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영이 놓고 간 휴대폰이 요란하게 벨 소리를 울릴 때, 액정에 떠오른 발신자 이름도 ‘쭌♡♡♡’이었다. ‘쭌’에게 몇 번이나 그렇게 전화가 계속 왔다. 하트가 세 개나 그려진 쭌.
‘이년도 참 복잡하게 사는구나…….’
전화를 받아볼까 하다가, 혹시라도 일이 커질까 봐, 지저분한 치정 관계에 기막힌 에피소드를 만들고 싶지 않아 그냥 내버려 뒀다.
“나 고등학교 2학년만 다니고 자퇴했어. 아니 뭐 퇴학당한 거나 마찬가지지. 아들은 열아홉, 고3 때 낳았고.” 그렇게 말하는 이선영의 표정에는 한 점 어둠이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저렇게 해맑게 웃으면서 말할 수 있나 싶을 정도였다.
“그랬구나…….” 삼선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망설이다 물었다. “남편은?”
“남편? 머―언 나라로 가셨지. 선물 하나 남겨두고.”
선물?
그러고는 휴대폰을 다시 꺼내 배경화면을 차지하고 있는 청년의 사진을 흔들어 보여주었다. ‘쭌♡♡♡’이라는 이름의 전화가 걸려올 때 떠오르던 그 사진이다. 요즘 애들은 다들 어쩌면 그렇게 미남 미녀들인지……. 아이돌 그룹 멤버 사진이라고 말해도 믿을 법한, 하얀 피부에 갈색톤으로 염색한 곱슬머리가 눈부실 정도로 어울리는 미남형 얼굴이다.
“남편이 남기고 간 선물. 헤헤헤.” 아들 사진만 보아도 그렇게나 좋은지, 이선영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가득하다.
남편은 왜 그렇게 됐냐고 묻지도 않았는데 선영은 살아온 날들을 주절주절 이야기한다. 중3 때 그렇게 전학을 가서, 딱 몇 개월 다니고 졸업해 고등학교에 입학하니 전혀 친구가 없더란다. (어차피 서울에서도 이선영은 친구가 그리 없었지만.) 그래서 고등학교에서는 좀 ‘센’ 척을 해봤는데 요행 그것이 먹혀들어, 강원도 작은 여고에서 이선영은 은광여중 다닐 적 삼선영과 비슷한 위치가 되어 있었다. ‘쭌이 아빠’도 그 시절 만났고, 가출하고 덜컥 임신까지 했다. 친구들은 수능 디데이 앞두고 막바지 공부에 땀 흘릴 때 선영은 홀로 산부인과에서 쭌♡♡♡을 낳았다.
“울 아버지 군인이셨잖아. 어렸을 때 내 기억은 해년마다 이사 다닌 기억밖에 안 나. 친구도 사귈만하면 헤어지고, 사귈만하면 헤어지고…….”
“아, 군인이셨구나.” 전혀 몰랐던 이야기다. 하긴 알 수가 없었지.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두 관심 없던, 존재감 희박한 이선영, 중간 선영이었으니까.
“엄격한 아빠 밑에 제대로 숨도 못 쉬고 살았는데, 그래서 한번 삐뚤어지니 더 막무가내 행동했던 것 같아. 가출도 하고, 임신도 하고…….” 심상찮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보며 이선영이 말을 잇는다. “쭌이 태어나고, 그야말로 버린 자식 되었지만 지하 단칸방에서 셋이서 그래도 행복하게 살았어. 딱 1년 동안의 행복. 쭌이 아빠, 오토바이 타고 음식 배달하다가 차에 치어 죽었어. 무면허에, 음주에, 가해자도 그 자리에서 죽고, 보상도 제대로 못 받았지.”
너도 참 기구한 인생을 살았구나, 삼선영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쭌이 3학년 때, 엄마랑 아빠가 찾아와서 대뜸 ‘애가 네 아들이냐?’하고 묻더라. 나 수원에서 미용실 하고 있을 때였어. 그때부터 모든 것이 정상으로 되돌아왔지. 지금은 우리 손주, 우리 손주 하면서 끔찍이도 아끼셔.”
또 쭌♡♡♡ 사진을 보여준다. 헤헤헤―. 이선영의 웃음에 살짝 눈물이 배어있다. 눈망울이 사진 속 아들과 똑같다. 동생이나 남자 친구라고 불러도 믿을 법한 아들.
