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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달호 Aug 20. 2019

선영끼리 왜 그래 (1)

〈편의점 이야기×에세이〉연재 06

선영은 알고 있다. 다 알고 있다. 지금 냉동고 문 열고 얼음생수 꺼내는 저 남녀, 바깥 파라솔 의자에 나란히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는 선글라스 저 남녀, 등산용품 걸어놓은 회전진열대를 뱅글뱅글 돌리고 있는 저 남녀, 진짜 부부인지 아닌지, 선영은 안다. 다 안다. 아무리 부부인 척, 불륜이 부부의 가면을 써봤자, 가짜가 진짜를 연기해봤자, 감별사 선영의 매서운 눈매를 피해가진 못한다. 다년간 숱한 커플 남녀를 마주했던 촉감을 토대로 선영은 90%, 아니 99% 정확하게 부부 진위를 구분해낸다. 선영의 경험에 누적된 통계에 따르면 등산로 입구 편의점에 다정하게 손잡고 들어오는 커플은 50%, 아니 80% 불륜이다.


오빠, 오늘 쓰고 나온 모자, 멋지다!”

진짜 부부는 나이가 쉰 줄에 접어들도록 ‘오빠’라는 호칭을 쓰지 않는다. 친남매나 친인척이 저렇게 다정하게 함께 산을 오르는 사례도 학계에 보고된 바는 없지만 어쨌든 극히 드물다. 동네 오빠-동생이 단둘이서 등산길에 나설 확률은 또 얼마나 될까? 그럼 여기서 ‘오빠’는 어떤 오빠인지, 이건 감별사 자격시험 초급 수준 문제다.


여보, 생수 챙겼어?”

여보는 무슨! 진짜 부부는 도시락, 과일, 초콜릿, 사탕, 음료수, 선크림, 손수건, 핫팩, 비상약, 휴대용 나이프까지 집에서 빠짐없이 준비해온다. 등산로 입구 편의점에서 이건 챙겼냐, 저건 있느냐 부랴부랴 둘러보지 않는다. 헤프게 돈을 쓰지도 않는다. 600원짜리 생수 한 병마저 망설이며 구입한다. 계산할 때 남자가 지갑을 꺼내지도 않는다. 여자가 이것 사줘, 저것 사줘, 하며 애교 떨지도 않는다. ‘진짜’ 부부라면.


자기야, 가까이 와봐, 선크림 발라줄게.”

손잡는 자세, 바라보는 눈길만 봐도 안다. 다정함의 감촉이 다르다. 진짜 부부는 저렇게 끈적끈적 쓰담쓰담 붙어있지 않는다. 진짜 부부가 살포시 맞잡은 손에서는 오월의 햇살 같은 따스함과 은근한 애틋함이 느껴진다. 가짜 부부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에는 야릇하고 비릿한 땀 냄새 같은 것이 스멀스멀 풍긴다. 아무리 금슬 좋은 부부인 척 꾸며봐야 소용없다. 육체적인 거리가 가깝다고 부부가 아니다. 이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숙련된 커플 감별사 선영이 적잖은 세월을 통해 터득한 경험적 촉각이다.      

 



선영이 은광동 금바위골 매표소 입구에 편의점을 연지도 이제 4년이 되어간다. 아빠가 만 30년 운영했던 슈퍼를 선영이 편의점으로 바꾼 지 4년 되었다.


선영은 은광동에서 나서 자랐다. 유치원, 초, 중, 고등학교 모두 은광동을 벗어나 본 적 없다. 은광동이라면 선영은 다 안다. 간판 한 귀퉁이에 Since1987이라고 적혀 있는 목마제과점이 생겨나던 날 하늘에 펄럭이던 만국기를 기억하고, 지금은 푸르지오 아파트 상가가 되어버린 그 자리에 예전에 무엇이 있었는지 유구한 역사를 알고, 지금은 아파트 있는 자리에 구불구불 가파른 언덕 타고 올라가던 골목길도 다시 지도를 그려보라면 그릴 수 있을 정도다. 은광중학교 아이들이 땡땡이칠 때 빠져나오던 개구멍의 개폐 역사는 물론, 날라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담배 피우던, 지금은 체육시설이 들어선 등산로 입구 으슥한 공터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은광동이라면 선영은 그야말로 속속들이 빠짐없이 안다. 천체관측소 옆 골목 끝에 있는 파란색 대문집 2층에는 누가 살고 있는지 알고, 은광초등학교에서 은광시장 가는 길에 있는 광천목욕탕집 둘째 아들이랑은 유치원 때부터 친구고, 그 녀석이 언제 누구랑 총각 딱지 뗐는지도 안다. 골목 입구에 있는 세탁소집 큰딸이랑 아직도 만나는 건 아니겠지? 쉿.


결혼하며 선영은 은광동을 떠났다. 잘 있거라, 지긋지긋한 은광동. 결혼 전까지 선영은 닷새 이상 은광동을 떠나 본 적이 없었다. 아니, 굳이 들춰보니 한 번 있었네. 고등학교 때 남자친구랑 가출해서 동거하다 아빠한테 머리채 잡혀 끌려온 적 있다. 영등포 달방에서 열흘 정도 보냈다. 생각해보니 그때 그 자식,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이름도 가물가물하다. 아무튼 사랑이 밥 먹여 주지는 않더군. 지지리도 배고픈 가출이었지. 쉿.     



