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언제나 영화를 뛰어넘는다.
작년 초쯤에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가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단적으로 말해서 나 역시 재밌게는 봤다. 학교폭력 기억을 건드리는 부분이 있어서 힘들게 보았지만.
피해자인 문동은의 여정이 궁금해서 끝까지 따라가서 보았다. 교실 카르텔의 최하위로 떨어진 문동은은 역시 주변을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담임선생님도 그녀에게 폭력을 행사했으며, 아이들은 방관자에 불과했다.
그에 대해 격하게 공감하면서 볼 수 있었다. 나 역시 학교폭력을 당하던 적부터 시작해서 그로부터 해방되고 나서도 인간성을 어느 정도 버려야만 트라우마로부터 버틸 수 있었으니까.
고데기로 살을 태우며 고문하는 씬을 볼 때마다 끔찍했지만, 어떻게든 다 보려고 용을 썼다. 성인이 됐음에도 폭력의 상흔은 그녀의 몸에 새겨져 있었다. 학교폭력 생존자들은 어른이 되고 나서도 열심히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시리즈가 완결이 날 때까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어쩌면 냉소적으로 변해야만 그 시절을 버틸 수 있었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문동은의 복수심에 감화됐다기보다는 본업이 본업이다 보니 김은숙 작가가 주는 대사의 울림이나 그 표현력을 보고 굉장히 감명받았다. 미장센을 하나씩 분석하면서 흡수하려고 노력했다. 그걸 보면서 학교 폭력이 주었던 상처보다는 대사에 담긴 깊이를 재면서 보았다.
"우리 봄이 되면, 죽자."
그 말은 목숨을 버리기로 마음먹었던 문동은을 구했던 어른이 건넸던 한 마디였다. 마지막으로 모든 복수를 이루고 나서 죽음을 망설이던 그녀를 다시 한번 삶으로 이끈 것은 그녀에게 선의를 베풀었던 사람들이었다. 결말에 관해선 해석의 여지가 갈리지만, 확실한 건 학교폭력 생존자였던 그녀의 삶은 계속된다는 것이었다. 복수의 통쾌함이나 그런 것보다 이런 결말이 마음에 들었다.
대학생 때 상담을 진행하면서 가해자의 복수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5평 남짓한 좁은 방에서 상담을 진행하면서 하루는 상담사가 나에게 물었다.
"그들에게 복수하고 싶나요?"
"네. 복수하고 싶어요."
그들에게 복수하고 싶다는 대답에 상담사는 굉장히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복수심을 사그라뜨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에 나는 그들이 없어져야 한다고 대답했다. 그래야만 이 분노가 가라앉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말이 4년이지, 후유증까지 포함하면 나는 청춘을 통째로 빼앗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복수심을 없애려면 당연히 그들이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상담은 그대로 뾰족한 수가 없이 종료가 되었다.
지금도 그들이 사라져야만 해방될 수 있냐면, 대답이 다르다.
나의 삶은 계속될 것이고 그들이 사라져도 그 기억은 영원히 내가 품고 가야 할 것이니까. 계절이 수십 번 바뀌어도 그건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최대의 복수는 내가 숨을 쉬고 살아가는 것이고, 에세이에 폭력이 주었던 기억을 낱낱이 기록하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학교폭력 생존자였다면 나는 꼭 이 말을 건네고 싶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복수심은 당신을 망가뜨리지 않는다.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지만, 언젠가 괜찮아질 날은 반드시 온다.
출처 : pixabay, narumil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