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르겔 Jan 30. 2021

치즈에 대하여

"나 치즈랑 같이 먹으려고"

며칠 전 집에서 아내와 밥을 먹는데 아내가 갑자기 냉장고로 향한다. 내 인생에 가장 먼저 '치즈'로서 인식되었던, 그리고 지금도 가장 먼저 연상되는 그 치즈이다. 마트에서 흔히 파는 샛노란 슬라이스 체다 치즈이다. 아내가 갑자기 치즈를 먹겠다고 하니 나도 갑자기 치즈에 얽힌 일화가 떠올라 떠들기 시작했다. 내 이야기에 관심을 두는 같지는 않았지만 주저리주저리 혼자 이야기를 풀었다.


"너 치즈 좋아해?"

친구 J와는 14살,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알고 지냈다. 어느 지점이 만남의 시작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느샌가는 중학교 시절의 거의 모든 하굣길을 공유했다. 오랜 기간 꾸준히 연락을 하는 친구 중 독보적으로 유치하게 물고 뜯은 적이 많은 사이이긴 했지만, 그 이상으로 나눌 수 있는게 많은 사이었지 않나 싶다. 아무튼 그 친구는 나와 알게 된지 얼마 뒤에 치즈를 좋아하냐고 물어봤다. 


"난 꼬릿꼬릿한 발냄새가 나는 것 같은 그런 치즈향이 좋더라?"

내 세계에 치즈는 두 종류였다. 하나는 아내가 먹은 샛노란 슬라이스 체다 치즈. 그리고 두 번째는 피자에 올라간 하얀 모짜렐라 치즈. 둘 다 J가 설명한 치즈는 아닌 것 같았지만 무의식적으로 공감을 표했던 것 같다. 지금도 치즈에 대하여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나는 꼬릿꼬릿한 발냄새에 가까운 향을 지닌 치즈에는 큰 흥미가 없다. J의 취향이 지금도 그대로인지는 모르겠다. 사실 그 뒤로 J와 치즈에 대하여 이야기를 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다.


"나는 치즈 하나를 보면서도 네 생각을 해"

다음날엔가 J에게 전화를 걸어 약간 거들먹 거림을 섞어 반가움을 표했다. 치즈에서조차도 너와의 추억 하나를 건져낼 수 있다고 말했다. J는 치즈에 대하여 이야기했던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다. 다만 그런 일이 있었냐며 신기하고 재밌다는 웃음을 전해주었다. 그래서인지 치즈에 대하여 우리가 이야기 나눈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대수롭지 않았다.


우연히 치즈에 대하여 짧은 추억 한 편을 발견했다. 이렇듯 치즈처럼 평범한 일상 속 사물과의 조우에서도 아끼는 이와의 추억을 발견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언제 어디에서라도 아름다웠던 순간을 마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오늘도 언제 어디서 아름다웠던 추억을 마주할지 모른다는 기대로 하루를 시작해보면 어떨까 싶다.

작가의 이전글 둘의 겨울, 영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