    

은광동 금바위골이 처음부터 이름난 등산로였던 것은 아니다. 금호산에 정말 관심이 지대한 사람이 아닌 이상, 금바위를 금호산 등반 시작 지점으로 찾는 사람은 예전엔 그리 많지 않았다. 선영이 자랄 때는 등산로 입구에 표지판조차 제대로 갖춰있지 않았다. 주말에 한두 명 띄엄띄엄, 등산로 입구를 못 찾아 은광동 산동네를 간첩처럼 두리번거리고 있으면 오지랖 넓은 주민들이 목소리에 힘을 주고 “언덕 끝 공터에서 왼쪽으로 꺾어 들어가시면 돼요”, 가르쳐 주곤 했다. 버스 종점이 연장되고, 큼지막한 표지판과 등산 안내도가 세워지고, 국립공원 간이매표소가 생기고, 인근에 지하철역까지 들어서며 금바위골은 도심에서 가까운 신흥 등산코스로 각광받게 되었다.


시원한 계곡이 있는 것도 아니고, 딱히 개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평범한 금바위골을 등산객들이 즐겨 찾는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무엇보다 봉우리에 빨리 닿을 수 있기 때문. 은광동 산동네 끝자락에서 금바위 꼭대기까지 오르는데 채 1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거기서 북쪽 능선을 택하면 너댓 시간 만에 금호산 천왕봉에 닿고, 그냥 서쪽으로 내려가는 길을 택하면 대신동 카페촌에 곧장 도착한다. 은광동-금바위-대신동 코스는 등산 초보자가 기어가듯 쉬엄쉬엄 걷는대도 3시간 정도. ‘산’은 핑계고 다른 무엇(?)을 챙기기에 좋은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  


대신동에는 금호산 국립공원 정식 매표소가 설치되어 있다. 원래부터 은광동보다는 부촌이었던 그곳은 등산코스로 더욱 이름이 알려져 분위기 좋은 카페와 토속음식점, 막걸리집, 화려한 모텔로 가득한 동네가 되었다. 등산로 끝자락마다 카페, 식당, 술집이 문을 여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불끈불끈 모텔이 생겨나는 이유는 대체 뭘까? 산에 오르는 ‘부부’들이여, 대답해보시라.


대신동만큼은 아니지만 은광동에도 모텔이 몇 개 있다. 백악관, LUV, 발렌시아, 국일장. 역시 등산객들이 주요한 고객이다. 마르크스가 그랬던가, 역사는 나선형으로 발전한다고. 예전에는 주민들이 땀을 뻘뻘 흘리고 숨 고르며 톺아 오르던 은광동 언덕길이 지금은 다른 이유로 남녀가 함께 땀 흘리고 숨이 가쁜 장소로 ‘상승 발전’ 하였다.  


선영의 편의점은 새하얀 백악관 건너편에 있다. 아빠가 30년간 슈퍼를 운영하던 그 자리에 그대로.


딱 10년 만에 선영은 은광동으로 돌아왔다. 집안의 점령군이자 독재자, 진시황제였던 아버지가 대를 잇지 못하고 갑자기 돌아가시자 무남독녀 선영이 슈퍼를 맡게 되었다. 그 무시무시하던 분이 그렇게 허망하게 돌아가실 줄 누군들 상상이나 했을까. 아버지 돌아가시고 엄마는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되셨고, 때마침(!) 혼자된 선영을 불렀다.


“야, 나는 이제 놀면서 살란다. 네가 점빵 좀 봐라.”


‘놀겠다’는 건 엄마의 핑계고, 이혼하고 딱히 정처 없는 딸에게 그게 제격이라 생각했나 보다. 밤중에 트렁크 하나 달랑 들고 선영은 나고 자란 은광동에 연어처럼 돌아왔다. 굳이 설명하면 더욱 이상하게 느껴지거늘, 엄마는 동네 아줌마들에게 “사위가 유럽 지사로 발령이 났다”고 말하고 다니는가 보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굳이 이혼을 숨긴단 말인가.


그 ×자식, 출세하려면 줄을 잘 서야 한다고, 등산 마니아 상무님 따라 주말마다 산에 간다기에 도시락 싸주고, 힘내라고 보양식까지 때때로 챙겨줬건만, 주말마다 거래처 직원 미스 김이랑 열심히 땀 흘리고 있었다. 그래서 선영은 등산로 커플이라면 지긋지긋 믿지 않는다. 이혼 도장 꾹 찍고, 아파트 팔아 처분한 것 종잣돈 삼아 장사라도 해볼까 궁리하던 참에, 엄마의 꼬드김을 못 이기는 척, 은광동으로 향했다.   


막상 슈퍼를 맡고 보니 그 옛날 의기양양했던 선영슈퍼가 오늘은 어찌나 초라하게 느껴지던지. 근육이 우람했던 아빠의 가슴과 어깨가 돌아가시기 직전에는 깡말라 애처로웠던 그 모습이 떠올랐다. 선영슈퍼는 간판마저 30년 전 그대로, 아크릴이 떨어져 ‘서여슈ㅍ’가 된 이탈의 흔적에 아빠가 페인트로 ㄴ, ㅇ, ㅓ를 그려놓아 간신히 ‘선영슈퍼’임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이혼으로 별안간 생긴 밑천을 쏟아부어, Since1986, 선영이 여덟 살 되던 해 생긴 선영슈퍼는 30년 만에 ‘미니스톱 바위점’으로 다시 태어났다. 마르크스가 그러지 않았던가, 역사는 나선형으로 발전한다고. 정, 반, 합.


(다음화에 계속)



― 〈편의점 이야기×에세이〉는 매주 화요일, 금요일 브런치를 통해 연재합니다.

―  그림은 대학 새내기인 딸이 그렸습니다. 글과 그림의 저작권을 존중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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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  프롤로그 : 딱 편의점만 한 이야기

■  패니잼 고 씨 _ 1화

■  패니잼 고 씨 _ 2화

■  패니잼 고 씨 _ 3화

새우탕에 소고기가 들어가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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