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은 왜 그 많은 여성을 울리는가

82년생 김지영 영화 리뷰

  82년생 김지영은 여성혐오, 성차별, 여성인권 등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간 이야기로, 원작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됐을 때부터 뜨거운 감자였다. 소설이 영화화되면서 다양한 논란과 우려가 따라붙었지만  82년생 김지영은 백만 관객을 돌파했고 현재 예매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젠더 이슈가 확실히 국내의 관심사로 자리 잡고 있다는 증거이자, 김지영에 담긴 메시지가 다수의 공감을 살 수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82년생 김지영에서 내건 슬로건은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몰랐던 당신과 나의 이야기'이다. 영화 포스터에는 배우 두 명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어 마치 대현과 지영이 그 당신과 나인 것처럼 보이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관객과 영화 속 김지영을 말하는 것이라고 유추하는 게 더 타당하다.

  우리는 누구나 갓난아이로 태어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어머니의 손에서 자랐고, 절반의 사람들이 여성으로서 삶을 살아간다. 남성으로 태어났든 여성으로 태어났든 여성의 삶이라는 게 무엇인지 단 하나도 모를 수는 없다. 살면서 단 한 명의 여성을 마주하지 못했을 확률은 극히 희박하니까.

  하지만 그 누구도 여성으로서의 삶이 힘들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좀 더 정확히는 '모르는 척' 한다. 그것은 각 개개인이 나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사회에서 여성의 것을 계속해서 지워왔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남편 대현(공유 역)은 복직을 포기하고 집에서 육아를 하겠다는 지영(정유미 역)을 향해 "그래, 좀 더 쉬어."라고 이야기한다. 지영은 이에 대해 "애 보는 거 쉬는 거 맞아?" 하고 반문한다. 김지영에는 이렇듯 우리가 흔히 쓰는 언어에 반문하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육아와 가사 노동을 '집에서 논다'고 표현하는 경우는 무척 많다. 경제적인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상은 경제적으로 지출이 발생하는 부분을 막아주고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소설에 비해 영화에서는 가족적인 분위기가 가미되면서 원작에서는 보여주지 않은 것들이 늘어났는데, 이 지점에서 발생한 재미있는 요소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대현은 아내를 무척 사랑하고 진심으로 아낌에 틀림없지만 남성 중심적인 모습을 완전히 탈피하지 못한다는 것. 명절날 혼자 일하는 아내의 눈치를 보지만 적극적으로 자신의 어머니를 말리지는 않고, 정신적으로 아픈 상태인 아내를 걱정하면서도 집안일을 하는 아내를 바라보며 혼자 맥주를 마신다.

  지영의 아버지 역시, 딸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님에도 '피하지 못한 사람의 잘못'이라며 위험한 일을 당한 딸을 질책하고, 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

  여성혐오가 단순히 여성들을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걸,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아주 사소한 요소들에서 잘 보여준다.

  여성혐오는 삶 속에서 굉장히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 다시 말해 여성혐오가 아닌 것이 드물기 때문에 - 영화의 118분에 모두 담기가 어려웠을 텐데도 다양한 이야기를 꾹꾹 눌러 담아두었다. 독박육아, 독박가사, 경력단절, 불법촬영(몰래카메라), 남아선호, 노키즈존, 맘충까지. 길지 않은 러닝타임에 다양한 이야기를 넣으면서도 집중이 흐트러지지 않는 방식이 좋았다.

  영화를 보기 전에, 이미 감상한 사람들에게서 펑펑 울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영화를 보러 갔다. 아직도 여성 주연의 영화를 찾아보기가 어려운 영화판에서, 여성들에게 이만큼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영화가 등장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여성에 대해, 여성의 삶에 대해, 더 많고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기를 소망한다. 좀 더 많은 여성들이 스크린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하고 눈물지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