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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a Sep 18. 2022

죽고 싶지 않은데 자해는 왜 할까

비자살성 자해 이야기

자해는 불량식품과 같다.


자해는 불량식품과 같다. 몸에는 해롭지만 당장의 배고픔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 불량식품이다. 청소년기 때부터 당장 느끼는 불안감, 공포감, 우울감을 자해로 해소하며 그 시간을 버텨왔다.



주된 이유는 ‘죽고 싶음’이 아니었다. 내가 싫어서, 나를 처벌하기 위함이었다. 섭식장애가 있었을 때 자해도 항상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음식을 한꺼번에 허겁지겁 먹어치운 뒤 다 토해냈고, 이 일련의 행위들에 죄책감을 느꼈다. 이 죄책감은 곧 자기 처벌로 이어졌다. 또 다른 동기는 공포감이었다. 자해를 할 때면 긴장이 풀어지고 나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자해는 도파민과 엔도르핀을 분비시킨다. 이런 호르몬 작용이 더해져, 심리적 불편감이 해소되는 듯한 경험이 쌓였다. 숨을 쉬지 못할 정도의 공포감이 밀려올 때 자해를 했다. 하지만 이 해결방안은 일시적이었고 신체적, 정신적 흉터를 남겼다.    

  

정신적으로 가장 불안정했을 때 자해도 가장 심했고, 치료가 진행되며 차차 빈도와 강도가 줄어들었다. 그렇기에 근본적으로 자해를 멈추는 방안은 ‘내가 낫는 것’이다. 우울증이든, 섭식장애든, 경계선 성격장애든, 약물이나 상담치료를 통해 증상이 완화된다면 자해도 점차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다.    



낫는 것은 꽤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내가 낫는 것’ 이전에 할 수 있는 방법들도 몇 가지 있다. 자해 충동이 들 때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다른 이야기를 하며 기분이 환기되기도 했고, 내가 느끼는 공포감을 설명하며 울기도 했다. 친구에게 전화하기가 어려울 땐, 자살예방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상담사들에게 첫마디를 꺼내는 것이 어려웠고, 내가 왜 전화를 했는지, 지금이 무슨 상황인지 설명해야 하는 것이 어려웠지만 찬찬히 설명하다 보면 충동이 완화될 때도 있었다. 뭉툭한 볼펜으로 신체에 선을 그은 적도 있었다. 전화가 즉각적이지 않을 때 썼던 방법이다. 그리고 딱딱한 콘크리트 벽 대신 베개에 머리를 박았다. 몇 번 고개를 흔들다 보면 충분히 어지러웠기 때문에 나에겐 도움이 된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완벽히 낫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사람이기에 실수할 수 있고, 감정에 휩쓸릴 순간도 있을 것이다. 거의 10개월 만에 다시 충동적으로 자해를 했을 때 너무나 속상했던 기억이 난다. 자해의 이유는 정말 사소한 사건이었다. 동생과 치킨을 먹고 버리다가 조금 다툰 것뿐이었다. 별것도 아닌 일로 또다시 상처를 내다니, 그동안 잘 참고 잘 살아왔는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한 번 잘못되었다고 영원히 낫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치유의 한 단계에 있는 것이고, 빈도가 줄어들어서 더 다행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재발은, 잘못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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