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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 일, 그 시간의 우린

by 그럴수있지

지난 주말, 첫째 아이가 태어난 지 2000일 되는 날이었다.

돌 이후로는 날짜를 항상 체크하지 않았지만

남편의 카카오톡 프로필에 있는 디데이 기능이 한 번씩 눈에 꼭 보인다.

'D+1980'이라는 숫자는 2000에 너무 가까운 숫자이기에 그냥 넘어가기에는 아쉬웠던 것이다.


겸사겸사

바로 2주 뒤 동생의 돌잔치 때의 서운함을 최대한 줄여줄 수 있도록

오늘은 너의 날 = 주인공인 날을 의도적으로 더 만들어줘야 한다.

"오늘은 로미의 날이야, 로미가 주인공인 날이지.

그리고 동생의 생일엔, 동생이 주인공이야

또 로미의 생일엔 로미가 주인공이겠지?^^"

이렇게 약간의 가스라이팅을 하는 선택적 J 엄마의 큰 그림이었다.


아침, 점심 메뉴는 아이가 원하는 메뉴로 대령하고,

티브이가 보고 싶다면 마음껏 보렴

오늘은 이 옷이 입고 싶구나, 조금 화려하지만 원한다면 입어야지

괜히 11개월 아기한테 "오늘은 언니가 주인공인 날이야"라고 말도 해본다.

백화점에서는 정말 가지고 싶었다던 선물을 두 개 한아름 안겨주고

평소에는 절대 안 사주던 솜사탕까지 쥐어 주었다.

물론 솜사탕을 남편과 내 옷에 묻혀도 전혀 혼내지 않는 극강의 인내심까지 발휘했다.

다른 친구들과 저녁도 같이 먹을 수 있도록 놀러 가서

(미리 이야기를 들은) 친구 엄마아빠에게 축하한다는 이야기도 듬뿍 듣고

마지막으로 최애캐릭터인 신데렐라 케이크로 마무리한 하루였다.

불태우는 모든 순간마다 사진을 찍어두었다.

돌잔치 때 혹시나 소외되는 순간이 있을 때마다 보여줘야지





그날 밤, 자기 전 아이는

"엄마, 선물 제가 진짜로 갖고 싶었던 거예요, 고맙습니다"

"엄마, 케이크가 너무 예뻐서 눈을 감을 수가 없어요, 고맙습니다"

"엄마, 오늘 너무 행복했어요, 고맙습니다"

를 연신 이야기하며 표정으로 행복을 그려냈다.

그런 아이를 보며 말해주었다.

"로미야, 2000일 동안 엄마 딸로 태어나서 엄마를 정말 행복하게 해 줘서 고마워,

엄마가 정말 많이 사랑해"

내 딸 아니랄까 봐, 그 말을 듣더니 이내 눈물을 글썽거린다.

그 엄마 아니랄까 봐, 그 말을 하면서 온갖 감정과 생각이 엉켜 목이 멘다.

우리는 서로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는 가장 애틋한 사람이 되어버린 걸까



2000일이라는 시간 동안

아이는 스스로 먹고 움직이고, 말하고, 생각하는 방법을 나에게 배웠다.

나는 아이 덕분에 엄마가 되었고, 진정으로 사랑하는 방법과 다른 깊이의 행복감을 알게 되었다.

아이는 많이 컸고, 나는 많이 깊어졌다.

우리는 서로 많이 안아주었고 함께 놀고먹고 잠들었다.

그리고 이젠 서로 가장 많이 닮은 제일 친한 친구가 되었다.


너무나도 예쁜 말을 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우리 딸이 대견하고

나와 남편이 대견하다.

아이가 20,000일, 30,000일이 되어도

계속 예쁜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우리, 서로를 지키면서 잘 지내자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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