“야, 담배 있니? 담배 한 갑 주라. 이따 여기 맥줏값이랑 같이 계산하자.”
“너 담배 피워?” 삼선영이 놀라 물었다. 이선영은 또 한 번 헤헤헤, 고개를 끄덕였다. “엣지 1미리.”
헤헤헤-. 이년의 웃음에는 약간 바보 같아 보이면서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무엇이 있다고 삼선영은 생각했다. 애가 중학교 때도 이렇게 이뻤던가? 요망한 것.
이선영이 담배에 불을 붙이려 하자 삼선영이 말했다. “나도 하나 줘봐.”
“어? 너 엣지 피워?” 이선영이 묻는다.
“아니, 담배 끊은 지 몇 년 됐는데, 답답한 일 있을 때나 엄청 좋은 일 있을 때나 하나씩 피워. 오늘은 뭐, 후자라고 해두자.”
선영이 선영에게 불을 붙여주며 말했다. “너 디스 피우지 않았니?”
삼선영은 놀랐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잠깐 의자를 뒤로 밀다가 하마터면 벌러덩 넘어질 뻔했다.
훗. 선영이 웃는다. “네가 나한테 담배 심부름시킨 것도 기억 안 나?”
삼선영은 테이블 쪽으로 의자를 고쳐 앉으며 눈을 커다랗게 떴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낼 듯, 이젠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온통 까맣다.
“기억 안 나? 너 나한테 담배 심부름 여러 번 시켰는데……. 여러 번 때리고 맞았고…….”
기억에 없다. 편의점 간판 아래 펄럭이는 “소프트 아이스크림 50% 할인” ― 플래카드 끝자락을 한참 무심히 바라본다. 하긴 내가 누굴 때렸더라도, 담배 심부름을 시켰더라도, 하나도 이상할 게 없지. 이럴 때 손님이라도 와주면 이 축축한 어색함을 슬쩍 회피할 수 있으련만, 오늘따라 지지리 손님이 없다. 지나는 등산객도 없고, 선영을 만나고 파라솔에 앉아 지금껏 한 시간이 넘도록 담배 손님 몇 명만 다녀갔다.
“다 지나간 일인데 뭘…….”
이 말을 어떤 선영이 했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동시에 했을 수도. 둘은 각자의 허공을 응시하며 맥주를 홀짝였다.
말이 좋아 그때는 날라리, 문제아 정도로 불렸지, 말하자면 선영은 지금으로 따지면 일진이나 학폭으로 불릴 그런 부류 학생이었다. 많이 때리고, 많이 뺏고, 많이 귀찮게 했다. 누굴 때리고, 누구에게 빼앗고, 누굴 귀찮게 했는지도 일일이 기억나지 않는다. 죄책감 같은 것은 털끝만치도 느끼지 않고 했던 행동들이니까. 최근에 어떤 연예인들이 일진이나 학폭 경력 때문에 일순간에 모든 것을 잃는 걸 보면서 사실 선영도 약간 뜨악하긴 했다. 이 시대에 태어나지 않아 차라리 다행이다, 이런 엉뚱한 자기 위안마저 가졌더랬다.
“어쨌든 미안해…….” 다시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켜고는 삼선영이 말했다. “그나저나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너도 참…….”
이선영이 배시시 웃는다.
뚜둑, 빗방울이 듣기 시작한다.
“앗, 비온다.”
둘은 테이블과 의자를 캐노피 안쪽으로 끌어당긴다.
“괜찮아, 웬만한 비 아니면 이쪽까지는 안 들어와.”
하지만 오 분도 지나지 않아 둘은 편의점 안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와, 비 장난 아니네!”
“시간도 늦었고, 이제 나 가봐야겠다.”
신용카드를 내밀자 삼선영이 손사래를 치며 이선영을 밀어낸다.
“됐어. 오랜만에 친구 만나서 이 정도쯤이야.”
‘친구’라는 말에 이선영은 야릇한 생각이 든다. 중학교 때 우리 사이에 그런 친밀한 감정이 있었던가?
잊지 말라며 삼선영은 이선영의 등산배낭 옆 주머니에 담배를 넣어준다. 휴대폰도 잊지 말라고 단단히 손에 쥐어준다. “이거 두고 갔다가 또 다시 와라”하면서 농담을 건넨다.
