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페트라 Apr 03. 2024

정신과를 다닌 지 5개월 됐습니다.

안정감에 대하여


"이제 안정돼가고 있는 것 같아요."



2주에 한 번씩 의사 선생님을 만납니다. 어김없이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냐라는 말에, 질문을 듣자마자 생각나는 것들을 말합니다. 그렇게 속 얘기를 하다 보면 제 안의 사슬이 하나씩 끊기는 것 같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조용히 들으시다가 2주 전에 검사한 문항들에서 애매한 것들이나, 감정이 폭발한 문항들을 다시 물어보십니다. 정신과를 다닌 지 벌써 5개월이나 됐네요. 오늘은 안정감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안정감의 사전적 의미는 '바뀌어 달라지지 아니하고 일정한 상태를 유지한 느낌'입니다. 사람들은 관계 속에서, 일상 속에서, 직장에서, 연인과 가족에게서 안정감을 찾습니다. 결국 사람을 통해 안정감을 유지하려고 부단히 노력하지요. 저는 모험심이 강하다고 해야 할지, 무모한지는 모르겠지만, 안정감에서 지루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일부러 불안함을 끌어내기 위해 상황을 만들어낼 때도 있지요. 긴장된 말초 신경을 느껴야만 살아있음을 느끼는 일종의 마약과 같은 감정입니다.


그래서인지 제가 만들어낸 일련의 상황들이 쌓이고 쌓여, 제게 큰 절망감으로 다가온 것 같습니다. 이제야 이 안정감의 소중함을 깨달아 제 안의 '중도(中道)'를 찾아내고 있습니다. 평소의 제 감정 기복이나, 성정이나 성향, 그리고 취미까지 매우 극단적입니다. 모 아니면 도라고 하지요. 그게 제 성격을 잘 나타내는 대표적인 메시지입니다.




사람들에게서, 그리고 가족에게서 "너는 너무 극단적이야. 중간을 찾아야 돼."라는 말을 굉장히 자주 들었는데요. 예전에는 이 말이 칭찬처럼 들렸습니다. 하지만 지금 다시 들으면 문제의 심각성을 느낍니다. 극단적인 제 성격 탓에, 늘 스릴을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 같은 제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벼랑 끝에서 외줄 타기 하는 소리꾼 같은 인상을 주나 봅니다. 매우 위험하고, 불안정하고, 언제 추락할지 몰라 손에 땀이 나게 만드는 위험한 사람이라고 인식하게 만든다는 걸 느꼈습니다.


만으로 30대가 되고 나서,  절망을  차례 겪어보니 사람이 안정감이 있어야 늪에서 빠져나올  있다는  절실히 느꼈습니다. 그래서 요새 저는  자아의 중간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의사 선생님도 이번 저를 보시고 조금 안심한 듯한 눈빛을 하고 계시더군요.  상태가 매우 불안했나 봅니다.




지난달에 검사한 문항지를 쓱 훑어보시고는 "2주 전의 감정 상태는 정말 요동치는 것들이 많았네요. 요새는 좀 어떤가요?"라고 물어보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오빠의 죽음을 받아들여서 안정돼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오빠가 이 세상에 없다는 걸 완벽하게 받아들였어요. 그리고 술을 끊으려고요. 술을 마시면 마실수록 우울한 감정이 폭발해서 사고를 쳐요. 이제 더 이상 사고 치면 안 될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술을 마실 때마다 터져 나오는 우울함과 분노 때문에 제 정신과 육체가 많이 망가졌습니다. 그래서 분노를 건강하게 킥복싱으로 표출하고 있고요. 절제력을 기르기 위해 강도 높은 신체 트레이닝을 받고 있습니다. 이래야만 제 안에 절제력이 자라날 수 있겠더라고요. 여자가 킥복싱한다고 말하면, 보통 다이어트 때문에 배운다고 생각하시더라고요. 저는 정말 사람을 팰 수 없어서 샌드백과 관장님이 들어준 미트를 치러 갑니다. 그래야 스트레스가 풀리거든요. 분노를 담은 펀치와 킥 때문인지, 저보다 나이 어린 관장님은 여자 챔피언이 될 수 있다고 경기에 한 번 나가자고 계속 말합니다.




운동을 다시 시작하면서 제일 좋아진 점은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국가대표들이나 프로 운동선수들이 트레이닝을 할 때, 아무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잖아요. 정말 그렇습니다. 무념무상인 채로 운동하다 보면, 어느새 훅을 치고 있는 저를 발견합니다. 이런 휴식 시간이 있어서 안정을 많이 찾았습니다. 이제 혼자 있어도 외딴섬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지금 이 공간에서만 혼자일 뿐, 저는 늘 가족이나 친구의 곁에 있다는 걸 느낍니다. 저한테 안정감은 극도의 트레이닝을 해야만 찾게 되는 것 같아요.


육체가 건강해야 정신도 건강해지는 것을 체감합니다. 요새 조금 잡생각이 많은 것 같다고 생각이 들 땐, 강도 높은 운동을 해보세요. 운동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편안함이 빨리 찾아옵니다. 아참, 그리고 우울증으로 검색해서 제 글을 보시는 분들이 꽤 있어서 하나 더 꿀팁을 드리자면, 정신과 약은 절대 임의적으로 끊으면 안 됩니다. 늘 같은 시간에, 매일 약을 복용해야 효과가 있습니다. 약을 갑자기 중단하면 증상이 더 악화되는 분들이 많다고 하네요.




저는 요새 여유와 안정을 많이 찾았습니다. 약을 언제까지 복용해야 되는지 모르겠지만, 운동을 중단하지 않는다면 빨리 졸업할 것 같아요. 정신과 약을 먹으면서 운동을 해보니 정말 체감합니다. 정신이 아플 땐, 몸을 힘들게 해야 된다는 걸 체득했습니다.


세상은 언제나 고통과 고난을 주겠지만, 폭풍을 두려워하지 않는 견고한 돌탑처럼, 제 정신에도 돌탑을 세우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반석을 다지고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저는 이제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