주시고요.”
“알았네, 이 사람아. 그리고…….”
이야기를 할까 말까 하다가 고 씨가 말한다.
“그 문제는 주말 지나고 다시 이야기하세. 내 안사람이랑 한번 잘 상의해 보겠네.”
아내는 펄쩍 뛰겠지만, 고향으로 돌아왔으니 이제는 늙어 죽을 때까지 여기서 살아야 하는 운명 아닌가.
‘그 문제’라는 말에 민수의 눈이 반짝인다.
“오매, 성님. 캬― 역시 성님이랑게.” 포옹이라도 할 듯 오토바이에서 내리려는 것을 고 씨가 말린다.
“조심히 가고, 귀찮아도 헬멧도 꼭 쓰고 댕겨. 사람 목숨 어떻게 될지 모르는 법이여. 보람이랑 제수씨 생각도 하란 말이여.”
민수는 씽긋 웃으며 시티100 페달을 밟는다.
남쪽으로는 민수가 탄 오토바이가 다시 흙먼지 흩날리며 사라지고, 북쪽 기흥리 쪽에서 또 오토바이 몇 대가 달려온다. 딱 봐도 스푼이랑 스리랑카, 네팔 친구들인 걸 알겠다. 이미 도착한 파라솔 일행과 서로 연락을 주고받았나 보다. 의자에 앉아 빼빼로를 먹고 있던 파키스탄 칸이 손을 흔들며 오토바이 일행을 환영한다.
어느새 파라솔 테이블 세 개를 떠들썩 여러 언어가 채운다.
모두 고 씨가 준 패딩 점퍼를 입고 왔다. 색깔을 좀 통일할 걸 그랬나. 취향에 따라 골라 입으라고 검정, 빨강, 파랑, 노랑으로 다양하게 주문했더니 알록달록 약간 어지럽다.
패딩 점퍼 뒤쪽에도 큼지막하게 글씨를 박으면 좋지 않겠냐고 평화시장 최 사장이 꼬드기길래 이렇게 적어달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