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화초로 살지는 않을 거야
영화 알라딘이 개봉한 지 시간이 꽤 흘렀다. 바쁜 일정 탓에 조금 늦게 관람했는데, '어제 봤는데 오늘까지 행복하다'는 친구의 관람평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뮤지컬 영화를 무척 좋아한다. 중간에 사람들이 노래하고, 음악과 영상이 맞아 떨어지고, 화려한 화면들이 연출되는 부분들이 사람을 무척 행복하게 만드니까. 알라딘은 그런 점에서 성공적인 뮤지컬 영화였다.
화려하고 즐거운 분위기, 아름답게 펼쳐지는 자연의 풍경과 시원한 바람이 느껴지는 듯한 화면, 전율과 감동을 선사하는 장면들이 노래와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배우들의 연기도 흠잡을 곳 없었다. 지니 역의 윌 스미스를 제외하고는 투 탑의 주인공이 유명한 배우가 아니었음에도(사실 나는 배우에 관심이 없는 편이라 나만 몰랐을 수도 있지만...) 불구하고, 보기에 어색하지 않았다. 특히 자스민을 연기한 나오미 스콧은 보석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가 노래의 첫소절을 부르는 순간 어떻게 저런 음색이 나오는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
지니 역을 맡는다는 말에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했던 윌 스미스는 이 역할 안 맡았으면 억울해서 잠도 못 잤겠다, 싶었다. 장난기 넘치고, 흥이 넘치는 파란색 마법사 지니에 찰떡같이 어울렸다. 표정 하나하나가 리얼하게 느껴지고 웃음을 유발해서 좋았다.
알라딘의 평 중에 가장 많이 들었고, 또 집중해서 본 건 '알라딘에 페미 묻었다'는 부분이었다. 가히 만족스러운 부분이기도 했다. 스토리 상 내가 인상깊게 본 장면 중에 하나가 바로 둘이 양탄자 위에 앉아 아그라바의 백성들을 내려다보는 장면이었다. '천 년 역사에 여자가 술탄이었던 적은 없다'는 이유로 술탄이 되지 못하는 자스민에게 알라딘이 이렇게 말한다. (정확한 대사는 아니다.)
- 당연히 네가 되어야지.
- 정말 그렇게 생각해?
- 내 생각이 중요해?
바로 이 부분이다. '내 생각이 중요해?'라는 부분. 누군가가 삶을 살면서 어떤 가치관을 갖고, 어떤 꿈을 꿀지 그것은 오롯이 그 사람의 몫이다. 하지만 수많은 여성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 몫을 빼앗겨 왔고, 알라딘은 자스민에게 당신의 몫을 빼앗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그 말이 있었기 때문에 자스민은 자파가 술탄의 자리를 탐할 때 당당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자스민은 영민한 사람이라서, 언젠가는 그걸 깨달았겠지만, 살면서 단 한 번도 자신의 몫을 누리지 못했던 사람이 고난 속에서 일어나기란 쉽지 않은 법이니까.
수많은 동화들은 여성혐오적이다. 작가가 나빠서가 아니라, 그건 과거의 것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감안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감독은 그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시대착오적인 부분을 설정 안에서 여성서사를 멋지게 구현해냈고, 덕분에 아그라바는 아마 천 년의 역사 중에서 가장 현명할 술탄을 만나게 되었다.
알라딘의 가장 유명한 OST인 A Whole New World의 장면이 정말 내가 양탄자를 타고 나는 것 같고, 보고 있는데 저절로 웃음이 날 만큼 행복했다면, 자스민의 솔로곡인 Speechless는 마음이 찡한 느낌을 받았다. 더 이상 온실 속 화초로 살 수는 없다고, 침묵하지 않겠다고 노래하는 그 장면이 마음에 울리지 않은 사람은 몇 없을 것이다.
마침내 누군가의 인정을 기다리지 않고 그녀가 목소리를 높인, 침묵하지 않은 그 순간에, 그녀는 분명 술탄이었다.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그 자리에 술탄으로서 존재했으니까.
영화 알라딘의 주인공은 분명 자스민이었다. 물론 동화의 제목도 그렇고, 인지도도 그렇고, 알라딘이라고 제목 붙인 것 자체에는 불만이 없지만 영화를 보고 나오는 모두의 마음 속에는 자스민이 남아 있었으리라. 여성으로서 이런 영화가 더 많이, 좀 더 많이 나오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