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한 퇴원
약 봉투에는 ‘쾌차하시길 바랍니다’라는 문구가 항상 쓰여있었다.
완쾌라는 것이 있을까? 제대로 된 치료를 받고 퇴원했다면 조금은 달라졌을까?
지루하고 우울한 입원 생활, 나는 낭만으로 도피했다. 사촌이 동물 인형과 색연필을 가져다주었다. 병실에서 대기할 때는 노래를 들으며 그림을 그렸고, 자유 시간에는 햇빛이 비치는 곳에서 글을 쓰곤 했다. 환자복을 입은 채 병원을 쏘다니며 구경을 하기도 했다.
병원에 입원한 지 두 번째 되는 날부터 아무도 모르게 자해를 했다. 7일 정도가 지났을 때 사람들이 수다 떠는 소리가 너무 크게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귀를 틀어막고 울다가 소리를 질렀다. 조용히 해, 라고, 아주 크게, 간호사가 나를 보러 올 정도로. 내 손목을 보고 샤프나 볼펜 등 날카로운 것은 모두 압수해 갔다. 샤프로 자해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날 압수된 것은 내 자유였다.
곧 담당 일반의 선생님과 면담을 했다. 선생님은 내가 폐쇄병동으로 옮겨야 한다고 하셨고 나는 가기 싫어서 선생님을 설득시키다가, 떼를 쓰다가, 협박하다가, 울음을 터뜨렸다. 반 고흐가 스스로 귀를 잘라버린 마음이 이해가 갈 정도로 무너지는 마음이었다.
처음부터 일반병동에 있었기 때문에 상주하는 간병인은 없었다. 부모님도 계시지 않았다. 자해 소동 이후, 병원 측은 간병인이 나에게 필요하다고 했지만 부모님은 나를 퇴원시키셨다. 부모님이 자해하지 않도록 잘 돌보겠다고 한 모양이다.
그렇게 열흘 정도를 병원에서 보냈고, 어쩌다 보니 나는 아직 괜찮지 않은데 퇴원을 했다. 그 상태로 연애를 시작했으니 연애가 잘 될 리 없지. 상대는 입원하는 동안 병원에서 만난 같은 학교 의대생이었다. 연애를 하는 도중에도 자해는 계속되었다. 4달 정도의 연애기간 동안 남자 친구 때문에 많이 울었고, 말과 행동에 상처받았다.
연애 막바지, 충격을 받은 사건 때문에 또 약을 남용했다. 그 바람에 응급실에 갔고 또 입원을 권유받았지만 그때도 부모님의 만류로 입원하지 않았다. 대신 엄마의 감시와 걱정이 있었다.
또다시 약을 남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엄마는 그 자리에서 쓰러지셨다. 할아버지는 시골로 내려와서 내가 좋아하는 동물들도 보고, 농사도 짓고, 밥도 많이 먹자고 하셨다. 온 가족이 나를 걱정했다. 5년 전 일이지만 지금도 아프고 가족과 지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남아있다. 그걸 갚으려면 내가 낫고, 잘 생활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뿐이다.
이렇게 첫 정신과 입원은 불완전한 상태로 막을 내린다. 그리고 몇 년 후 나는 같은 병원의 폐쇄병동에 다시 입원하게 된다. '완치'라는 것이 정말 있는 개념인지 의심스러웠다.
지금은 완전히 낫는 것보다 나선형으로 나아지고 있다고 믿는다. 빙글빙글 제자리걸음처럼 보이지만, 나는 전보다 한 계단 올라왔다. 분명히 마음이 무너지는 날도 있었고 울며 잠드는 날도 앞으로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내가 다시 딛고 일어나는 것을 경험했고, 이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우며 성장하고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