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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는 후들, 마음은 부들

배려에 용기를

by 그럴수있지

[로미어머니, 방과 후 안 하는 친구들끼리 키즈카페 갈까 하는데 어떠세요?]

라는 메시지를 확인하고 바로 답장했다.

[너무 좋아요! 건강이 도 데리고 갈게요ㅎㅎ]

비가 온다는 예보 따위는 나에게 일말의 고민도 되지 않았다.

그저 며칠 전, 몇몇 친구들이 하원 후 키카를 다녀왔다고 이야기했던 아이의 즐거워할 얼굴만 떠올라

덩달아 나의 입술도 움찔움찔했다.

그래도 아기를 데려가는 일이니 남편에게 다짐하듯 통보했다.

[다음 주 월요일에 로미랑 건강이 데리고 키즈카페 다녀올 거야,

사람 많으면 그냥 내가 안고 있을 거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드디어 키즈카페를 가는 날,

역시나 아이의 아침인사는 '엄마, 오늘 키즈카페 가는 날이잖아?^^'였다.

누가 보면 처음 가는 줄 알겠다. 뭐 그리 대단한 곳이라고 이렇게 좋아하나 싶다가도

유치원 끝나고 하원 차량이 아닌 엄마가 직접 픽업해서

친구들이랑 같이 우르르 가는 것이 그동안 사뭇 부러웠나 싶다.


비 온다던 오늘은 햇빛만 없지 기온은 30도를 넘는 후덥지근한 게 말을 못 하는 날씨지만

이따 택시를 타야 하니까 오늘은 아기띠를 하자

아기띠를 하고 건강이의 여벌옷, 간식, 기저귀, 로미의 긴바지와 미끄럼방지 양말까지 꾸역꾸역 넣은 가방을 메고 부채 하나 집어 들고 아이를 데리러 간다.

후후 덥지 건강아

세상엔 이런 날씨도 있단다, 얼른 언니 데리러 가자!


아이는 기대감과 행복감, 세상 온갖 귀여운 감정들을 다 담은 눈과 입으로 달려 나와 안기고

지나가는 친구들마다 오늘 키즈카페를 간다고 자랑이다.

함께 가는 멤버 친구들이 다 같이 모여 이동하는 중에도 설렘의 반달눈을 하고는

흥분해서 말을 와다다 쏟아낸다

귀여운 우리 딸, 저렇게 좋을까



6살 정도가 되어 친구들과 함께 오니 서로 이리로 와라 저리로 가자 하며 스스로 잘 노는 모습을 보니

이제 정말 많이 컸구나, 한숨 돌리며 이제 둘째를 좌식 자리에 조심스럽게 내려놓는다

둘째 아이는 키즈카페에 260일에 데뷔하다니.

첫째 아이는 1000일 즈음 데려갔던 거 같은데

역시 둘째는 강하게 자랄 수밖에 없구나

한 시간 만에 아기띠를 내려놓고 아이스 바닐라라테를 시원하게 쭈욱 마시며 허리를 한번 펴주고

건강이에게 이런저런 장난감을 가져다준다.

아니 사람이 이렇게 없을 줄이야, 오늘 눈치 게임 완전 성공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진다.


열심히 이것저것 탐색하는 둘째 아이 옆에서

엄마들과 수다가 시작됐다.

아이들 유치원 이야기, 둘째 이야기 등 내 이야기는 주제가 아니지만

세상에, 남편이 아닌 다른 어른과 대화를 하는 것이 이렇게 즐거운 일이었다니!

그러다 보니 문득 아이들의 까르르 웃음소리가 크게 들린다.

뭐 하고 놀길래 이렇게 즐거운가 봤더니

아이들과 유독 잘 놀아주는 엄마가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아이들 모두를 데리고 놀아주고 있다.

물론 자신의 아이가 즐거워하기에 열심히 놀아주는 것이겠지만

로미의 땀범벅된 얼굴에 다물어지지 않는 입을 보고 있자니

그 엄마에게 미안하고 참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남편 없는 평일에 놀러 가는 것은 나에게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 먼저 약속을 주도하지 않는 나에게

놀러 갈 일이 있으면 로미도 같이 가겠느냐고 물어봐주는 것도 고맙고

오늘 같은 날 엄마가 예전처럼 같이 놀아주지 못하는 여백을 느끼지 않도록 해준 것도 고마웠다.

아마 우리 집에서 도보로 이동이 가능할 정도로 가까운 거리의 키즈카페로 가자고 한 것도 그녀의 배려였을 거다.


다른 사람에게 조금의 수고나 양보를 절대 부탁하지 못하는 성격의 사람이

두 아이를 키우면서 생기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받는 배려라는 것은

어느 땐 고마움을 넘어

그날 하루를 웃으며 보낼 수 있는 마음의 지지가 되기도 한다.

사실 나였어도 그 정도는 웃으며 해줄 수 있는 것이지만

받는 건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 건지

어쩌면 배려를 더 크고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다닌 키즈카페 시간 중 가장 빠르게 지나간 시간이었다.

오랜만에 개운하게 수다를 풀어내고 나오는 길에

둘째는 아기띠에 올리자마자 잠이 들었다.

나름 열심히 놀아서 고단했나 보다 생각하니 귀여워 웃음이 난다.

택시 타고 집에 가는 길 중간에 내려주겠다는 고마운 제안에

괜찮다고, 다음에 우리 키즈카페 또 오자고 너무 좋다며 주책을 떨고는 인사를 하고

아이 손을 잡고 흔들며 집으로 향했다.

날은 참 덥고 비 오듯 땀이 나는 더운 저녁이었지만

우리는 편의점도 들렸다가 낄낄 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아마 그날의 오후 같이 돌아오던 장면을 잊지 못할 것 같다.

네가 행복해서 나도 행복했고 그런 나를 보며 환하게 웃던 나의 아이가 있는 그 순간을.



기분이 한껏 좋은 엄마는 저녁을 먹고 아이가 먹고 싶다는 요아정을 시킨다.

아직 다리가 조금은 후들거리지만

다음엔 오전에 삼계탕이라도 먹고 가면 괜찮을 거야

라고 되뇌며 다음 키즈카페는 어디가 좋을지 알아보는 나도 참 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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