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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달호 Aug 16. 2019

새우탕에 소고기가 들어가는 것처럼

〈편의점 이야기×에세이〉연재 05

어느 섬에 갔더니 그리 크지 않은 섬 이편저편에 편의점이 두 개나 있는 걸 보고 놀랐습니다. 호기심에 검색해보니 그 섬의 인구는 3천 명 남짓이더군요. 그중 65세 이상 인구가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이런데도 장사가 될까? 동네 주민에게 물으니 “해질 때 한번 가보쇼”라고 말하며 흐뭇한 표정으로 웃었습니다. 그곳 편의점 앞마당 풍경은 〈패니잼 고 씨〉에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패니잼’이라는 용어는 그 섬의 할머니들이 실제로 그렇게 부르시는 것을 귀담아 두었다 빌렸습니다. 작은 화폐 단위인 penny와 과일과 설탕을 뒤섞어 만든 jam이 결합된 것이 미묘했습니다. (물론 할머니들이 그것을 의도하신 것은 아니겠지만.) 어쩌면 편의점이라는 공간도 그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  패니잼 고 씨 _ 1화

■  패니잼 고 씨 _ 2화

■  패니잼 고 씨 _ 3화


경기도 안산 어느 공장단지에 있는 편의점 역시 손님의 상당수가 외국인 노동자들입니다. 그곳은 한국이 아니라 뉴욕 외곽 어느 편의점을 옮겨 놓은 것과 같았습니다. 다양한 외국 상품이 준비되어 있고, 여러 국적 손님들과 쾌활하게 어울리는 그곳 편의점 주인장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서울 구로구 어떤 편의점도 손님 열 명 가운데 예닐곱 명이 외국인입니다. 주로 중국인 손님들이다 보니 주인장은 중국어를 꽤 할 줄 알고, 베트남어, 러시아어, 기타 이런저런 언어도 간단한 소통이 가능합니다. 금전출납기 옆에는 신짜오, 쁘리벳, 싸왓디캅, 슬마맛다땅 같은 인사말이 적힌 그만의 커닝(?) 페이퍼가 붙어 있었습니다.


〈패니잼 고 씨〉는 남쪽 어느 섬에 있던 편의점을 배경으로 안산, 구로 등지 편의점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잼’처럼 엮었습니다. 특별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요즘은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나라, 다양한 민족의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가끔 놓치곤 합니다.      


     



제가 운영하는 편의점에도 외국인 손님들이 적잖습니다. 한 번은 검은 피부에 부리부리한 눈을 가진 남자 손님이 라면 진열대 앞에서 제품을 탐색하고 계시더군요. 한참 보다 못해 “메이 아이 헬프 유?”하면서 용기 내어 대화를 시도했지요. 그는 저의 영어 실력을 금방 간파하고는 간결하게 “노 비프”를 요구했습니다.


소고기가 들어있지 않은 컵라면은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제가 추천한 상품은 새우탕 컵라면. “씨푸드, 쉬림프, 릴렉스!”하니까 그는 “오케이, 땡큐!”하면서 기쁜 표정으로 그것을 구입했습니다.  


그 손님이 돌아간 후 충만한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한 저는 라면 제조사 소비자상담실에 전화를 걸어 “혹시 새우탕에 소고기 성분이 들어가나요?”하고 물었습니다. 느닷없는 질문에 당황한 상담원에게 전후 사정을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엄격한 직업의식을 갖고 있던 그 상담원은 어딘가에 문의한 후 곧 결과를 알려줬습니다.  


“새우탕에는 육수 분말 성분이 들어있는데, 그것을 위해 미량이지만 소뼈나 돼지뼈, 닭뼈 등을 사용합니다. 국내에 시판되는 용기면 가운데 소고기 성분이 들어가 있지 않은 제품은 거의 없습니다. 고객님의 문의에 감사드리며…….”


그건 마치 좋지 않은 검진 결과를 알려주는 의사의 목소리와도 같았습니다. ‘어이쿠야 손님!’ 하며 이마를 쳤지만 손님은 그 시각 어딘가에서 따끈한 라면 국물을 후루룩 맛있게 먹고 있을 것이 분명했습니다. 요즘도 새우탕 컵라면을 볼 때마다 ‘노 비프’를 찾던 손님의 얼굴이 떠올라 괜스레 미안해집니다. 그가 모시는 신께서도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겠지요?     

 



편의점이 두 개 있는 작은 섬의 풍경화는 도시에서는 사실 그리 새삼스러운 일은 아닙니다. 골목 이 끝 저 끝 사생결단하듯 생겨나는 편의점을 오늘도 우리는 숱하게 목격하고 있으니까요.


그럴 때 대체로 우리는 먼저 생겨난 쪽과 나중에 생겨난 쪽을 따져가며 잘잘못을 헤아립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은 꼭 그렇게 단순하게 재단할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지난 수년간 편의점을 운영하며 새삼 깨달았습니다. 세상사 이면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복잡한 사연들이 가득하구나,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잘못한 일이란 흔치 않구나, 하고 늘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곤 합니다. 새우탕 컵라면 스프에 소고기 성분이 들어있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처럼 의외의 일, 예측 불가능한 사건들이 주위에는 많습니다.



당신의 인생에도 밤새워 하소연해도 다 풀어놓지 못할 수많은 사연의 고리들이 복잡하게 얽혀있을 것입니다. 누구든, 어디든, 무엇이든 그렇습니다. 고리와 고리의 연관 관계 속에 오늘도 우리는 살아갑니다.


누군가 마음에 들지 않고 자꾸 눈에 거슬린다면, 저 사람도 무슨 사연이 있겠구나, 일단 그 사람의 ‘고리’를 가늠해주는 작은 여유 또한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를 위해, 혹은 나를 위해, 거창하게는 ‘우리’를 위해.   


(이어서 〈편의점 이야기×에세이〉 제2화 "선영끼리 왜 그래"가 연재됩니다.)



― 〈편의점 이야기×에세이〉는 매주 화요일, 금요일 브런치를 통해 연재합니다.

―  그림은 대학 새내기인 딸이 그렸습니다. 글과 그림의 저작권을 존중해주세요.

―  출간 관련 문의 :  runtokore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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