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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베이킹랩 이성규 Mar 30. 2020

빈티지한 가게를 계약했다

붉은 벽돌로 지은 조그만 공장.


동네 빵집을 구상하는 내내 나의 의식 속에 자리하고 있던 이미지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힙한 예술, 상업공간으로 멋지게 탈바꿈한 베이징 798 예술구에 있는 공간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이다. 798 예술구의 붉은 벽돌로 지은 군수공장 말이다. 


빵집 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양평동, 당산동, 문래동 일대를 많이도 돌아다녔다. 영등포구에 속한 이 지역들은 1970년대 이후 들어선 조그만 공장들과 오래된 단독주택들이 같이 있는 독특한 곳이다. 서울에서 거의 유일하게 남아있는 준 공업지구로 일부는 벌써 재개발이 되었고, 일부는 재개발지구로 지정된 후 재개발을 위한 수순을 밟고 있는 중이다.  

이 지역에 주목했던 이유는 이곳의 독특한 분위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쇳가루를 날리며 쇠를 깎는 작은 공장들을 지나다 보면 베이징의 798 예술구를 거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한때 머물렀던 세계 도자기의 중심 징더전의 오래된 도자기 공장 지대를 거니는 느낌도 들었다. 자그마한 공장 벽 너머로 오래된 조그만 단독주택들이 늘어선 골목길은 사합원이 밀집되어 있는 베이징 중심가의 오래된 골목길, 후통을 걷고 있는 듯했다. 작은 공장이든 오래된 단독주택이든 조그마한 공간을 하나 빌려 빵집을 열면 근사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가게 자리 구하는 일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작은 공장도 오래된 단독주택도 구하기가 그리 쉽진 않았다. 많은 공간을 보았지만 이건 이래서 안되고 저런 저래서 안되고.

그러다가 찾아낸 곳이 바로 오래된 상가에 있는 선술집이었다. 환갑을 넘긴 아주머니가 점심엔 오늘의 메뉴를, 저녁엔 곱창에 술을 팔고 있었다. 안양천이 지척이고, 지하철 5호선 양평역과는 100m밖에 떨어지지 않은 초초역세권에 있는 오래된 상가 1층에 위치한 작은 공간이었다.

주위엔 여의도, 마포, 종로 쪽으로 출근하는 젊은이들이 살고 있는 원룸이 많았고, 아파트도 적당히 있었다. 지식산업센터도 세 개나 자리하고 있어 직장인들도 웬만큼 있었다. 우리 빵집이 목표로 하는 고객들이 주위에 제법 있는 듯 보였다. 비록 한적한 골목 안쪽에 자리하고 있지만 뭔가 재밌는 일을 많이 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곱창 냄새가 두껍게 눌러앉은 곱창집 인수 계약서에 서명하는 날, 난 이런 소회를 남겼다.


맨 처음엔 모터공장이었습니다. 양평동 공장지대의 번영을 함께 한 모터공장은 소규모 공장의 쇠락과 함께 곱창집으로 그 명운이 바뀌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선술집 작부처럼 보이는 환갑을 넘긴 여사장과 그녀와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던 동네 아재들의 애환이 눅진한 고기 비린내처럼 고스란히 배어 있는 열 평 남짓한 공간.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던 식당 집기들이 빠져나간 공간은 혈액이 모두 빠져나간 몸처럼 스산합니다.

양평동의 산업화와 도시화와 함께 했던 낡고 허름한 공간의 변신이 시작됩니다.
튀는 듯하면서도 주변의 작은 공장들과 어우러지는,
주위에 사는 다양한 계층의 지역주민들과 함께 하는,
생명과 흙 지키기를 업으로 하는 이 땅의 농민들과 함께 하는,
멋지고 맛나고 건강한  빵을 만드는 빵집을 열어보겠습니다.

곧 인테리어를 시작합니다.
곱창집의 변신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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