“근데, 아들한테 그렇게 전화 오는데, 산에 같이 갔던 그 사람……, 그 사람한테 휴대폰 빌려 전화해주지 그랬어.” 삼선영이 문득 떠올랐다는 듯 묻는다.
“아…….” 늘 배시시 웃던 이선영이 이번엔 입을 가리고 깔깔깔 크게 웃는다. “우리 쭌이가 알면 안 되는 번호라서…….”
무슨 말이야? 라는 삼선영의 표정을 읽은 듯 이선영이 말한다.
“아까 그 남자, 우리 쭌이 회사 지점장님이야.”
“지점장?”
“쭌이, 군대 제대하고 택배일 해. 아까 그분은 쭌이 일하는 영업소 지점장인데 우리 필라테스 손님이기도 하지. 아직은 우리 따로 만나는 거 알면 안 돼.”
“필라…… 테스?”
“그러고 보니 그것도 말 안 했네. 나 지금 필라테스 해. 미용 일하면서 워낙 몸이 망가져서 교정하려고 시작했던 건데, 어쩌다 필라테스 원장이 되어 버렸네.”
딩동― 출입문이 열리면서 쏴아― 시원한 빗소리와 함께 빗방울이 들이친다. 검정 장우산을 든 남자가 한껏 빗물을 껴안는 우산을 털어내며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아참 내 정신 좀 봐.” 선영이 급히 창고에 들어가 우산꽂이를 갖고 나온다. 남자가 거기에 우산을 넣으며 선영에게 말한다.
“담배 하나 주세요. 말보로 아이스블라스트.”
남자는 컵라면과 과자 몇 봉지도 얼른 골라 카운터 위에 올려놓는다. 카운터 안에 있는 선영이 계산을 치르는 동안 카운터 밖에 있는 선영은 창밖 빗줄기를 바라봤다. 오랜만에 참 시원하게 내리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손님이 나가고, 동시에 또 다른 남자가 들어온다.
“와, 비 한번 시원―하네요.” 남자는 출입문 밖을 향해 우산을 털어내며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말한다.
“하루종일 올까말까 하더니” 하면서 삼선영이 말을 받는다. “아, 우리 야간 알바야.” 선영이 선영에게 말한다. 그렇구나, 하는 표정으로 선영이 선영을 바라본다. 스무 살쯤 되었을까, 아직 얼굴에 여드름 자국이 있는 아르바이트생이 첨벙첨벙 젖은 운동화 소리를 내며 카운터 안으로 들어간다.
“벌써 군대 제대한 아들도 있겠다, 너는 이제 부러울 게 없겠다.” 삼선영이 부러운 눈빛으로 이선영을 바라본다. 이선영은 또 배시시 웃는다.
“그러게. 빨리 낳고, 빨리 키우고, 빨리 자유롭고……. 이렇게나 좋네.”
‘좋네’를 조금 누그러진 어조로 말하던 이선영이 갑자기 목소리 톤을 높인다. “야, 그건 그렇고 너도 필라테스 좀 해. 너 중학교 때 한 몸매 했잖아.” 이선영이 힐난하는 눈빛으로 카운터 안에 있는 삼선영을 위아래로 훑는다. 불의를 습격을 받은 삼선영은 ‘내가?’ 하는 눈빛으로 잠시 생각하다 말한다.
“하긴 내가 몸매 하나로는 알아줬지.” 그러면서 이선영처럼 깔깔 웃는다.
근무교대를 위해 금전출납기 앞에서 동전을 세던 알바생도 대화를 듣고 슬며시 따라 웃는다.
“우산 없지? 이거 들고 가.” 선영이 우산을 내민다. “그리고 그 남자…… 생수도 2+1으로 고르고, 포인트 적립이랑 현금영수증까지 착실하게 챙기고……, 괜찮아 보이더라.”
“잘해봐!”하면서 선영은 이선영의 손에 억지로 우산을 쥐어줬다.
너는 어떻게 살았니? 남편은 뭐해? 애는 몇 살이야? 편의점은 왜 하게 됐어? 아빠는 언제 그렇게 돌아가셨어? 엄마는?
이선영은 삼선영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다. 다음 기회에.
금바위 등산로로 올라갔다가 거기로 다시 내려왔으면 두 시간이면 됐을 텐데, 너는 왜 네 시간이나 걸렸니? 어디 다른 데 들렀다 온 거야? 그 ‘오빠’라는 사람은, 아니 아들 회사 지점장님은 산에서 내려와 어디로 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