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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소원 Oct 12. 2024

커터칼을 들일 용기가 생겼다

학교폭력 피해자라는 말이 있지만 생존자라고 썼던 이유


괜찮다고 느끼는 지금도 학교폭력을 당하던 시절로 종종 되돌아가는 꿈을 꾼다. 꿈 속에서 나는 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된 무기력한 어린아이가 아니라, 정신은 어른인 채로 어린아이의 몸으로 회귀하는 걸 꿈꾼다. 


수 번의 상담치료를 받고, 믿을 수 있는 의사를 만난 지 몇 년이 됐으며 맞는 약을 먹고 있는 지금도 그날로 되돌아가는 꿈을 꾼다. 이미 익숙한 일이므로 의아함을 품지는 않는다.


그곳에서 나는 다른 아이들과 다를 바 없이 평온한 나날을 보낸다. 가방이나 책상 밑으로 쓰레기가 넣어지거나 저급한 성희롱을 당하거나, 폭력에 노출되지 않는다. 이상한 조짐을 느끼게 되면, 더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으르렁거린다. 그 목소리는 나 자신도 깜짝 놀랄 만큼 울림있다.  


꿈 속에서 과거를 재상영할 때마다, 그 목소리는 나오는 일이 없었다. 성대가 울리지 않으니 말할 수 있을리가 없다. 그 목소리는 마른 입천장에 혓바닥을 맴돈다. 그때마다 깊이를 가늠할 수도 없을 정도로 늪 같은 절망감이 나를 에워싸는 걸 상상한다.




처음으로 목숨을 끊는 일이 미수로 돌아가고 나서, 나는 참을 수 없는 일이 터질 때마다 나는 스스로를 해쳤다. 그 일은 분노를 일으키기도 했으며, 슬픔이나 좌절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물이 끓어 넘치기 시작하는 냄비처럼 도저히 나 자신을 참을 수가 없어서 행한 짓이었다.


도구는 그때마다 달랐다. 그것은 예리하고 날카로운 커터칼일때도 있었다. 나중에는 그 모든 행위를 일절 끊으려고 방에 있는 모든 날카로운 물건을 치웠더니 볼펜이나 콘센트 코드로 어떻게든 피부에 흉을 내려고 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마지막으로 시도한 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내 손목에 가장 깊게 흉이 남은 건 콘센트 코드로 남긴 것이다. 


흉을 가리려고 타투를 할까 생각도 해봤지만, 그건 불발됐다.

하고 싶은 마음도 딱히 없었고, 흉을 가려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청춘을 그대로 학교폭력에 노출되면서 피해자보다는 생존자라고 표현하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학교라는 기형적인 건물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로 인해 얼마나 많은 내 또래들이 죽어나갔던가. 만약에 폭력에 노출되지 않고 평화로운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상을 받을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처럼 당한 경우에는 무사히 어른이 되고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칭찬해주고 싶다. 


학교폭력에 노출됐을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도 없는 집에서 숨죽이며 울면서 통곡하는 것 밖에 할 수가 없었다. 


어째서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걸까.

왜 하필 나일까.

전학을 가더라도 소문이 뒤따라오지 않을까.

피해자인 내가 어째서 도칠 궁리만 해야할까.


폭력에 노출되어야 했던 '답'을 반생동안 찾아다녔다.

하지만 이유같은 건 없었다. 그저 아이들은 장난감이 필요했을 뿐이었을 테니. 





복수를 하기 위해서 기록을 한다고 앞서 밝혔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서고 나서 떠올리는 것조차 너무 고통스러운 기억이라 상담을 한 시간 진행하고 나면 한동안 진이 빠지곤 했다. 이 기록 역시 그렇다. 과거에 묻어뒀던 기억들을 파헤쳐야 하는 일이다보니 쓰고 나면 한동안 힘들었다. 고통스러운 과거는 군데군데 지워져 있고, 학교 폭력의 후유증은 길었다. 


살아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삶에 의미를 붙이는 건,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 한 줄기에도 이유를 붙이는 거나 다름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날. 죽었더라면 나는 꿈을 이루고 그들에게 복수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처럼 통째로 청춘을 폭력에 노출된 다른 이들 또한 트라우마와 싸우고 있겠지. 

그들에게 내 얘기가 조금이라도 위안이 됐다면 더 바랄 것이 없으리라.




지난 주말에 다이소에 가서 택배 박스를 뜯는 커터칼을 내 방으로 들였다. 마지막으로 자해를 시도하고 난 지 4년이 흐르니까 택배를 뜯을 때마다 거실로 나가 녹이 다 슨 공업용 커터칼로 테이프를 뜯는 게 귀찮아졌다. 새로 산 그 커터칼은 사이즈가 아기자기하고 파스텔톤이다. 지금, 택배박스를 뜯는 일에 유용하게 쓰고 있다. 이 편리한 걸 이제야 살 용기가 생겼을 줄 몰랐다. 


살아있단 걸 후회할 날이 다시 올지도 모른다. 

또 연약한 피부를 내리긋는 일을 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처가 지나가고 새살이 돋아나듯 이 상처 또한 언젠가 지나가리란 생각을 가지게 된 걸로 족하다.



사진 출처 : pixabay, Coule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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