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캅스, 완벽하지 않아서 좋은 이야기

걸캅스 영화 관람 후기

  내 영화 취향은 두 종류로 나뉜다. 영화를 본 뒤에 여운이 짙게 남고, 계속해서 무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거나 아니면 가볍고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 걸캅스는 단연 후자에 속한다. 그래서 좋다.

  개봉 전부터 '걸캅스'는 젠더 이슈와 관련해서 논란이 뜨거웠다. 최초로 라미란이 주연을 맡은 상업 영화이며, 투톱 주인공으로 함께 내세운 배우는 이성경이다. 여성 배우 두 명이 주연을 맡는 것도 드문 일인데, 이 둘의 직업은 무려 형사다. 한 명은 이미 옛날 옛적에 민원실로 자리를 옮긴 지 오래고, 한 명은 강력반에서 짐짝 취급을 받고 있지만.

  두 명의 여성 경찰이 주인공인 영화.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소위 '걸캅스가 손익분기점을 넘기면 불알을 자르겠다'는 선언이 몇 차례 이뤄졌다. 라미란 배우는 논란들에 대해 관심이라고 생각하며 고맙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또한 걸캅스는 현재 순조롭게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

걸캅스 05/15 기준 흥행 성적

    어떤 사람들은 걸캅스가 B급 영화라고 말한다. 그 말에 굳이 부정할 생각이 들진 않는다. 낯간지러운 대사도 몇 번 있고, 독창적이거나 예술적인 스토리도 아니며, 연출이나 플롯이 특별히 뛰어난 것도 아니다. 걸캅스는 한국 영화의 흔한 스토리와 흔한 감성을 그대로 따라가는 영화다. 유일한 차이는 주연 배우의 '성별'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는 그 점이 장점이 된다. 영화 초반부부터 미영(라미란 역)은 정수기 물통을 들고 쩔쩔매는 남경을 아무렇지 않게 도와주며 지나가고, 사회에서 몇 번이고 듣게 되는 여성혐오적인 발언들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불법 촬영이 얼마나 끔찍한 범죄인지에 대해 여러 차례 이야기하지만 가해자들에게는 서사를 부과하지 않는다. 어디를 어떻게 따져보아도 다분히 페미니즘적이지만, 상영 시간 내내 관람관을 가득 메운 것은 웃음이었다.

  젠더 갈등에 지쳐있는 사람도, 페미니즘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도, 나이대가 있는 사람도 부담 없이 영화를 볼 수 있다.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이 영화가 완벽하다고 말할 수 없기에 우리는 걸캅스를 통해 여성 영화라고 해서 완벽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얻는다.

  영화에서 주목할 만한 요소는 바로 '캐미'였다. 결혼과 출산 육아로 인해 경력이 단절된 형사 미영과, 그런 미영의 날리던 시절을 동경해 형사가 된 지혜(이성경 역), 그 옆에서 감초같이 대사를 던지는 장미(수영 역)까지 세 명의 여자들은 완벽한 조합을 자랑했다. "언니, 우리 좆된 거 같음."이라는 대사 하나로 이 영화를 골랐다는 수영의 선택은 탁월했다.

  

  걸캅스는 본래 시리즈를 염두에 두고 제작된 시나리오이기에 흥행 성적에 따라 후속작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하니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스크린을 가득 메우는 여성들의 이야기로 또 한 차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